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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시론

<泮村魯堂>폭염(暴炎)과 노인들

김학경
2018.07.23·5분 읽기·조회 28

김학경(용인향교 장의/역사디자인 연구소)

 

연일 불볕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며칠째 35도를 웃돌고 한반도 전역이 30도를 웃도는 더운 날씨 때문에 아열대 지방인 태국보다도 더 덥다는 소리가 들린다. 무더위 때문에 온열(溫熱) 환자도 급증하고 있다. 온열환자의 피해자는 대부분 노약자(老弱者)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무더위를 피해 ‘무더위 쉼터’라고 불리는 노인정이나 주민자치센터를 찾는 노인들도 증가하고 있다. 그나마 조금 시원한 지하철을 이용할 경우에도 지하철 구석에 잡은 노약자 보호석은 포화 상태이다. 좁은 노약자 보호석 때문에 자리다툼을 하는 노인들도 종종 목격하게 되어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이 무더위가 그만큼 노인들에게는 더 큰 고역(苦役)이다. 제발 우리나라 모든 노인들이 이 여름을 무사히 잘 넘기기를 기대할 뿐이다.

우리나라의 노령화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노령화로 인해 나타나는 사회적 비용의 증대, 노인 빈곤 등 다양한 문제점이 국가 성장 동력(動力)마저 잠식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노인들은 대한민국을 국가별 GDP〔국내총생산〕 세계 12위권의 경제력의 국가로 이끈 주역이며 산업(産業) 역군(役軍)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는 이 노인들에게 빚이 있으며 그들의 노후(老後)를 사회가 책임져야 할 책무(責務)를 갖고 있다. 급격히 늘어나는 복지비용, 의료비용 등으로 무조건 노인들을 부담스러운 존재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발전의 주요한 자산(資産)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 보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반면교사(反面敎師)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의 노령화 문제라고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일본의 경우에는 65세 이상의 노인이 3,500만을 넘어섰다. 노인 인구가 거의 우리나라 총인구에 육박할 만큼 초(超) 고령화 사회다. 그래서 일본의 지방자치단체에서 100세 이상 노인들에게 주던 약 3~5만엔의 장수축하금도 폐지하거나 줄였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노인들이 있어도 일본의 노인 문제가 우리나라보다 심각하다고 할 수 없다. 물론 일본에도 독거노인 문제, 고독사(孤獨死) 등 다양한 노인 문제가 나타나고 있지만 다양한 복지제도를 통해 노인 문제에 대처하고 있다.

일본과 우리 사회의 노인 문제를 바라볼 때 가장 큰 특징은 일본 노인들의 경우 65세 이상 근로 소득이 있는 사람이 770만 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고령자 고용촉진법은 모든 민간 기업들이 60세 이상의 고령자를 전체 종업원수의 6.0%범위 내에서 의무 고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은퇴 이후에도 자신의 전문성을 살리거나 사회적 일자리, 봉사활동 등으로 사회 참여 기회가 보장됨으로써 당당하고 건강한 노후 생활이 가능한 것이다. 특히 일본의 노인들은 미리부터 노후 대책 계획을 수립하여 자식에게 기대하지 않고 자식과 분리된 가족 구조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노년을 자식에게 의지하는 비율이 적고 유산 상속도 거의 하지 않음으로써 자신들의 노년을 대비하고 있다. 젊은 시절 열심히 일하고 자식 교육을 위해 전 재산을 투자해 초라하고 빈곤한 노년을 사는 우리 사회의 노년과는 극명(克明)하게 대비된다.

일본 노인들에게는 ‘슈카쯔〔終活〕’라고 해서 인생을 마무리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 유행하고 있다. 자신이 장례식장과 장례절차를 결정하고 납골(納骨) 방법까지 결정하며 사후(死後)의 희망사항을 적는 ‘엔딩노트(Ending Note)’를 작성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노인들은 자신이 인터넷에 남긴 개인정보 등도 삭제하며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는 과정을 준비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2017년 보건사회연구원의 삶의 만족도를 설문조사한 결과 60대에서 `불만족스럽다`가 40.6%에 이르렀다. 40·50대에 삶의 만족도가 떨어졌다가 60대 이상이 되면 만족지수가 상승하는 북유럽 등 선진국가가 부러울 뿐이다. 인생의 마무리가 아니라 하루하루의 호구지책(糊口之策)마저 고민해야 하는 게 우리나라 노인들의 현실이다.

정조(正祖) 임금은 화성(華城)을 축성하는 백성들에게 더위를 치료한다는 척서단(滌暑丹)을 내려주고 “불볕 더위가 이 같은데 성역처(城役處)에서 공역을 감독하고 공역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끙끙대고 헐떡거리는 모습을 생각하니, 밤낮으로 떠오르는 일념을 잠시도 놓을 수 없다. 어떻게 밥맛이 달고 잠자리가 편할 수 있겠는가.”라며 애민(愛民)을 실천하였다. 오늘 이렇게 더위에 지친 노인들에게 우리 사회가 내려줄 척서단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