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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시론

특별기고 - 강태공(姜太公)은 낚시꾼이었나?

이찬재
2019.07.28·4분 읽기·조회 45


 

 

이찬재 / 충주향교 교화장의, 한문·고전 강사

 

 


 

낚시하는 사람의 대명사로 불리는 강태공(姜太公)은 어떤 인물인지 궁금하다. 강태공은 그의 조상이 우(禹)임금 때 치수(治水)에 공이 있어서 여(呂)땅에 봉작(封爵)되었기에 봉지(封地)인 여(呂)를 성씨(姓氏)로 삼아 여상(呂尙)이라고 불리지만 본래의 이름은 강상(姜尙)이다.

 

젊었을 때부터 학문에 정진하였으나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 몹시 빈한(貧寒)하고 불우한 삶을 보내고 있었다.

 

그의 아내 마 씨는 품팔이를 해서 글공부만 하는 무능한 강태공을 어렵게 먹여 살렸다. 강태공의 나이 여든이 가까울 무렵 어느 날 아내는 일을 나가면서 멍석에 널어놓은 강피(糠皮)가 비에 젖지 않게 좀 들여다보라고 당부하였다.

 

저녁에 돌아와 보니 멍석에 널어놓은 강피는 떠내려갔고 강태공은 그것도 모르고 방 안에서 글만 읽고 있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글공부만 했다. 화가 난 아내는 강태공을 버리고 집을 나갔다.

 

혼자가 된 강태공은 위수(渭水) 반계천에서 매일 낚시를 하며 앉아 있었다. 미끼도 없는 곧은 낚시 바늘을 냇물에 드리우고 세월을 낚았던 것이다.

 

은(殷)나라 제후국의 서백(西伯)이었던 창(昌)이 꿈에 현인을 만나는 꿈을 꾸고 위수 근처로 사냥을 나갔다가 강태공을 만나 대화를 해보니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 도움을 청하여 국사(國師) 겸 재상으로 모셔왔으므로 태공망(太公望)이라는 말이 생겼다.

 

서백 창(昌:文王)이 죽고 그의 아들 발(發:武王)이 제후로 즉위하자 은(殷)나라 주왕(紂王)을 정벌하여 멸망시키고 주(周)나라를 세웠는데 강태공이 가장 큰 공을 세웠다고 한다.

 

강태공을 버리고 떠난 전처(前妻)는 막노동꾼과 재혼하여 어렵게 살고 있다가 강태공이 제후(諸侯)가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 잘못을 뉘우치며 다시 합치기를 간청(懇請)하였다. 이때 강태공은 그릇의 물을 땅에 쏟아버린 다음 그녀에게 다시 주워 담으라고 하며 거절하였다. 여기서 나온 속담이 '복수불반(覆水不返)'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서는 육도(六韜)를 태공망이 써서 중국 병가(兵家)의 비조(鼻祖)라고 소개했다. 강태공은 용인(用人)술로 유명하여 그의 팔징지법(八徵之法)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첫째, 질문을 던져 일에 대한 전문지식이 있는지를 관찰하라.(問之以言 以觀其詳) 인재는 전문적인 소양을 갖추어야 하는데 소위 낙하산인사는 전문성이 부족하여 업무수행을 잘 못하는 것이다.

 

둘째, 말로써 궁지에 몰아넣고 위기상황을 맞게 해 그 사람의 대처 능력을 관찰하라.(窮之以辭 以觀其變) 다가오는 고난이나 위기를 슬기롭게 대처할 능력을 갖추었나를 검증하라는 것이다.

 

셋째, 사람으로 하여금 그 사람의 성실성을 관찰토록 하라.(與之間諜 以觀其誠) 성실성이 근본 바탕이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넷째, 명백한 질문으로 그 사람의 덕성(인격)을 살피라.(明白顯問 以觀其德) 사람 됨됨이를 알 수 있는 인격적 소양을 보고 사람을 뽑으라는 것이다.

 

다섯째, 재물을 맡겨 보아 그 사람의 청렴성을 관찰하라.(使之以財 以觀其廉) 재물을 탐하는 사람은 부정과 부조리에 휘말리기 쉽기 때문에 청렴성이 필요하다.

 

여섯째, 여색으로 시험해 보아 그 사람의 정조관념을 살펴보라.(試之以色 以觀其貞) 사생활이 문란하면 업무에 집중할 수 없음을 지적했다.

 

일곱째, 어려운 상황을 알려 주고 그 사람의 용기를 관찰하라.(告之以難 以觀其勇) 책임감을 가지고 업무에 열정을 바치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여덟째, 술을 마시게 해 취하게 한 후 그 사람의 취중 태도를 살피라.(醉之以酒 以觀其態) 취중에서 평소에 감춰진 언행을 볼 수 있어 본성을 알아 볼 수 있다고 하였다.

 

강태공의 낚시질은 취미나 휴식이 아닌 일종의 정치행위였다. 낚시질로 물고기를 상대하다 보면 정치에서 인재를 적절하게 부릴 수 있는 지혜를 배우거나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고기 잡는데 목적을 두지 않았고 세월을 낚으며 때를 기다렸던 강태공은 문왕(文王)을 만나 무왕(武王)의 스승이 되어 대업(大業)을 이룬 현인(賢人)으로 천하를 얻은 정치인이지 낚시꾼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