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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시론

경북 울진군 낙동정맥 트레일에서 물이 옷 벗는 소리가 들린다

장부중
2019.08.20·4분 읽기·조회 37

장부중 기자

 

낙동정맥이 배태한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전곡리 송리재 골포천에서 ‘물이 옷 벗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물이 옷 벗는 소리’는 어떤 소리일까. 영남의 삶과 문화를 잉태한 태백산맥과 낙동강이 어울려 영남 700리를 적시며 낙동정맥은 아마득한 옛적부터 지금까지 또 셀 수 없는 앞날까지 사람살이를 보듬고 모둠살이를 만든다.

강과 내는 필연적으로 길을 만든다. 길은 길로 이어져 삶의 곡절을 껴안아 기필코 마을로 닿는다. 낙동정맥 트레일은 영남사람들의 핏줄이다. 낙동정맥 트레일 울진 구간의 시작은 인근 봉화군에 속한 산중의 역사(驛舍) 승부역 건너편 송이재(松利宰)로 이어지는 ‘벼리길’부터 사작된다. 송이재는 낙동강의 지류 골포천이 만든 고개마루다.

‘눈꽃축제와 백두대간 협곡열차’로 이름난 승부역은 울진사람들에게는 아쉬운 기억의 현장이다. 본디 승부역은 울진 소유였다. 지난 1956년 강원도 울진군 금강송면 전곡리에서 영암선 개통에 따라 보통역으로 산중사람들의 애환과 삶을 실어 날랐다.

지난 1983년 2월 15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당시 울진군 금강송면 전곡리에서 봉화군 석포면 승부리로 편입됐다. 하늘을 받치고 있는 금강소나무의 위용이 그렇고, 물살이 휘감고 도는 아마득한 절벽이 그렇다.

절벽 낮은 자리에 뱀허물처럼 가느라단 길이 흐릿하다. 조도잔(鳥道棧)이다. 조도잔은 벼랑과 벼랑을 잇는 구름사다리를 뜻한다. 울진사람들은 이를 ‘벼리길’이라 부른다. 조선왕조 궁궐을 올리기 위한 금강소나무를 실어내면서 전내마을은 ‘산판마을’로 모습을 바꿨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 시절, 수탈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었다. 그때 그시절 ‘황장목(黃腸木)’으로 불리며 울진을 지키고 울진을 가꾼 금강송은 조선조 궁궐 대들보에서 일제강점기 수탈의 자원으로 마구잡이로 베어졌다.

전내마을에서 베어진 금강송은 목두쟁이들에 의해 골포천을 지난 낙동을 건너 서울로, 또한 경향각지로 건너갔다. 금강송의 이명(異名)으로 붙박힌 ‘춘양목’의 이름도 이렇게 붙여졌다. 전내마을로 이어지는 벼리길이 끝나는 지점에 잘생긴 금강송 연리지(連理枝) 한 쌍이 사람의 발길을 멈춘다.

여는 연리지처럼 그저 손이나 잡고 있는 밋밋한 형국이 아니다. 뿌리가 다른 두 그루의 매끈한 팔등신 금강송이 온 수족과 놈뚱아리를 똬리처럼 들고 부비며 하늘을 받치고 있다. 오래동안 헤어졌다가 만난 연인처럼 사랑의 몸짓이 치열하다. 사랑의 정점이다. 바라보면 괜스레 가슴이 설레고 얼굴이 붉어진다. 금강송 연리지 아래서 그런 사랑을 꿈꾸듯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당시 금강소나무숲길은 숲길 기획부터 개통까지 약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철저한 준비를 거쳐, 국제 규범 생태관광을 한국의 오지이자 생태지역인 울진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를 모색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산양과 금강소나무숲을 보전하고 생태관광의 환경 원칙 준수, 숙식과 안내자 부문은 지역의 손과 발로 해결하는 주민참여의 원칙, 탐방객이 예약하고 안내자가 인솔하여 정해진 시간에 설정된 규범에 따라 숲길을 걷는 공정여행, 책임여행의 원칙이 만들어졌다.

이는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제안하는 생태관광 기본원칙에 그대로 부합한다. 아프리카 세렝케티와 뉴질랜드 밀포드트렉에서 구현된 생태관광이 우리나라의 대표 오지였던 청정바다와 생태관광 울진의 금강소나무숲에서 주민의 손과 발로 모범을 보이며 정착되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21세기 무한의 속도와 경쟁에 치친 그대여! 잠시 짐을 내려놓고 ‘숨쉬는 땅 여유의 바다 울진’ 과 동해의 차마고도인 울진으로 숨쉬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