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성지 곡부(曲阜)와 추성(鄒城)을 찾아서(8)
맹묘(孟廟): 영성문(欞星門)부터 승성문(承聖門)까지
가까이 본 영성문이다. 돌기둥에 3문이 있고, 그 위에 솟을 기와누각을 세웠다. 문 좌우로 붉은색 성벽이 둘러 있다.
태산기상문 못미처 서쪽편에 있는 큰 종이다. 금대안철종(金大安鐵鐘)으로 불린다. 종은 불교 사찰에나 있는데 유교성지에 종이 있음은 특별하다.
태산기상문(泰山氣象門) 현판이다.
공자의 고향 곡부에서 5월30일 오전 8시 호텔에서 나와 맹자의 고향 추성시 맹묘(孟廟)에 9시 반에 도착했다. 곡부에서 유교성지를 관람하고, 다음 차례는 또 하나의 유교성지인 추성에서 맹묘(孟廟)와 맹부(孟府) 관람이다.
맹묘(孟廟)는 본래 송나라 경우(景佑) 4년(1037)년 추성시 동북 13㎞ 사기산(四基山) 서남 기슭에 제45세손 공도보(孔道辅)가 창건하였다고 기록이 있다. 그 때 이름은 맹가능묘(孟軻陵墓) 또는 아성묘(亞聖廟)라고 했다. 그러나 이 사당이 추성시에서 너무 멀리 있어 다른 맹묘를 추성(鄒城) 동쪽 교외에 건립한 것이 추성(鄒城)사당의 기원이라고 한다.
현재의 맹묘(孟廟)는 송나라 선화(宣和) 3년(1121) 추성(鄒城)의 성구(城区) 남부에 건립했고, 금, 원, 명, 청에 이르기까지 십 수차례 중수와 확대를 통해 비로소 현재의 규모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영성문(欞星門), 아성묘방(亞聖廟坊), 태산기상문(泰山氣象門), 건륭비정, 승성문(承聖門), 아성전(亞聖殿), 맹자사적전시실(孟子生平事蹟陳列), 맹부(孟府) 순으로 관람했다.
공묘에서 본 영성문(欞星門)이 이곳 맹묘에도 있었다. 돌기둥에 3문이 있고, 그 위에 솟을 기와누각을 세웠다. 문 좌우로 붉은색 성벽이 둘러 있다.
다음은 아성묘(亞聖廟)방에 이른다. 돌기둥 4개를 연결하여 위쪽에 판돌을 연결하고 그 가운데에 황색으로 ‘亞聖廟’라고 새겨 넣었다. 이 방은 아성묘를 알리는 홍살문과 같은 것이다.
아성묘방을 지나자 서쪽 편에 있는 큰 종이 있다. 이 종은 금대안철종(金大安鐵鐘)으로 불린다. 유교성지에 불교 형식의 종이 있어 특이했다.
아성묘방을 지나면 태산기상문(泰山氣象門)이다. 태산(泰山)은 비록 높지는 않지만 천신(天神)이 계시다고 생각하는 산이다. 태산기상문(泰山氣象門)은 태산의 정기를 받은 문이라며, 맹자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펼치라 했으니 그 뜻은 태산과 같이 크고 높다. 정호(程顥)는 "공자는 하늘과 땅이고, 안회는 바람과 구름이며, 맹자는 태산의 높은 기상이다"고 말한 데에서 '태산기상'을 따왔다고도 한다.
다음은 청나라 제4대 황제인 강희비각이 눈길을 끌었다. 비석에 정자를 세운 비각(碑閣)도 흔치 않은데 강희비각은 황제답게 2층으로 된 비각이다. 이렇게 크며 2층으로 된 비각은 세상에 여기 말고 또 있을 가? 대단한 비각이다. 건륭황제는 비정(碑亭)을 건륭원년(1736년)에 세웠고, 그 안에 있는 비석은 강희황제가 1687년 세운 "어제맹자묘비(御制孟子廟碑)이다. 건륭은 강희의 손자이다.
이어 우리 일행이 간 곳은 맹모단기처(孟母斷機處) 비석 앞이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 많은 학생들이 맹자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맹자가 노나라에 유학 도중에 공부를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오자 맹모께서 베틀에서 짜던 비단의 날줄을 끊어 버리고는 ‘너의 학업 중단은 짜던 비단을 끊어 버리는 것과 같다’며 교육했던 그 자리에 세운 비석이다. 그 옆에는 맹모삼천사(孟母三遷祠) 비석이다. 이 비석은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를 위하여 3번 이사를 하여 맹자를 교육시킨 것을 숭모하는 사당에 세운 비석이다. 바로 그 옆에는 또 자사자(子思子)가 중용(中庸)을 지었던 곳이라는 “자사자작중용처(子思子作中庸處)”가 있었다.
다음 관람은 건륭황제의 비석이다. 이 비각은 건륭 1761년에 세웠고, 비석은 1748년에 세웠으며, 글씨는 건륭황제의 친필이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 일행은 청나라 황금기 황제인 강희제(康熙帝), 옹정제(雍正帝), 건륭제(乾隆帝)의 비석과 비각, 판액 등 수 많은 유물 유적을 보았다. 조선은 청을 오랑캐의 나라로 배척하고 명을 섬겼다. 그러나 이번 성지순례에서 보았듯이 이들 세 황제는 중국 역대 제왕 중에서 공맹(孔孟)을 가장 숭상한 성군(聖君)이었음을 알았다.
이어 우리 일행은 천진정(天震井)이라는 우물을 보았다. 우물에 대하여 안내게시판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공묘(孔廟)에 오래된 우물이 있었고, 안묘(顔廟)에도 누추하지만 우물이 있었고, 증삼묘(曾參廟)에도 솟아나오는 우물이 있었으나 오직 맹묘(孟廟)만은 우물이 없었다. 그런데 강희10년 어느 봄날 홀연히 우레가 들려 모두 놀랐다. 그 때 맹묘의 가운데에 땅이 매몰되었다. 찾아가보니 우물이었다. 언제부터 우물이 있었나? 알 수 없고, 하루아침에 이유 없이 함정에서 나와 이름을 하늘이 진동하였다 하여 "천진정(天震井)"이라고 지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음 관문은 승성문(承聖門)이다. 이 문은 아성전의 정문이다. 승성(承聖)은 성인을 계승한다는 뜻이다. 공자의 사상을 맹자가 이었다는 뜻이다. 도통(道統)은 요임금, 순임금, 우임금, 탕왕, 문왕, 무왕, 주공이 이었고, 이를 공자가 집대성했고 다시 자사를 거쳐 맹자로 이어졌다.(계속)
2층으로 된 청나라 4대 황제 강희비각이다.
좌측부터 맹모단기처(孟母斷機處), 맹모삼천사(孟母三遷祠), 자사자작중용처(子思子作中庸處) 비석이다.
맹묘의 정문인 아성전 앞에 있는 승성문(承聖門) 현판이다.
하늘이 진동하며 생겼다는 천진(天震)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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