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탁명환 소장, 목숨으로 지킨 '파사현정의 길' [기자수첩]

김정기 기자
2026.05.20·5분 읽기·조회 679

 

19일, MBC 방송을 통해 故 탁명환 소장의 삶과 죽음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사교(邪敎)의 실체를 추적하다 흉기에 쓰러진 그의 생애는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언론과 지식인 사회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진실을 향한 펜은 어디까지 감당해야 하는가. 불의 앞에서 글 쓰는 사람은 어디까지 물러서지 않아야 하는가.

 

탁명환 소장은 1937년 전북 부안에서 태어났다. 1960년대 중반 개신교계 신문사에 몸담으며 신흥종교 연구에 발을 들였다. 이후 그는 평생을 사이비·이단 문제 연구와 고발에 바쳤다. 이는 단순한 직업 선택이 아니었다. 뜻을 세우고 그 뜻을 삶으로 밀고 간 입지(立志)의 길이었다.

 

그는 『기독교이단연구』를 비롯해 다수의 저서를 남겼고, 강연과 세미나를 통해 반사회적 사이비 종교의 실태를 꾸준히 알려왔다. 공자는 정명(正名)을 중시했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않고, 말이 순조롭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탁 소장의 평생 과업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거짓과 기만을 벗겨내고, 그 실체를 사회 앞에 바로 세우는 일이었다.

 

그의 연구는 책상 위에 머물지 않았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계룡산 신도안 일대를 오가며 전국의 신흥종교 흐름을 직접 추적했다. 주변에서 그를 “계룡산 출입기자”라고 부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현장을 보지 않고 단정하지 않았다. 들은 말만으로 쓰지 않았다. 지지위지지(知之爲知之),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태도였다. 그 점에서 그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길을 걸은 사람이었다.

 

오대양 사건, 영생교승리제단, 다미선교회, 대성교회 등 그가 파헤친 사건들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남겼다. 혹세무민(惑世誣民)의 말과 폐쇄적 집단 내부의 폭력성은 그의 집요한 추적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사악함을 깨뜨려 바름을 드러낸다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이 그의 삶을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말일 것이다.

 

탁 소장은 1970년 신흥종교문제연구소, 1979년 국제종교문제연구소, 1986년 한국종교문제연구소를 세우며 연구와 고발을 제도화했다. 혼자 외치는 데 그치지 않고, 자료를 모으고 체계를 세우며 후대가 이어갈 기반을 만들었다. 유교에서 말하는 수기치인(修己治人), 곧 자신을 닦고 세상을 바르게 이끄는 길과도 맞닿아 있다.

 

그 길은 끊임없는 위협의 연속이었다. 차량 폭탄 테러와 흉기 피습, 살해 협박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품 안에 유서와 가스총을 지니고 현장을 다녔다는 일화는 그가 어떤 두려움 속에서 글을 썼는지 보여준다. “개는 짖어도 기차는 간다”는 그의 말에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겠다는 선비의 기개가 배어 있다.

 

논어 위령공편에는 “지사인인은 살신성인(殺身成仁)한다”는 말이 있다. 뜻 있는 선비와 어진 사람은 목숨을 버려 인을 이룬다는 뜻이다. 탁 소장의 삶은 이 문장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생명보다 의(義)를 앞세웠다. 안전한 침묵보다 위험한 진실을 택했다.

 

1994년 2월 18일, 그는 자택 인근에서 피습을 당해 생을 마감했다. 한 사람의 죽음이었다. 동시에 반사회적 집단의 폭력성과 폐쇄성을 세상에 새긴 비극적 고발장이었다. 정도(正道)를 걷는 사람의 마지막이었으나, 그 죽음은 결코 패배가 아니었다. 사이후이(死而後已), 죽은 뒤에야 그친다는 말처럼 그는 끝까지 자신의 짐을 내려놓지 않았다.

 

그의 뜻은 가족에게도 이어졌다. 장남 탁지일 교수, 차남 탁지원 소장, 삼남 탁지웅 신부가 각자의 자리에서 선친의 뜻을 잇고 있다. 이는 단순한 가업의 계승이 아니다. 부자유친(父子有親)을 넘어, 대를 이어 의로운 일을 감당하는 세덕(世德)의 모습이다.

 

더욱 숙연한 것은 그의 마지막 선택이다. 탁 소장은 유언에 따라 시신을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에 해부 실습용으로 기증했다. 살아서는 거짓과 싸웠고, 죽어서는 몸까지 공익에 내놓았다. 헌신멸사(獻身滅私)라는 말이 결코 무겁지 않다.

 

유교의 핵심 덕목인 인의예지(仁義禮智)는 먼 옛말이 아니다. 불의를 보고 침묵하지 않는 의로움, 공동체를 해치는 거짓을 바로잡는 지혜, 두려움 속에서도 바른 길을 걷는 용기 속에 살아 있다. 탁명환 소장은 학자이기 전에 선비였고, 연구자이기 전에 정론직필(正論直筆)의 길을 걸은 사람이었다.

 

탁명환 소장이 남긴 삶과 죽음 앞에서 기자로서 다시 옷깃을 여민다. 진실을 향한 펜이 얼마나 무거운 책임을 지는지, 그의 삶은 지금도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