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성지 곡부(曲阜)와 추성(鄒城)을 찾아서(4)
공묘(孔廟): 규문각(奎文閣)부터 대성전((大成殿), 후토사(后土祠)까지<br type="_moz">
규문각(奎主閣)이다. 역대의 황제로부터 하사된 경서 등 서적을 비치했었다. 이 건물은 단 하나의 못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성문 안쪽 사각형의 겹처마 정자 안에 있는 행단(杏壇) 표지석이다. 공자가 학문을 가르치던 장소로 『장자(莊子)』 「어부(渔父)」 편에 등장한다. ‘공자가 치유의 숲을 거닐다가 행단에 앉아 쉴 때, 제자들은 책을 읽고 공자는 거문고를 연주했다’는 문장 속 행단이 바로 이곳이다.
대성전의 정문인 대성문(大成門)이다.
만인궁장부터 여러 방(坊)과 문(門)을 통과했고, 이번에는 각(閣)인 규문각(奎文閣)을 지난다. 고대 천문학은 하늘의 별자리를 28개 무리로 나누고, 그 중 문관의 우두머리이자 문장을 주관하는 별자리 이름을 규(奎)라고 했다. 공자를 문장을 주관하는 별로 본 것이다. 이곳에는 군주로부터 하사받은 많은 서적을 보관하는 건물이라고 하여 원래 이름은 장서루(藏書樓)라고 했다. 1018년(천희 2년)에 축조되어 천년이 넘은 건물로 단 하나의 못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일행은 십삼비정(十三碑亭)에 도착했다. 한고조 유방이 방문 기념으로 비석을 세우고 그 비석 위에 정자를 세웠다. 이렇게 비석 위에 정자를 비정(碑亭)이라 한다. 한고조 이후 12명의 제왕이 이곳을 방문할 때마다 비석을 하나씩 세워 13비정이 되었다. 금(金)대에 2개, 원(元)대에 2개, 청(淸)대에 9개를 세웠다. 특히 뒷줄 5개 비정 중 청나라 황제들이 세운 4개가 걸작으로 꼽힌다. 일행이 이곳에 도착했을 때 여러 중국인이 한 비석 앞에 몰려 있었다. 그 비석이 청나라 황제 강희제가 세운 유명한 비석이다. 이 비석은 이곳에서 600km 떨어진 북경 서산에서 가져 온 것으로 무게가 65톤으로 운하를 이용했고, 겨울에 물을 뿌려 얼린 뒤에 끌고 왔다고 한다.
십삼비정(十三碑亭)을 지나자 대성전의 정문인 대성문(大成門)에 이른다. 대성문은 3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운데 문이 대성문(大成門)이고, 그 우측문이 금성문(金聲門), 그 좌측문이 옥진문(玉振門)이다. 대성문 안에 행단(杏壇) 표지석이 있다.
성문 안 중간에 살구나무를 심어 놓아 행단(杏壇)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곳은 공자가 학문을 가르치던 장소로 『장자(莊子』 「어부(渔父」 편에 등장한다. ‘공자가 치유의 숲을 거닐다가 행단에 앉아 쉴 때, 제자들은 책을 읽고 공자는 거문고를 연주했다’는 문장 속 행단이 바로 이곳이다. 그러나 원래는 대성전이 있던 자리다. 1018년 공자의 45대 손이 공묘를 수리하면서 대성전을 지금의 자리로 옮기고, 행단을 만들어 살구나무를 심었다고 전해진다.
우리 일행은 12시쯤 공묘 대성전(大成殿)에 도착했다. 대성전은 신주를 모시는 하나의 사당이라고 할 수 있지만 북경의 자금성 태화전에 비해도 손색이 없다. 규모가 대단히 크면서도 균형이 잘 잡혀 편안한 자태다. 황색 기와는 공자가 황제와 같은 권위를 이야기하고 있다.
공묘(孔廟)는 북경의 고궁(故宮), 태안의 대묘(垈廟), 승덕피서산장(承德避暑山庄)과 함께 중국 4대 고건축으로 알려졌다. 모든 공묘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 가로 54m, 세로 34m, 높이는 32m에 이른다. 28개의 장식된 기둥으로 받쳐져 있고, 각각 6m의 높이와 0.8m의 직경이다. 궁전 정면의 10개의 기둥은 휘몰아 감기는 용으로 장식되어 있다. 실내 중앙에는 3.4m의 거대한 공자 조각상이 있다.
대성전 안에는 여러 편액이 걸려 있다. 강희제가 쓴 '萬歲師表(오래도록 스승이자 표상이다)', 광서제가 쓴 '斯文在茲(모든 문화와 문명이 공자 안에 있다)', 옹정제가 쓴 '生民未有(백성이 생긴 이래 아직 공자 같은 사람은 없다)'이 있다.
공자상 옆에는 아래에 건륭제의 친필 주련이 있다.
氣備四時與天地鬼神日月合其德(기는 하늘과 땅에서 사계절 정연한 질서가 있고 덕행은 천지와 합하고 일월과 같이 빛난다).
敎垂萬世繼堯舜禹湯文武作之師(교육은 만세에 걸쳐 요임금은 순임금에 전하고, 순임금은 우임금에 전하고, 우임금은 탕왕에게 전하고 탕왕은 문왕, 무왕, 주공에 전하고, 문무주공은 전한 공자 스승이다).
우리 유림 일행은 대성전 분향소에서 윤금열 고성향교 원임 전교가 헌향관을 맡고 김용헌 수원향교 장의가 집례로 분향례를 올렸다. 집례의 창홀에 따라 입배로 4배를 올렸고, 헌향관은 향을 피운 후 분향소에 꽂았다. 분향에 앞서 일행은 월대 계단에서 대성전을 배경으로, 분향 후에는 대성문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했다.
일행은 다음 대성전 뒤에 있는 침전(寢殿)으로 이동했다. 침전은 대성전 뒤에 있는 당송대에 지은 공자 부인 제사를 위한 건물이다. 침전 가운데에 공자 부인의 위패가 감실 안에 모셔져 있다. 위패에 "至聖先師夫人神位"라고 쓰여 있었다.
중로의 맨 끝 건물이 공자의 출생부터 영면할 때까지의 생애를 그림과 글로 바위에 새긴 성적전(聖跡殿)이다. 일행은 성적도(聖跡圖)를 관람하고 동쪽 동로에 위치한 토지신 제사를 올리는 후토사(后土祠), 공자의 후손의 사당인 가묘(家廟)를 보고, 옛 우물인 고정(故井), 해자(垓字)를 지나 모든 공묘의 관람을 마치고 동쪽 성문으로 나왔다. 동로(東路)의 옛 우물(故井) 옆에 공자의 9대 손자 공부(孔鮒)가 진시황의 분서갱유 때 『논어(論語)』,『효경(孝經)』 등 유교 경서를 벽에 수장(收藏)한 공로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노벽(魯壁)”있으나 그냥 지나친 게 아쉬웠다.
공묘(孔廟) 대성전(大成殿)이다.
수원향교와 간성향교 일행이 대성전 분향소에서 사배(四拜)하고 있다.
대성전 천정에 걸린 현판이다. 청나라 4대 황제 강희제가 쓴 '萬歲師表(오래도록 스승이자 표상이다)'이고, 청나라 11대 황제 광서제가 쓴 '斯文在茲(모든 문화와 문명이 공자 안에 있다)'이다.
대성전 감실에 있는 공자상과 위패이다.
공자 부인에게 제사 지내는 침전(寢殿)에 있는 감실이다. 감실 중앙에 "至聖先師夫人神位"라고 쓴 위패가 모셔져 있다.
옛 우물인 공택고정(孔宅故井)이다. 우물 뒤 좌측편에 노벽(魯壁)이란 글씨가 일부 보인다. 노벽은 진시황이 분서갱유 때 공자의 9대 손자가 『論語』,『孝經』 등 유교 경서를 벽에 수장(收藏)한 곳이다.



![무신사, ‘책상을 탁쳤더니 억하고 말라서’ 카드뉴스 논란 확산 [유교경영리포트]](/uploads/4/legacy/photos/20260521/art_17791935224319_134c6c.jpg)

![[단독] 구리시장 경선판 흔드는 ‘유령 여론조사’... 언론사 명의 빌린 ‘불법 대리 조사’ 의혹 포착](/uploads/4/legacy/photos/editor/2604/20260417081433_gxgnwrel.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