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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시론

<泮村魯堂>북미 정상회담과 지방자치

편집부
2018.06.14·5분 읽기·조회 25

 

김학경(용인향교 장의 / 역사디자인 연구소)

 


 

요즘은 내가 거대한 역사 속의 일부를 살아가고 있으며, 세계 시민 사회의 일원으로 개인의 운명이 국제 질서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절실하게 느낀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른바 ‘코피 전략’을 이야기하며 북한에 대해 국지전(局地戰)도 불사(不辭)할 것 같았던 한반도 위기가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미 정상회담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보면 드라마틱하기만 하다. ‘여행 허가에 대한 출국 규제 완화’에 관한 잘못된 보도로 인해, 독일의 통일이 우연에 기인(起因)하였던 것처럼 우리의 통일도 우연을 가장한 필연(必然)으로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6·12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과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공동합의문으로 채택하였다. 수십 년간 이어진 적대 관계를 청산(淸算)하고 평화와 번영을 택한 두 지도자의 결단에 뜨거운 동조(同調)의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이렇게 급속한 한반도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적응하지 못하는 세력들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CVID가 구체적으로 담겨 있지 않다고 몽니를 부리고 있다. CVID는 핵을 완전히 폐기하는 것으로 완전하고(Complete), 검증가능하며(Verifiable), 돌이킬 수 없는(Irreversible) 파괴(Dismantlement)를 의미한다. 이들에게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합의문 3항은 안중(眼中)에도 없다. 본 합의문이 한편에서는 구체성이 결여되고 성긴 내용들로 구성되었다고 비판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것처럼 이후 고위당국자 회담 등을 통해 구체적 실천 계획을 세우고 합의를 이행할 것이라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이렇게 북미 정상회담의 감격스러움을 외면하고 CVID가 빠진 선언은 무의미하다는 보수 정당 이나 보수 언론들은 시대착오를 넘어 반통일 세력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반추(反芻)해 보면 지난번에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회담을 전격적으로 취소하자 적지 않은 반통일 세력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냈었다. 그들은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문재인 정부의 ‘외교 실패’라며 비판하고 대북 정책에 대해 쓴소리를 냈다. 공교롭게도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과정에서 소외된 일본도 북한에 대한 압박 강화를 요구하며 한반도 통일을 달가워하지 않는 속내를 여실히 드러냈었다.

 

안타깝게도 우여곡절을 겪은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미국의 정치권에서는 의회비준을 주장하며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럴 때 우리의 정치권마저 당리당략(黨利黨略)에 따라 분열되고 비난한다면 한반도의 평화는 요원(遙遠)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한국전쟁의 위기에서 구해 주고 경제 성장 과정에서 도움을 준 은혜로운 미국을 잊지 않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한반도의 지정학적(地政學的) 위치를 활용하여 동북아시아의 전략적(戰略的) 기지로 활용했던 미국의 안보 정책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한반도 운명은 한반도 구성원들이 주체적이고 자주적 역량에 따라 선택하고 결정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북미 정상회담의 비판도 근본적으로는 미국 패권주의(覇權主義) 사고에 기반한 것으로 우리에게 적지 않은 우려(憂慮)를 주고 있다. 그런데 한 보수 신문은 미국 전문가 입장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계량화(計量化)하여 일부 전문가들이 10점 만점에 3점으로 평가했다고 크게 보도하였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운명을 강대국의 시각에서만 바라보던 사대주의(事大主義) 사고이자 그동안 우방(友邦)이라는 이유만으로 맹종(盲從)하던 몰상식의 발로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오히려 이제라도 한반도 전문가를 자처하며 미국의 국익(國益)을 위해 충실했던 사람들에 대해 올바르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려는 객관성을 갖추어야 할 때이다.

 

북미 정상회담 후 치러진 6. 12지방선거가 여당(與黨)의 압승으로 끝났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와 기대가 만들어낸 결과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패배한 야당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싸운 경기라는 입장으로 자신들의 과오(過誤)를 덮으려는 우(憂)를 범하고 있다. 야당의 패배는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과오에 대한 뼈아픈 반성이나 사과도 없이 과거와 같이 색깔론과 안보론에 의존한 시대착오에 있다. 이제라도 그릇된 역사 인식과 자신들의 한계를 비판하고 뼈를 깎는 노력을 하지 않는 한 야당의 미래는 없음을 알아야 한다. 아울러 여당은 선거 압승이 독선(獨善)적 행태로 흐르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야당 없는 불행한 지방자치가 되지 않도록 여야의 상생(相生)과 협력이 더욱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