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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승, 런웨이의 얼굴에서 렌즈 뒤의 작가로

김정기 기자
2026.05.14·3분 읽기·조회 54

 

사진작가 하이선(HA ESUN)의 첫 개인전 〈문 밖의 나 / THE SELF OUTSIDE THE DOOR〉가 13일 서울 종로구 서촌 갤러리 어피스어피스(A.P.A.P.)에서 개막했다.

 

하이선은 모델 이혜승의 작가명이다. 그는 2007년 데뷔 이후 약 20년간 샤넬(Chanel), DKNY, 도나카란(Donna Karan), 까르띠에(Cartier), 타미힐피거(Tommy Hilfiger) 등 글로벌 브랜드 관련 패션 무대에 섰다. 뉴욕패션위크에서는 스티븐 알란, 수피마, 수노 등과 협업하며 한국 하이패션 신을 대표하는 얼굴로 활동해 왔다.

 

□ 수만 번의 시선을 받아낸 자, 이제 시선을 던지다

 

이혜승은 런웨이 활동과 함께 보그(Vogue), W, 바자(Bazaar), 마리끌레르, 코스모폴리탄, 얼루어, 나일론 등 국내외 주요 패션 매체의 지면을 장식했다. 서울패션위크에서는 진태옥, 하상백, 박병규 등 한국 대표 디자이너들의 무대에도 섰다.

 

시각적 소모가 빠른 패션계에서 그는 ‘쉽게 소비되지 않는 얼굴’로 평가받아 왔다. 약 20년간 커리어를 이어온 점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이번 전시에서 내건 이름 ‘하이선’은 외국인들이 본명 이혜승을 발음하던 소리를 옮긴 것이다. 익숙한 이름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자신을 다시 바라보려는 선택으로도 읽힌다. 평생 프레임 안의 피사체(被寫體)로 살아온 모델이 이제 프레임 밖에서 세상을 응시(凝視)하는 주체로 돌아섰다.

 

 

□ 47점의 찰나… ‘표류의 감각’이 잇는 이국과 일상

 

전시는 덴마크 해안의 적막한 풀숲에서부터 보도블록 위에 떨어진 이름 없는 낙엽의 그림자까지, 서로 다른 시공간의 찰나를 담은 사진 47점으로 구성됐다.

 

이국의 풍경과 일상의 사소한 조각들은 ‘표류의 감각’이라는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작품들은 특정한 사건을 설명하기보다, 낯선 장면과 사물 사이에 남은 감각을 통해 존재와 관계의 본질을 묻는다.

 

전시명 ‘문 밖의 나’는 중의적 의미를 품는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문 안에 머물렀던 과거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객관화하고 확장하려는 작가의 의지가 담겼다.

 

하이선 측은 “오랫동안 프레임 안에 놓여 있던 사람으로서, 이제 프레임 밖에서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과정을 거쳤다”며 “관람객들도 사진 속 풍경을 매개로 문 밖에 서 있는 또 다른 자신을 탐구하는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모델로서 수없이 타인의 시선에 자신을 맡겨온 이혜승은 이번 전시에서 직접 셔터를 쥐고 새로운 언어를 찾아 나섰다. 패션 커리어가 일군 ‘보이는 삶’에서, 스스로 바라보는 삶으로의 전환이다. 그 첫 결과물이 서촌에 걸렸다.

 

전시는 오는 24일까지 이어진다. 관람 시간은 오후 2시부터 7시까지다. 월요일과 화요일은 휴관하며 관람료는 무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