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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어사 리포트

정선全氏 석릉군(石陵君) 강릉 정랑공(正郎公) 인권(仁權), 을사년 세일사(歲一祀) 봉행

전남표 기자
2025.04.29·4분 읽기·조회 25

 

 

헌관 전찬택 후손이 삼상향을 하고 있다.

 


 

 

 

 헌관 및 제집사가 서립해 있다.

 


 

 

정선全氏 석릉군(石陵君) 강릉 정랑공(正郎公) 종중은 을사년(2025년) 정랑공(正郎公)과 단소(壇所:봉안 6位), 영모제(永慕齊: 8대에서 14대까지)에서 지난 4월 27일 오전 11시 세일사(歲一祀) 봉행이 있었다.

 

세일사 봉행에는 전찬택 원로, 전선집, 전유집 후손 등 20여 명이 참례했다.

 

제례는 전찬탁 후손의 집례로 분향·강신례, 참신례, 초헌례, 아헌례, 종헌례, 숙사·소경, 철찬, 사신, 분축 순으로 봉행했다.

 

단소(壇所 6位 奉安) 제례 봉행

 

제례 봉행은 단소(壇所) 6위 봉안 ▷준(浚) 충정왕(忠定王) 등문과호부시랑(登文科戶部侍郞) ▷충의(忠義) 공민왕(恭愍王) 내거상의봉어동정(內居尙衣奉御同正) ▷인권(仁權) 공민왕(恭愍王) 조문과행사조정랑(朝文科行史曺正郞) ▷우정(遇禎) 태조(太祖) 신묘(辛卯) 성균생원진사(成均生員進士) ▷륜(崙) 세종(世宗) 경오(庚午) 등문과행호조좌랑(登文科行戶曹佐郎) ▷민행(敏行) 단종(端宗) 갑술(甲戌) 등과문행사헌부감찰(登科文行司憲府監察) 단소에서 헌관 ▶초헌관 전세남 후손 ▶아헌관 전우택 후손 ▶종헌관 전영석 후손이 맡았고 집사는 ▶집례·대축 전찬택 후손 ▶봉향·봉로 전선집, 전영각 후손 ▶봉작·전작 전영철, 전유집 후손이 맡아 봉행에 예를 다했다.

 

성명묘(姓命墓)-인권의 현손(仁權의 玄孫) 제례 봉행

 

성명묘(姓命墓)-인권의 현손(仁權의 玄孫) 제례 봉행에는 헌관 ▶초헌관 전찬택 후손 ▶아헌관 전인택 후손 ▶종헌관 전영석(全永奭) 후손이 맡았고 집사는 ▶집례·대축 전선집 후손 ▶봉향·봉로 전유집, 전영재 후손 ▶봉작·전작 전우택, 전호택 후손이 맡아 봉행에 예를 다했다.

 

영모제(永慕齊: 8대에서 14대까지) 합제(合祭)

 

영모제(永慕齊: 8대에서 14대까지) 합제(合祭)에서 ▶초헌관 전선집 후손 ▶아헌관 전유집 후손 ▶종헌관 전영권 후손이 맡았고 집사는 ▶집례·대축 전찬택 후손 ▶봉향·봉로 전영석, 전호택 후손 ▶봉작·전작 전영철, 전영각 후손이 맡아 봉행에 예를 다했다.

 

제례 봉행을 마치고 전찬택 후손은 “원근 거리에서 아침 일찍 선조님 제례 봉행에 참례해 주신 후손 여러분 감사합니다. 위대한 선조님이 계셨기에 오늘 내가 있는 것이다. 우리 후손들은 선조님의 유업을 받들어 대대손손(代代孫孫) 이어가길 바란다”라면서 인사말을 했다.

 

정랑공(正郎公) 성취옹(醒醉翁) 전인권(全仁權 1360~1440)은 정선全氏 강릉 낙향 조이며 고려 공민왕때 등재해 이조정랑(吏曹正郎)을 지냈으며, 여말 불사이군지절(不事二君之節) 야은 길재(吉再, 1353~1419)와 운곡 원천석(元天錫, 1330~?) 선생 등과 뜻을 같이하였으며 망국의 한을 품고 강릉으로 낙향했다.

 

성취옹(醒醉翁)이란 호는 술을 좋아하면서 매사 일 처리는 빈틈없음을 비유하여 임금으로부터 제수받았으며, 강릉 낙향하여 경포호 남쪽 기슭 모안곡(慕顔谷)에 관심정(寬心亭) 정자를 짓고 향인, 문인, 문사들과 중양가(重陽歌)를 지어 인근에 전파했다고 한다.

 

강릉 임영지에 보면 강릉향교를 창건할 때 아들 우정(遇禎)과 함께 전자(篆字)를 쓰고 위판을 감조하는데 참여하였다고도 한다. 지금도 강릉향교에 현판이 남아 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후손들이 빈곤을 면치 못하고 훌륭하신 선조님의 업적과 유물을 보살필 겨를이 없고 정자는 유실되고 말았다. 지금 와서 모두들 후회하고 늦었지만 관심정 복원 운동을 벌이고 있어 앞으로 거국적으로 나아가 증명될만한 여러 방면에서 애쓰도록 해야 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자료 제공 전찬택 후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