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성지 곡부(曲阜)와 추성(鄒城)을 찾아서(5)
공부(孔府) 관람<br type="_moz">
공부 정문 대문(大門)이다. 많은 사람들이 입장하고 있다. 정문 두 기둥에 주련이 있다.
정부에 있는 현판 '성부(聖府)'이다. 성부는 공자가 성인이라 공부 대신 성부라고 했다.
명나라 때 세운 공부이문(孔府二門)이다. 이문 뒤에 중광문이 보인다.
공부(孔府)는 공자 후손의 관청이며 자손들이 거주하는 저택이다. 예전에는 연경공부(衍聖公府)라고 했고, 지금은 공부(孔府)라고 부르고 있다. 규모가 고궁에 버금가는 귀족 저택으로 그 면적이 7만평방미터며, 사당, 누각, 대청 등 건축물이 총 463칸이다. 공묘와는 담하나 사이를 두고 있다.
공자의 후손은 중국의 최고 귀족 가문이라 할 수 있다. 자랑스러운 혈통으로 명예와 부귀를 다 누린 가문이다. 관청이 집안에 있고 자손이 살 수 있는 저택이 있는 중국에서 최고의 가문이다.
우리 일행은 곡부궐리빈사(曲阜厥里賓舍)호텔 근처 한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이 식당의 이름은 우리 일행에 걸맞게 ‘유림찬청(儒林餐廳)’이다. 일행은 오후 1시 반에 공부(孔府) 정문으로 입장했다.
일행은 대문(大門), 이문(二門), 중광문(重光門), 대당(大堂), 이당(二堂), 삼당(三堂), 내택(內宅), 내택문(內宅門), 전상방(前上房), 후당루(後堂樓), 화청(花廳) 순서로 방문했다.
공부 정문 대문(大門)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이 입장하고 있다. 정문 두 기둥 주련에 오자(誤字)가 있다고 해서 눈여겨보았다. 아래는 그 주련 글씨다.
'與國咸體安富尊榮公府第'(나라와 다 함께 편안함과 부귀함을 누리는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공자의 집안 ). '富'자에 갓머리 변이어야 하나 점 하나 빠져 있는 민갓머리 변이다. 누군가 점을 찍어 놓은 흔적이 보인다. 글자가 틀렸지만 공자의 집안에서 쓴 글을 시비하는 사람은 없으며 '富貴无頂'(부귀는 끝이 없다)라며 좋은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同天幷老文章道德聖人家'(나라와 함께 늙어가며 문장과 도덕이 있는 성인 집안). '文章'에서 '章'자가 열십자에서 세로 그은 것이 설입 변(立)까지 올라가 있다. 틀린 글자지만 사람들은 이를 두고 문장이 하늘에 닿았다는 '文章通天'으로 좋게 풀이하고 있다.
정문을 지나자 명나라 때 세운 공부이문(孔府二門)이 나온다. 다음과 같은 주련이 있다.
'萬家承乾 歲歲春光寒轉暖'(모든 가족이 하늘을 받들으니 해마다 봄빛은 차가움을 따뜻하게 바꾼다).
'三陽開泰 年年淑景去還來'(석 달 봄볕이 태평한 시절을 여니 매년 맑은 경치가 가면 다시 온다).
이문(二門) 뒤에 중광문(重光門)이 보인다. 중광문 앞에서 일행은 기념촬영을 했다. 문 위에 '은사중광(恩賜重光)'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이 편액은 명나라의 황제인 가정제(嘉靖帝)의 친필이다.
일행은 중광문을 지나 대당(大堂)으로 들어갔다. 대당은 연성공(衍聖公)의 집무실이다. 휘장으로 둘러 친 큰 책상이다. 큰 책상으로 미루어 그 벼슬이 얼마나 높았는지 짐작이 간다. 송나라 때 인종은 공자 46대손인 공종원(孔宗願)에게 자손 대대로 물려줄 수 있는 벼슬인 연성공(衍聖公)에 봉해 곡부 지역을 다스리게 했다.
이당(二堂)과 삼당(三堂) 사이 서로(西路) 후손들이 독서, 시, 예(禮)를 배우는 충서당(忠恕堂)이 있었으나 그냥 지나쳐 삼당(三堂)으로 바로 갔다. 이곳에서 연성공이 4품 이상의 관원을 접견하던 곳이다. "6대가 같이 엿을 먹는다"는 육대함이(六代含飴)란 현판이 걸려 있다. 화목한 가족이란 뜻이다.
삼당을 지나 내택문(內宅門) 뒤에 있는 공부의 명물인 탐벽도(貪壁圖)가 이목을 끌었다. 몸은 기린 형상이고 머리는 용 모양이다. 태양을 삼키기라도 할 듯 입을 벌리고 있다. 금은보화를 삼키고 그리고 부족해 태양을 삼키게 되면 바다에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한다. 후손들에게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교훈을 주는 벽화이다. 우리 일행은 욕심을 탐하지 말자는 마음으로 기념촬영을 했다.
우리 일행이 후오당(后五堂) 앞에서 영상화면을 보면서 잠시 쉬었고, 후화원 정원(後花園), 후화청(後花廳), 연꽃 정원을 둘러보고 공부 관람을 마쳤다.
일행이 중광문을 지나 대당(大堂)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곳은 연성공(衍聖公)의 집무실 책상이다. 연성공 벼슬은 후손에게 물려줘 1935년까지 이어졌다.
이당을 지나 삼당(三堂)이다. 이곳에서 연성공이 4품이상의 관원을 접견하던 곳이다. "6대가 같이 엿을 먹는다"는 육대함이(六代含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삼당을 지나면 內宅門(내택문) 뒤에 있는 탑벽도(貪壁圖)다. 몸은 기린 형상이고 머리는 용 모양이다. 후손들에게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교훈을 주는 벽화이다.
일행이 후오당 앞에서 영상화면을 보면서 잠시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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