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향교, 3·1절 충열사(忠烈祠) 추모제례 봉행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강원도 양양향교(전교 최종학)는 3월 1일 오전 10시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남문로에 소재한 충열사(忠烈祠)에서 독립유공자 34위(열사 烈士 12위 位, 의사 義士 22위 位)의 위패가 봉안된 충열사(忠烈祠)에서 추모제 제례를 엄숙하게 봉행했다.
충열사(忠烈祠) 제례에는 탁동수 양양군 부군수, 이종석 양양군의회 의장, 도·군 의원, 함상균 유족대표 및 유족, 후손, 최종학 양양향교 전교, 유관기관 단체장, 성균관유도회 양양군지부 원로 및 유림, 양양향교 장의, 양양군민 등 100여 명이 참례했다.
충열사(忠烈祠) 제례 헌관 및 제집사는 초헌관 탁동수 양양군 부군수, 아헌관 함상균 유족대표, 종헌관 이종석 양양군의회 의장이 맡았다.
제집사는 집례 한덕복 양양향교 장의, 대축 김구래 장의, 알자 노이준 장의, 찬인 김덕주 장의, 봉향 김근배 장의, 봉로 이상균 장의, 봉작 김연수 장의, 전작 최종열 장의, 사준 이건남 장의, 전사관 최돈균 부전교가 맡아 복무했다.
집례 한덕복 양양향교 의전 장의 집례에 따라 진행된 제례는 헌관 및 제집사 분방에 이어 ▷초헌관 점시(初獻官 覘視) ▷참신례(參神禮) ▷초헌례(初獻禮) ▷아헌례(亞獻禮) ▷종헌례(終獻禮) ▷음복례(飮福禮) ▷사신례(辭神禮) ▷분축례(焚祝禮) 순으로 제례가 봉행했다.
양양의 기미독립만세운동은 조국의 독립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일제의 총칼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저항한 항일운동으로 강원도 지방에서는 양양이 가장 치열하게 전개된 만세운동이었다.
양양의 만세운동은 양양 장날인 1919년 4월 4일부터 4월 9일까지 6일 동안 6개면 82개 마을에서 연인원 15,000명이 참가했다. 만세운동에서 사망자 12명, 부상자 43명이 발생하였고, 585명이 경찰에 체포되어 형을 선고받은 양양군민은 87명이나 되었다.
양양 충열사는 순국선열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을 올리는 사당으로 1991년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집으로 건립했다.
양양군은 매년 3·1절을 기해 순국열사를 위한 추모제를 봉행하고 있다.
2025년 3·1절 추모제례는 양양향교에서 봉행하고 행사는 양양군에서 주관했다.
충열사에 봉안된 순국열사(烈士) 12位는 고대선(高大先), 권병연(權炳淵), 김석희(金錫熙), 김학구(金學九), 문종상(文鐘祥), 이학봉(李學奉) 임병익(林秉翼), 전원거(全元擧), 진원팔(陳元八), 함홍기(咸鴻基), 황응상(黃應相), 홍필삼(洪必三)
순국 의사(義士) 22位는 권광식(權廣植), 김성서(金聖瑞), 김두영(金斗榮), 김재한(金在漢), 김사만(金思晩), 김종성(金鐘聲), 김창환(金昌煥), 김주열(金周烈), 이창갑(李昌甲), 이춘재(李春在), 김필선(金必善), 최영덕(崔永悳), 이원희(李源熙), 최인식(崔寅植), 이종엽(李鐘燁), 이두형(李斗炯), 김철기(金哲起), 황선주(黃璇周), 노병례(盧炳禮), 오정현(吳鼎鉉), 김환기(金桓起), 김진선(金振璿) 등 독립유공자 34位가 봉안되어 있다.
양양향교 한덕복 장의가 집례를 보고 있다.

분방을 낭독하고 있다.

제집사가 재배를 하고 있다.

참례자가 서립해 있다.

초헌관이 점시를 하고 있다.

초헌관 탁동수 양양군 부군수가 삼상향을 하고 있다.

초헌관 탁동수 양양군 부군수가 신위에 헌작을 하고 있다.

대축 김구래 장의가 축문을 낭독하고 있다.

아헌관 함상균 유족대표가 신위에 헌작을 하고 있다.

종헌관 이종석 양양군의회 의장이 신위에 헌작을 하고 있다.

초헌관 탁동수 양양군 부군수가 음복을 하고 있다.

참례자가 묵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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