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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시론

<李玄崗의 泮中雜詠> 향원론(鄕原論)

편집부
2014.09.26·4분 읽기·조회 25

 

종교로 보면 유교는 가장 인간적인 종교다. 교조인 공자는 이적을 행한 기인도 아니고 그 말씀도 인간 본연의 감정에 충실하다. 오히려 공자는 聖人이라기보다는 “나는 나면서부터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옛 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찾아 배운 사람이다(子曰 我非生而知之者 好古敏以求之者也, <논어> 술이편)”라고 겸손해 했다. 

 

공자의 인간적 면모는 <논어>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공자는 가장 사랑한 제자 안연이 죽자 하늘이 나를 버렸다고 탄식하기도 하고, 자로가 변명하는 것을 두고 이래서 말 잘하는 자를 싫어한다고 혼을 내다가도 南子를 만난 것을 두고 의심하는 자로에게 무슨 일이 있었으면 하늘이 나를 버릴 것이라고 변명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공자는 뜨거운 피가 흐르는 사람이었다.  

 

이 때문에 공자가 말씀하신 사랑도 이적을 행한 성인을 교조로 삼는 다른 종교의 사랑과 다르다. 유교의 교지인 仁에 대해 공자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사랑은 보편적이고 무차별적인 사랑이 아니다. 유교를 제외한 대부분의 종교는 사랑을 얘기하면서 원수도 사랑하라고 한다. 하지만 유교에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어떤 이가 덕으로 원한을 갚으면 어떻겠냐고 묻자 공자는 그렇다면 “덕에는 무엇으로 갚겠는가? 곧음으로써 원한을 갚고 덕으로써 덕을 갚는 것이다(或曰 以德報怨 何如 子曰 何以報德 以直報怨 以德報德, <논어> 헌문편)”라고 했다.  

 

자기 부모를 해친 원수를 사랑할 수는 없다. 유교에서 보면 자기 부모를 해친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인간 본연의 감정을 속이는 거짓이고 위선이다. 문제는 그 원한을 갚는 방식인데, 원한은 원칙과 정당한 방법으로 갚아야 하며,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는 은혜로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공자도 심히 미워한 인간 유형이 있다. 바로 향원이다. <논어>에는 향원이라는 말이 양화편에 단 한 번 나오지만 그 한마디 말이 갖는 무게는 천근만근 무겁다. 儒者로 자처하며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면서 현세의 영달에만 급급한 극단적 小人儒에 대한 통렬한 꾸짖음의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공자는 “향원은 덕을 해치는 자이다(子曰 鄕原 德之賊也, <논어> 陽貨篇)”라고 했고, 맹자는 “공자께서도 말씀하시기를 ‘같으면서 아닌 것[似而非]을 미워하노니 가라지를 미워함도 벼싹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해서요, 말재주가 있는 자를 미워함은 의를 어지럽힐까 두려워해서요, 말 잘하는 입을 가진 자를 미워함은 信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해서요, 정나라 음악을 미워함은 正樂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해서요, 자주색을 미워함은 붉은색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해서요, 향원을 미워함은 덕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해서이다”라고 했다. 

 

향원은 덕을 파괴하는 자로서 겉으로는 덕이 있는 사람인 체 행동하면서 실제로는 사람들을 속여 실속을 채운다. 유교를 말하면서도 그 도의 실현에는 관심이 없고 유교를 수단으로 삼아 현세적 명예와 이익의 추구에만 급급할 뿐이다.

 

선현이 향원을 경계한 말씀도 통렬하다. 율곡 이이는 <성학집요>에서 “대개 향원은 마음을 감추고 세상에 잘 보여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며, 세속과 부화뇌동하여 고식적이고 비루한 데 처하는 것을 편안히 여기고, 도를 행하는 선비를 억압하고 학문하는 길을 끊어 버리니, 그 해되는 것이 이단이 세상을 현혹시키는 것보다 더욱 심하다”라고 했고, 성호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성인이 미워하는 것은 날카로운 입으로 지껄이는 말이 定體도 귀착점도 없이 흑백을 변란시키고 시비를 전도시켜 나라를 망치는 데까지 이르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商나라가 망하게 되었던 까닭이다. 성인은 그 畢命의 말에 느낌이 있었던 것인 듯하다”라고 했다.   

 

향원은 언제나 자기가 옳다고 여기기 때문에 잘못을 저질렀어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반드시 변명하며 꾸며대기만 한다, 한편에서는 폭력과 거짓말을 일삼고 다른 한편에서는 도덕을 얘기하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성현들께서 왜 그렇게 향원을 경계했는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