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유도회 경기도본부, 선현지 견학 프로그램 진행

경기도 유림지도자 일행은 광주향교 문묘에 봉심하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제관, 집사, 일반 참사자들이 대성전 앞에서 서립해 있다.

이종목 성균관유도회 경기도본부 회장(좌)과 최군식 광주향교 전교가 함께 하고 있다.

명륜당이다.

일행은 남한산성 한남루 앞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남한산성 내 만해 한용운 선생 기념관을 관람하고 있다.

전망대에서 한강을 바라 보고 있다.

정약용 선생 생가 앞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문도공 다산 정약용 선생 묘이다.

다산 선생의 생가 여유당(與猶堂)이다.

실학박물관 영상물이다.
성균관유도회 경기도본부(회장 이종목)는 6월27일 경기도 관내 "유림지도자 광주향교 봉심, 남한산성, 다산 생가 등 견학" 선현지 견학 프로그램을 유림지도자 7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거행했다.
첫 일정으로 경기도 광주향교 봉심을 했다. 일행이 향교 입구에 도착하자 최군식 전교, 이단우 유도회장을 비롯한 광주향교 유림이 반갑게 맞이해 줬다. 수원에서 27명이 탑승했으나 광주향교에 도착하자 경기도 동부권에 있는 유림 20~30여 명이 합류했고, 광주향교 유림 20~30여 명이 참석해 봉심 후 기념 촬영에는 70여 명으로 큰 성황이었다.
봉심례는 대축과 집사를 광주향교에서 맡았다. 대축은 이기순 장의, 집례는 허현무 장의, 알자는 최상식 장의, 집사는 이순열 장의와 이훈범 장의, 사세는 김영자 장의와 김영숙 장의가 맡았다. 집례의 창홀에 따라 알자의 헌관 인도, 집사의 행위는 모두 모범을 보여줬다.
광주향교에서 유림의 만남은 하나의 잔치 분위기였다. 우선 사람이 많아서 좋았다. 대성전은 비록 3칸 건물이지만 품위가 높았고, 명륜당은 선비 모습으로 원형 기둥과 넓은 대청은 당당한 모습이었다. 내삼문 가운데 처마는 날아갈 듯 하늘로 향해 있었다. 또 하나 다른 향교에서 볼 수 없는 수복이 거처가 있었다. 더욱 이곳을 찾는 이에게 흐뭇하게 하는 것은 수령 500여 년의 은행나무였다. 은행나무는 향교의 유구한 역사를 말해주고 있었다.
두 번째 남한산성의 방문이다. 일행이 남한산성 입구에 도착하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해설사가 남한산성의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해줬다.
"남한산성에는 원성과 외성, 옹성, 4 대문, 암문, 치, 장대, 포루 등 많은 시설물과 행궁이 있다. 남한산성 성곽이 1963년 국가사적 제57호로 지정된 이후, 수어장대(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호)를 비롯해 숭렬정(동 제2호), 청량당(동 제3호),현절사(동 제4호), 망월사지 등이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또한 2007년에는 남한산성 행궁이 사적 제480호로 지정, 2012년 복원돼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다. 남한산성은 1963년 국가사적으로 지정되었고, 1971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2014년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수많은 유적이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를 지나면서 폐허가 되다시피 됐다. 1636년 청 태종이 12만의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와 조정은 남한산성으로 피신해 청군과 대치했으나 식량부족으로 45일 만에 인조는 항복하는 치욕을 면하지 못했다. 그 후 400년이 지난 우리나라는 세계 10대 강국으로 되었다. 이곳 남한산성은 비록 치욕스러운 역사지만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남한산성 행궁을 돌아본 일행은 다음 목적지인 만해 한용운 선생 문학관(관장 전보삼)을 찾았다. 기념관은 선생의 일대기, 유품, 저서, 독립선언문, 3.1운동 관련자로 등이 잘 전시되어 있었다. 안내인은 친절하고 열정적인 해설을 했다.
만해기념관 관람 후 일행은 산성 입구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점심 먹으며 술 한잔 나누며 친교의 시간을 가졌다.
그 후 버스로 40여 분 걸려 하남시 유니온 타워 전망대에 올랐다. 이곳은 국내 최초로 하수처리시설과 폐기물처리시설을 지하화해 민 친환경시설로 인정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 랜드마크로 떠오른 곳이다. 하남유니온타워 전망대(4층)는 아파트 35층 높이인 최고 100~105m로, 한강과 함께 하남시, 남양주 다산신도시,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둥을 볼 수 있다고 하나 날씨가 흐려 멀리까지는 볼 수 없었다. 그렇지만 100여 미터 고공에 올라 확 터진 세상을 바라보며 호연지기를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일정으로 다산 정약용의 생가와 실학박물관을 찾았다. 이번 방문 일행 중 이성종 고양향교 사무국장은 문화유산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분으로 이번 방문에 남한산성과 다산 정약용 선생에 관한 해설했다.
여유당(與猶堂)이란 표석이 눈길을 끌었다. 이 표석의 글씨는 선생의 후손인 정일권 국회의장이 각자를 했다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여유당(與猶堂)은 선생의 집을 가리키는데 그 뜻은 무엇일까? 궁금했었다. 그 궁금증은 여유당 앞에 있는 간판에 설명을 보고 풀렸다. 여유당은 다산이 지은 이름으로 자신이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노자의 말에 '여(與)여!는 겨울의 냇가를 건너는 뜻이고, 유(猶)여!는 사방을 두려워하거라'고 쓰여 있었다. 그 당시 다산의 처지를 잘 말하고 있었다.
다산이 형조참의로 있던 1799년 선생에 대한 노론의 공격이 극에 달했었다. 그 해 정약용 선생을 비롯한 남인의 정치적 스승이었으며 충직한 신하였던 채재공 선생이 돌아가셨다. 그다음 해 1800년 정조가 승하한 후 강진으로 귀양을 갔다. 다산은 정조와 한 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고 한다. 수원화성의 설계자가 다산으로 정조와 다산은 수원과 깊은 인연이 있다. 이번 답사에 참여한 수원 출신 유림에게는 다산 생각 방문은 더 뜻깊은 시간이었다. 끝으로 다산 생가 바로 옆에 있는 실학박물관을 마지막으로 둘러보며 이번 답사 일정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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