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성지 곡부(曲阜)와 추성(鄒城)을 찾아서(3)
공묘(孔廟): 만인궁장(萬仞宮牆)에서 동문문(同文門)까지<br type="_moz">

만인궁장(萬仞宮牆)이다.
금성옥진방(金聲玉振坊)이다.
영성문(欞星門)이다. 그 뒤로 태화원기방(太和元氣坊)이 보인다.
우리 일행이 탄 셔틀버스가 공묘 입구에 도착하자 가슴은 기대에 부풀었다. 공묘(孔廟)는 공자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 있는 곳이다. 노나라 애공(哀公)은 공자의 사후 2년이 되던 해 공자의 집을 묘(廟)로 삼았고, 기원 전 205년 전한을 세운 한고조 유방(劉邦)이 노나라 공묘에서 제례를 올린 후 12명의 제왕이 이곳을 직접 방문했다고 한다.
공묘는 남북을 중심축으로 배치했고, 부속건물은 좌우대칭으로 배치했다. 중심축에 중로(中路)가 있고, 그 좌우로 동로(東路)와 서로(西路)가 있다. 면적은 140,000㎡이고, 남북 길이는 1,120m이다. 5殿, 1閣(팔작집), 1壇, 2廡(행랑), 2堂(남향 대청이 있는 집), 兩齋宿(재개할 때 묵는 집), 17碑亭(비석 정자), 54座門, 466間이다.
보통 사당(祠堂)은 신주(神主)를 모신 건물하나면 되나 공묘에는 신주를 모신 대성전 외에 수많은 건물이 있다. 이렇게 많은 건물을 세운 것은 역대 황제들이 공자를 존숭(尊崇)하여 이곳을 찾아 제례를 봉행할 때마다 새로 건축해 놓았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은 중요 건물을 배치한 중심축인 중로를 따라 만인궁장(萬仞宮牆)부터 금성옥진방(金聲玉振坊), 영성문(欞星門), 태화원기방(太和元氣坊), 지성방(至聖坊), 성시문(聖時門), 홍도문(弘道門), 대중문(大中門), 동문문(同文門), 규문각(奎文閣), 13비정(十三碑亭), 대성문(大成門), 향단(香壇), 대성전(大成殿), 침전(寢殿), 성적전(聖蹟殿) 순으로 방문했다.
셔틀버스에서 내린 후 일행은 측백나무 가로수 길을 걸어 만인궁장(萬仞宮牆) 앞에 도착했다. 궁장(宮牆)은 궁궐의 성문(城門)이다. 성문의 앞에 돌출되어 있는 옹성(甕城) 모양이다. 萬仞(만인)은 『論語』 「자장편」에서 취했다. 노나라 대부 숙손무속(叔孫武叔)이 "자공이 중니보다 어질다(子貢賢於仲尼)"고 하자 자공이 "내 집의 담은 어깨 높이 쯤 되어 누구든지 집안에 있는 것을 엿볼 수 있지만, 선생님 집의 담은 몇 길이나 되어 대문을 찾아 들어갈 수 없다. 아름다운 종묘와 백관의 많음을 볼 수 없다(賜之牆也及肩,窺見室家之好。夫子之牆數仞,不得其門而入 不見宗廟之美 百官之富)”고 했다. 위 글에서 청 건륭제(乾隆帝)가 공자에 대한 존경심을 표시하기 위하여 몇 길[數仞]을 ‘만인(萬仞)’으로 바꿔 쓴 것이다. 자공이 말한 바와 같이 만인궁장은 그 규모가 방문객을 압도했다.
만인궁장을 지나니 공묘 문 앞에 세운 첫 번째 석방(石坊)인 금성옥진방(金聲玉振坊)이다. 석방의 중앙에 “金聲玉振”이라고 붉은색 큰 글씨가 있다. 이곳에서 검표를 했고, 많은 여행객들이 해설자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금성옥진은『맹자』「만장하」에 나오는 구절 중에 들어 있다. 금성옥진이란 공자가 고대 성인(聖人)들의 사상을 집대성(集大成)하여 모두 갖추고 있는 성인이라는 점을 찬미하는 말이다. ‘금성(金聲)이라는 종(鐘)을 쳐서 시작을 알리고, 옥경(玉磬)이라는 악기를 쳐서 끝남을 알린다’라며, 시작은 ‘智의 일이고, 끝맺음은 聖의 일이다’라고 해석을 하고 있다. 또 다른 해석은 “금성(金聲)은 선(善)이고 옥음(玉音)은 성(聖)이다. 선(善)은 인도(人道)이고 성(聖)은 천도(天道)라며 오로지 유덕(有德)한 사람만이 금성(金聲)을 실현한 다음에 옥진(玉振)을 울리게 된다”라는 해석도 있다.
다음 관문은 공묘의 첫 문(門)인 영성문(欞星門)이다. 이 문은 반수교(泮水橋) 지나 큰 돌기둥 4개에 3칸으로 명(明) 가청 20년(1544년) 처음 세운 석문(石門)이다. 돌기둥이 크고 높다. 황제가 먼저 제사를 올리는 별이 영성(欞星)이고, 공자를 이 별과 같이 위대하다는 비유한 것이다.
영성문을 통과 하자 바로 태화원기방(太和元氣坊)이다. 4개의 돌기둥에 3칸의 석방이다. 석방 중앙에 “太和元氣”라고 진한 하늘색의 큰 글씨로 새겨 놓았다. 태화원기는 공자의 사상이 우주 만물의 근원과 같다는 표현이다.
다음은 지성방(至聖坊)다. 태화원기방과 같은 모양의 석조건축물로 형태는 방(坊)이다. 석방 중앙에 “至聖廟”라고 적색 전서체 글씨로 새겨 놓았다. 지성(至聖)은『예기(禮記)』「중용(中庸)」에서 孔子天下至聖(공자는 천하의 지극한 성인이다)에서 취했다.
다음은 성시문(聖時門)이다. 공묘의 두 번째 대문으로 명나라 때 처음 만들었고 1730년 청 옹정제가 이름을 지었다. 성시(聖時)는 『맹자』“孔子聖之時者”에서 따온 말로 ‘공자는 시대를 초월한 성인’이란 뜻이다.
다음 문은 삼문(三門)이 있는 홍도문(弘道門)이다. 빨간 바탕에 쓴 편액(扁額)이 정교하다. 1377년 명나라 홍무10년 세웠으며, 이 편액은 청 옹정제가 논어의 ‘人能弘道 非道弘人(사람이 도를 넓힐 수 있는 것이지 도가 사람을 넓게 하는 것은 아니다)’에서 취하여 직접 쓴 것이다.
다음은 청 건륭제가 친필로 쓴 4번째 출입문인 대중문(大中門)이다. 원래는 중화문(中和門)이었다. 이 문은 5칸 3문이며 기와지붕이다.
그 다음에 동문문(同文門)을 통과했다. 원래는 참동문(參同門)이었고, 그 후 『중용』 “書同文 行同倫 今天下車同軌”에서 동문(同文)을 따와 지었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였듯이 공자께서 윤리를 하나로 세운 것을 두고 한 말이다.(계속)
성시문(聖時門)이다.
홍도문(弘道門) 편액이다.
일행이 측백나무 고목을 배경으로 홍도문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동문문(同文門) 편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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