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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어사 리포트

해남향교, 동복오씨 사당 '용지사' 향사제 봉행

손은수 기자
2024.09.12·4분 읽기·조회 62

 

헌관, 제관들의 모습

 


 

 

해남향교(전교 임형기)에서는 추기 원사제향을 봉심하고 있는 가운데 9월12일 해남군 계곡면 용지리에 소재한 동복오씨 문중의 사당 용지사(원장 임창길)에서 단기 4357년 향사제를 봉행했다.

 

해남향교 김문재 유도회장이 참제한 가운데 해남향교에서 파견된 제관 유림과 배향 위 본 후손 등이 단제 참의공 오극신 등 배향 4위의 공덕을 기렸다.

 

해남향교에서 관리하고 있는 17개 원·사에 속하는 용지사의 이날 향배는 향교의 석전대제에 준하는 의식을 갖추고 엄중한 가운데 향례를 진행했다.

 

제관으로는 초헌관에 박용진 송지면지회장, 아헌관에 박동선 을미장의 회장, 종헌관에 김상대 계곡면지회장, 집례에는 윤인식 대의원, 축관에는 손은수 전 청년회장 등이 참례했고, 색장의를 비롯한 찬인에는 동복오씨 본손들이 예를 올렸다.

 

의식은 먼저 초헌관이 분향하고 폐백을 올리는 전폐례를 시작으로 초헌관이 첫 잔을 올리고 대축이 축문을 읽는 초헌례, 아헌관이 두 번째 잔을 올리는 아헌례, 종헌관이 세 번째 잔을 올리는 종헌례, 음복례(飮福禮), 망료례(望燎禮)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제향을 지낸 용지사(龍池祠)에는 참의공 오극신, 그리고 오극신의 아들인 장령공 오계적, 오극신의 조카인 용호공 오홍적, 해금공 오달운 등 4위가 모셔져 있다.

 

구국의 충신으로 명성을 떨친 단제 오극신(1554~1597)은 해남 계곡면 이곳 용지리에서 출생했으며 임진왜란 때 출전하여 목숨을 바친 인물로, 이러한 그의 혁혁한 공을 인정한 선조 임금이 병조참의(兵曹參義)를 증하고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했다.

 

오극신은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아들 계적과 조카 홍적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스스로 충무공 이순신 막하로 가서 명량해전에 출전해 선봉장으로 왜선 70여척을 격파한 큰 공을 세워 일본군을 떨게 하였으며 세계해전사에 길이 빛나는 이순신의 명량대첩의 승인가운데 한명의 이름을 올렸으며 안타깝게 명량해전의 승리를 앞에두고 아들 계적과 함께 그곳에서 전사했다.

 

그의 죽음을 슬퍼한 이순신 장군은 "나의 오른팔을 잃었다"며 통곡했다고 전해진다.

 

오극신의 아들 오계적은 명량해전에서 무기가 바닥을 들어내자 돌과 창 등으로 난파선을 탈출하여 육지에 오르는 일본 수군을 섬멸하는 과정에서 장렬하게 전사했다.

 

용호공 오홍적은 극신의 조카로 한성시에 장원급제한 문무를 겸비한 선비로 역시 오극신을 따라 임진왜란에 참전해 흑석산 전투때는 돌무더기를 산 곳곳에 쌓아두고 아래로 글려 일본군을 섬멸시켰다는 일화로 유명한 인물이다.

 

해금공 오달운(1700∼1747년)은 태어날 때 흑석산 바위가 모두 흰 바위로 변했다고 전해지며 찰방 벼슬을 지냈고 하늘이 내린 성리학자라는 명성을 얻었으며 그의 해금집을 후손들이 해금문집으로 펴냈는데, 해금문집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큰 귀감으로 남아있다.

 

한편, 해남향교에서 관리하고 있는 원(해촌서원, 미산서원)과 사(용지사 등 15개 사당)는 모두 17개소로 각 원장은 전교가 임명하며, 서원이나 사당일을 도맡아보는 색장에는 문중에서 추천한다.

 

각 원사는 각 문중의 의견에 따라 춘기 또는 추기에 향배를 지내게 되며, 날짜 역시 향교와 문중에서 예로부터 정해진 날짜에 따른다.

 

제향을 마치고 임창길 원장은 “김문재 유도회장을 비롯한 오늘 제관으로 수고해 주신 헌관, 제관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오늘 제향이 잘 치러져 본손, 후학들에게 그 덕이 돌아가고 헌관, 그 덕이 제관에게까지 이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