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탐방]해남향교 향사...해남의 첫 동네 '부춘동'을 가다

해촌서원 외삼문
해남 금강산 아래 금강골에 들어서면 해남향교의 향사 해촌서원이 있다.
이곳은 해남읍 첫 동네라 했던 부춘동이란 마을이 있었는데 취죽헌 박백응의 서당이 있었던 곳으로 금강저수지가 만들어지면서 사라지고 지금은 동네를 볼 수 없다. 다만 그 터를 저수지를 통해 기억한다.
해촌서원은 해남의 인물, 6현(최부, 임억령, 유희춘, 윤구, 윤선도, 박백응)을 향배하는 곳으로 매년 해남향교에서 배향하고 있다.
해촌서원은 원래 1652년 임억령을 모신 사우로 건립하였다가 1689년 해남 유림의 발의로 최부, 유희춘을 추가 배향하고 1721년 윤구, 윤선도를 추가 배향하여 오현사가 되었다가 박백응이 추배되면서 6현사인 해촌서원(예전에 구교리 해촌동에 있었다)으라 한다.
부춘동은 해남읍 해리로 15세기 해남 제1의 재지사족으로 성장한 해남정(鄭)씨가 기거했던 곳으로 이후 해남정씨와 통혼관계를 맺은 다섯 성씨도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나주인 탐진 최씨 최부, 강진인 해남윤씨 윤효정, 이속가, 여흥민씨 민중건, 영암인 선산임씨 임수, 여기에 무안박씨, 선산유씨 등이 모두 이곳 부춘동에서 기거했다.
해촌서원 바로 오른쪽에 부춘재가 있다. 취죽헌 박백응(1525~1587)의 강학소로 부춘정사를 건립한데 따른 이름이다.

부춘재
지금 이 부춘재에는 현재 무안 박씨 32대 손인 함초박사 박동인 해남군산림조합장이 기거하며 부춘재는 물론 해촌서원을 지키고 있다.
박동인 조합장이 말해 준 부춘재기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모든 박씨 성씨는 신라시조 박혁거세를 시조로 삼고 있다.
무안박씨는 국학전주공 박진승을 중시조로 고려충신으로 무안 땅을 하사받아 식읍으로 삼고 관향을 무안 박씨로 하사받았다.
전하는 기록에 의하면 14대 조고 박종정은 16세기 중반 영암군수로 있을 때 금강산을 사랑하여 해남으로 이주 읍 해리에 정착했으며 그의 아들 박안은 선산임씨의 여서(女壻)가 됐다. 영암군수가 당시 영암군 소속이었던 해남현 땅의 금강산의 산수가 수려하여 매우 사랑했다한다.
이후 조선 단종 때 계유정난으로 수양대군(세조)가 즉위하자 그날로 벼슬을 버리고 해남군 부춘동(현 금강골)에 은거했다. 호를 부춘이라 짓고 오직 학문에 매진하였으며 자식을 엄하게 기르치고 의와 도를 행하면서 여생을 보냈는데 그 사람이 바로 해남 무안 박씨의 낙향조이다.
이어 전해오는 기록에 따르면 박종정의 증손인 취죽헌 선생은 이곳 부춘동에서 출생하였으며 천품이 순박하고 총명하였으며 도량도 넓어 외삼촌인 임억령 선생에게서 학문을 전수받았다.
장성하여 을묘년(1539년)에 사마벼슬을 받았으나 임지로 가지않고 선비들과 교류하면서 효제충성을 중히 여기면서 초야에 은거했다.
명조조에 사헌부 감찰이 되어 출사하였으며 이 후 남대진원 현감으로 제수 받았으나 다시 나가지 않고 귀향하여 이곳 부춘동에 정사를 짓고 금남 최부 선생, 미암 유희춘 선생들과 교류하면서 의와 도를 바탕으로 자식들에게 경학을 가르쳤다. 인간세상에 득실, 부귀영화, 치욕은 담아둘것이 못된다하여 고결하게 여생을 보냈다.
선생의 묘는 금강산 우슬재 중턱에 모셨으며 3대 후손 모두 이 묘소와 함께 자리했으나 역학에 능했던 현감 김서구(1782년~1783년 )가 부임하여 해남의 진산인 금강산에 올라가 해남 땅의 모양을 살펴보니 해남읍 남송리 호산(말매봉)은 현무(붓끝을 의미하고 인재를 뜻함)형상, 아침재와 우슬재는 각각 백호와 청룡형상으로 읽었다.
그는 해남 사람들의 기가 센 것을 이 때문으로 보고 우슬재를 3자3치씩 깎아 내도록 했는데 이때 묘소가 현 부춘재 옆으로 이장되었다.
부춘재는 5칸의 팔작지붕으로 지어져있으며 좌우에 사옥이 있으며 앞쪽아래 방풍림으로 송·죽이 부춘재를 지켜왔다.
박동인 조합장은 “조상은 경건한 마음으로 섬기고 부모에 효도하며 형제간 우애, 이웃 간 관계를 돈독해야 삼라만상이 화목하다는 것을 부춘재에서 배워 이제껏 덕목으로 삼고 있다”면서 “금강산은 돌과 물이 빼어나고 골짜기가 수려하며 이 곳 부춘재에서 옛 부춘동 터를 바라보면 조상의 슬기와 얼을 미루어 알수 있다”고 전했다.
박 조합장이 부춘재에 기거하게 된 동기에 대해서는 “20년 전 함초를 상품화하기위한 연구와 육상재배에 열정을 쏟을 때 문중에서 이 곳 부춘재에 들어가 살면서 함초박사가 되고 부자되어서 나와라”는 말을 듣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고 한다.
덧붙여, “이곳에 기거하면서 문중 어르신들의 주문에 힘입어 함초박사도 되고, 대한민국신지식인도 되고, 해남군의원도 되고 지금은 산림조합장으로 나름 성공의 길을 가고 있고, 자식 또한 정부중요 기관에서 고위직으로 근무하고 있어 이 모든 것이 조상의 은덕이 아닌가 한다”고 전했다.

옛 부춘동 터, 지금은 금강저수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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