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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시론

특별기고 - 1398년 창건한 유서 깊은 '해남향교'

손은수 기자
2019.07.22·5분 읽기·조회 24

 

해남향교 대성전

 

향교의 주 기능은 교육과 제향이며 어느 향교를 막론하고 경내는 문묘 구역과 강학 구역으로 크게 나뉜다.

 

이 양 구역 내의 중심 건물은 대성전과 명륜당으로 이 두 건물이 하나의 직선 축을 이루고 있으며, 이 축선에 직교되게 부축선을 계획해 동·서무와 동·서재가 대칭으로 정연하게 배치된다.

 

그리고 향교 건축에서는 향교가 입지한 지형에 따라 문묘 구역과 강학 구역의 위치가 다르게 나타나는데, 즉 평탄한 지형에 향교가 위치할 때는 전면에 문묘 구역을 두고 후면에 강학 구역을 배치하는 전묘후학, 경사진 지형에 향교를 건립할 때에는 그 지형을 2~3단으로 정지한 후에 전면(아래단)에 강학 구역을 설정하고 후면(뒷면)에 문묘 구역을 배치하는 전학후묘 배치법이다.

 

해남향교는 경사지형을 터로 해 건립된 관계로 전학후묘의 배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남남서향을 정면으로 하여 일축선상에 대성전과 내삼문, 그리고 명륜당을 배치하였다. 외삼문은 중심축선상에서 완전히 벗어나 좌측 편에 비스듬히 건립되었고 교직함은 강학 구역 우측 담장 밖에 별도로 건립되었다.

 

해남향교에서는 대성전 전면의 동·서무 건립 위치에 양무가 건립되지 않고 좌측 편에는 증판실을 우측편에는 제기고를 건축한 사실에 특히 주목된다.

 

「해남향교창수전래기」에 따르면 해남향교는 지금의 현산면 향교리에 1398년(태조 7) 현유(賢儒, 어진 선비 또는 훌륭한 유학자를 말함)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창건했다.

 

이후 고해남(고현, 지금의 현산면)에서 처음 이건할 때의 향교구기는 고도리 향교터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져 왔으나 분명치 않아 1482년(성종 13년)에 이설 중수하였던 사실을 조창연대로 잡고 있다.

 

이후 해남향교는 1549년(명종 4), 1611년(광해군 3), 1673년(헌종14), 1702년 (숙종 28), 1739년 (영조 15), 1816년(순조 16), 1844년(헌종10)에 부분적인 개보수가 있었다. 현재 해남향교가 위치한 읍 수성리로 이전한 것은 1739년으로 이주진 현감 때였으며 1844년 중수시에 전체적인 개수와 고사의 신축이 있었다.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77호로 지정된 해남향교 대성전(大成殿)은 공자 외에 26인의 위패가 모셔져 있고 내부는 통칸으로 꾸미고 전면 1칸은 퇴칸으로 하여 신위봉안 및 제향의식 시에 편리하게 계획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전각이다. 지붕은 맛배지붕이며 양 박공 면에는 풍판을 달았다.

 

기단은 막돌허튼층쌓기 구조이나 현재는 화강암 계단을 기단전면 모두에 설치해 이제는 그 형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막돌초석 위에는 원통형의 원주를 세웠으며 기둥머리는 창방으로 결구하고 주두를 얹었다. 공포는 기둥 위에서만 포를 짠 외이출목의 주심포형상이나 이미 그 형상은 살미의 끝이 하나의 판위에 4개의 쇠서가 복잡하게 뻗어 나와 있는 등 익공식화되었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된 단층의 강당으로 내부는 모두 넓게 대청으로 꾸몄다.

 

동재는 정면 6칸, 측면 2칸의 팥작집으로 전면의 반 칸 폭으로는 툇마루를 놓았으며, 그 안쪽으로는 좌측으로부터 대청과 온돌방, 그리고 부엌을 꾸민 살림집의 평면형으로 되어 있다.

 

기단은 막둘허튼층쌓기 형식이며 초석은 전면 중앙의 5개만 중앙으로 오목하게 홈을 판 원형의 가공초석이고 그 외는 막돌초석을 사용햤다. 기둥은 원통형의 원주를 세웠으며 기둥머리는 창방으로 결구하고 창방과 주심도리(柱心道里)의 장설(長舌) 사이에는 주간마다 3개씩의 소루를 배치하였다. 기둥 위에는 주두(柱頭)가 놓이고 포의 짜임 없이 도리(道里)와 보만으로 결구시켰다. 도리는 모두 굴도리이며 가구는 일반적인 5양구조로 되어 있다.

 

서재는 정면 5칸, 측면 1칸 반의 맛배집으로 동재와 비슷하게 일반 살림집평면형으로 되어 있다. 좌측으로부터 방과 부엌, 그리고 다시 방 순으로 꾸몄으며 우측의 1칸과 중앙의 방 전면에는 반 칸 폭으로 마루를 설치하였다.

 

해남향교는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인이 정원 30인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졌다. 매년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에 석전을 봉행하며, 매월 음력 초하루·보름에 대성전 분향을 하고 있다. 더불어 원사제향, 성년례, 인성교실, 도덕성 회복결의대회, 기로연, 작명례 등의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해남향교에서 소장하고 있는 전적은 판본 74종 247책, 사본 18종 22책인데 이 중 필사본인 『유안』·『청금안』·『양사재안』·『문묘보존계안』·『향약계조목』 등은 지역의 향토사연구에 귀중한 가치가 있는 자료이다.

 

한편, 현재 해남향교는 박천하 전교, 최동섭 유도회장, 임형기 보존계장, 김문재 사무국장을 비롯해 관련 장의들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