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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시론

광복 74주년을 맞아 유림들께 드리는 청원서

전남표 기자
2019.08.12·8분 읽기·조회 25


강원도향교재단 이사장 김인규

 

『주역』 「계사전」에 “역(易)이 궁즉변(窮則變)하고 변즉통(變則通)하여 통즉구(通則久)라 시이자천우지(是以自天祐之)”라는 말씀이 있는데, 지금 유림사회에는 바로 이러한 정신을 적용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궁한데도 변하지 못하면 통할 수도 없고 오래 지속될 수도 없다는 사실은 자명합니다.

성균관은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성균관장(대사성 정3품)은 국가의 인재를 양성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 이후 지방에서 선출된 전교에게 선임장을 수여하며 향교를 통할 지원, 관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균관의 모습은 최고 학부의 기능도 사라지고 향교를 통할 관리할 능력도 없는 지위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최근 성균관을 둘러싼 많은 잡음으로 유림은 혼란에 빠졌으며 성균관의 위상은 날로 실추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균관의 위상과 현재의 모순을 극복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기 위하여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첫째, 성균관장의 자격 기준이 필요합니다.

성균관장은 유림의 수장이기에 자격 기준을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교철학을 전공한 학자 출신이라든가 또는 전교 역임자 등의 기준이 필요합니다. 교수 역임자 중에서 대학총장을 선출하여 교수 임용권을 부여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교육기관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직책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전교 신분은 적어도 지역사회에서 인정받고 검증받은 사람으로 유림 대표인데 반하여 검증받지 않은 성균관장이 전국의 전교를 대표할 수 있습니까? 격이 맞지 않습니다. 적어도 전교라도 역임했다면 출신 지역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부끄러운 일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학력 문제나 소양문제가 나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최소한의 자격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불가이무치(人不可以無恥)니 불치불약인(不恥不若人)이면 하약인유(何若人有)리오”라는 맹자의 말씀을 비교해 볼 필요가 절실하다고 하겠습니다.

둘째, 금권(金權) 배척입니다.

예로부터 어느 시대나 막론하고 금권이 청탁(淸濁) 문제와 정·부정(正·不正) 문제의 발단입니다.

더욱이 유림사회는 모범이 되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성균관장 입후보시에 거액의 기탁금과 수십 명의 부관장 임명 시에 관행적으로 요구했던 헌성금 규칙을 중단해야 합니다. 정부기관에도 부총리가 두 명 뿐인데 세상천지에 부관장을 35명이나 둔다는 것은 매관매직이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균관장 출마 시에 거액의 출마비용을 내도록 만든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솔직히 청빈한 유림은 꿈도 꾸지 말라는 뜻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러한 규칙을 정해놓고 윤리도덕을 외친다면 웃음거리가 될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성균관에 도덕성, 공정성, 정당성의 문제가 있다면 존립이 위태롭게 되어 “사상루각(沙上樓閣)에 풍전등화(風前燈火)”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과이불개(過而不改)가 시위과의(是謂過矣)”라 하였듯이 이제라도 선비정신으로 선비의 길을 간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공부자의 정명론(正名論)을 따라야 합니다.

물론 경영자 입장에서는 어려움이 있겠지만 “소빈천(素貧賤)이면 행호빈천(行乎貧賤)”이라 했으므로 전국 유림의 중지를 모으면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심불재언(心不在焉)이면 시이불견(視而不見)하고 청이불문(聽而不聞)”이란 말씀을 기억하면 모든 일이 마음먹기에 달린 것입니다.

셋째, 정통성 보존과 계승입니다.

유학은 수천년의 역사와 정통성을 보존하고 계승했습니다. 공부자께서 한 번 집대성하셨고, 이후 송대의 주자께서 신유학으로 새로운 변화와 체제를 수립했으며, 그 학문은 우리나라 18현으로 계승되어 왔습니다. 이제 이러한 유학의 정통성을 지금 우리 유림이 보존하고 계승해야 합니다.

1910년 일제 강점기 이전까지, 오랜 역사 동안 한민족은 오로지 유학을 중심으로 윤리도덕을 실현하고 정의사회를 구현하였습니다. 나라의 임금도 경연(經筵)을 통하여 경전을 익혔고, 과거제도를 실시하여 인재를 등용하며 선정을 베풀었습니다.

이토록 숭고한 전통학문을 무지의 소치로 인하여 종교 운운하면서 혹시라도 교주라는 착각을 갖게 한다면 어불성설(語不成說)이 아니겠습니까?

일제 강점기 동안 성균관을 경학원으로 강등시켜 교육기관 기능을 폐쇄하고 다만 성현 제향만을 용인해서 순종시키는데 용이하도록 하기 위한 종교편향 술책임을 잊었단 말입니까?

본래 섬나라 사람들의 성향은 욕망을 대륙으로 향하고 있어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켰고, 1868년 메이지 유신으로 정한론(征韓論)을 내세우더니 결국 강제로 한일병탄을 통해 제국주의 기반을 공고히 한 후 태평양(2차 대전) 전쟁까지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요즘도 F-35 전투기 42대 외에 100대를 추가한다는 설이 있어 이미 군사대국으로 가고 있는데 유림사회마저 일제 강점기 산물을 청산하지 못한다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동북아의 문명을 점철해온 유학이 공부자의 천명사상(天命思想)에 근거하여 시대적 종교성이 조금 있긴 하지만 종교로 오인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절대적으로 타종교에서 염원하는 기복신앙과 추상적인 사후미래에 대한 관념론과는 엄격히 구분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은 성균관의 정통성을 바로 세우고 경전교육을 확대하여 신진 유림을 양성해야 하며 사문진작(斯文振作)에 사명감을 다해야 합니다. 임중도원(任重道遠)의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한갓 헛된 감투욕만 채우려 한다면 반만년 이어온 정통성 보존과 전통계승을 어찌하란 말입니까? 경전교육을 하지 않고 제향만을 일삼으며 사이비로 흐른다면 과연 누구의 책임이라 보십니까?

그나마 석학과 원로 유림이 계실 때 바로 세우지 않으면 10년 내에 쇠락할 풍랑을 수수방관(袖手傍觀)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인무원려(人無遠慮)면 필유근우(必有近憂)”라는 말씀을 명심해야 합니다.

넷째, 유림조직 대통합입니다.

성균관, 성균관유도회총본부, 재단법인성균관 등 중앙의 유림조직은 세 조직으로 구분되어 상호 협력하거나 통일된 활동을 하지 못하고 서로 불신하며 헐뜯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동안 성균관은 경학원으로 실추되고, 경학원은 친일 유림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독립운동파 유림은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하였으며, 심산 김창숙 선생은 파리장서(독립 청원서)운동을 하다가 광복을 맞이하여 전국 유림을 결집하였습니다. 그 결과 유도회총본부를 창건하고 성균관대학교 설립하여 성균관을 복원하며 유도회를 빛내는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는 친일파를 관용하고 포용책을 썼습니다. 그 이유는 일본의 지정학적 위치가 중요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미·일 동맹관계가 남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이에 편승하여 친일 유림파와 보수 유림파가 끊임없이 충돌하여 소송이 끊이지 않았고 제3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유도회는 폐쇄되었다가 10년 후에 다시 조직되었습니다.

이토록 심산 김창숙 선생께서 정통 유림의 도통을 계승하신 업적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광복 74주년을 맞이한 이제는 대의적으로 유도회총본부와 성균관의 대통합을 이루어 교육기능과 교화기능을 주관해야 합니다. 부디 대의적으로 21세기 유림사회를 이끌기 위하여 힘을 모아 주실 것을 간곡히 호소합니다.

유림사회의 전환점을 맞이하여 짧은 지식과 좁은 소견으로 감히 전국 유림 제현님께 공심(公心)을 호소하게 된 점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문일침(頂門一鍼)의 가슴 아픈 자책이 초석이 되어 “일신(日新) 일일신(日日新) 우일신(又日新)”의 정신을 실현하기 위한 환골탈태(換骨脫胎)의 정화운동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대의를 전제로 말씀 드린 제 소견에 혹여 마음의 상처를 받으신 유림이 계신다면 감히 관용을 구합니다. 오천년의 유구한 역사와 빛나는 전통을 계승하는데 백의종군(白衣從軍)하며 하나의 밀알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