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향교, 장의단 및 학당유림 추계 문화유적지 순례 실시

버스 2대로 출발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월봉서원에서 고유와 축문을 읽고 있다.

월봉서원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흥서원 입구

내산서원에서 고유를 하고 있다.

내산서원에서 기호석 전교, 내산서원 유예원장 최흥열, 김집중 의전차석. 축을 읽고 있다.

내산서원에서 최흥열 유예원장이 직접 해설을 하고 있다.

내산서원 용계사 월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내산서원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광주향교(전교 기호석)는 11월27 장의단과 학당유림 추계 문화유적지 순례를 실시했다.
이날 행사는 월봉서원, 이흥서원, 내산서원, 불갑사 등을 탐방하는 것으로 진행됐다. 월봉서원에서는 빙월당 앞에서 해설사의 해설로 경내 관람과 사당 고유를 했다. 이어 영광읍으로 이동해 이흥서원 해설사가 탑승하여 해설했으며, 내산서원에서는 최흥열 원장(광주향교 원임 전교)의 설명을 들었다.
기호석 전교는 인사말에서 "엊그제 소설이 지났으니 앞으로 대설, 동지가 오고 완연한 겨울이다. 오늘 하루 모든 것 내려 놓으시고 마음 편히 자연을 관람도 하고 마음 힐링을 하고 가시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월봉서원은 고봉 기대승을 모신 서원이다. 기대승은 광주 출신으로 16세기 조선의 대표적인 성리학자이다. 본관은 행주 기씨이며 퇴계 이황과 사단칠정을 비롯한 성리논변을 통해 자신의 학문적 지평을 넓혔고 율곡 이이의 성리학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국 유학은 고봉 기대승과 퇴계 이황의 사칠논변을 통해 보다 철학화되고 심화돼 큰 발전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내산서원에서는 최흥열 원장이 직접 해설을 했다. 내산서원은 수은 강항을 추모하기 위해 1635년(인조 13)에 세운 서원이다. 수은 강항은 조선시대 초기의 강희맹의 5세손으로 1567년 영광군 불갑면 금계리 유봉마을에서 태어났다. 1583년 향시에 합격했으며 1588년 진사가 됐다. 1592년 임진왜란을 당하자 의곡과 군기를 모아 고경명 의병소로 보내기도 했다. 1593년 별시문과에 급제해 교서박사, 전적을 지냈다. 수은 강항은 포로로 억류된 상황에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조정에 일본의 정세와 사회상을 알리고자 노력했다. 그의 노력은 훗날 포로생활에서 벗어나 귀국해 지은 '건거록(간양록)'에 잘 나타나 있다.
이어 불갑사와 불교 최조 도래지 관람을 마치고 광주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함께하고 모든 행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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