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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시론

<李玄崗의 泮中雜詠>유자의 출처거취 되새겨야

편집부
2015.05.30·4분 읽기·조회 24

지난 3월23일 성균관유도회총본부 회장 직무대행 명의로 성균관유도회 시·도 본부 회장들에게 4월17일 회장선거를 할 테니 3월27일까지 ‘성균관유도회총본부 회장 선출위원회’ 위원 명단을 제출해 달라는 문서가 전달됐다. 

이 문서에는 지금까지 회장 선거를 못해 혼란이 일어난 것은 회장 선출위원 명단 취합 과정에서 불법행위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거나 사무실을 점거당해 있다는 등의 황당한 변명도 덧붙여져 있었다. 

그러나 앞서의 경우와 같이 이들이 추진했던 회장 선출위원회 구성은 또 다시 무산됐다. 직무대행으로 자처한 이가 전국 시·도 본부 회장과 대의원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소송과 고소, 고발 등으로 시간을 보내다 어느덧 임기가 끝나는 시점이 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성균관유도회총본부 회장은 지금까지도 선출하지 못하고 있고, 대책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후임 회장을 선출해야 할 직무대행이 그 임무를 이행하지 못했다면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지만, 지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인지 이 같은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지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생기는 일들에 대해 선현들은 출처(出處)론을 통해 한결같이 경계했다. 출처란 세상에 나아가 벼슬을 하며 경세제민의 정치에 참여하는 것과 물러나 재야에 머물면서도 정신적 지조를 지키고 후학을 가르쳐 올바른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유교의 정치사상에서 나온 용어다. 

공자는 유자의 출처거취가 그 자신 한 사람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나라 한 시대의 풍화와 흥망성쇠에 끼치는 영향이 지대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이를 크게 강조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성현이라 하더라도 출처진퇴를 중도에 맞게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공자 이후 예로부터 유자들 사이에서는 출처진퇴에 관한 논의가 무수히 이루어져 왔다. 

일찍이 율곡 이이는 <동호문답>에서 진유(眞儒)야말로 도학지사라고 하면서 “이른바 진유란 나아가서는 한 시대에 도를 행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태평의 즐거움을 누리게 하고, 물러가서는 만세에 가르침을 내려 주어 배우는 이로 하여금 큰 잠에서 깨어나게 하는 것이니, 나아가서 도를 행하지 않고, 물러나서도 가르침을 드리우지 못한다면, 비록 진유라 하더라도 나는 믿지 않는다”라고 했다. 

지난 역사를 보면 지위가 주는 권력에 취해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포기하지 못하다가 목숨과 명예를 잃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 진나라의 재상 ‘이사’이다. 

진시황 37년(기원전 210년), 진시황은 승상 이사와 어린 아들 호해와 함께 오차 순행에 나섰다. 순행 도중 진시황이 사구에서 갑자기 병사하자 이사는 민심의 동요를 염려해 그의 죽음을 알리지 않고 함양으로 귀환을 서둘렀다. 

이때 진시황의 죽음을 즉시 알리지 않은 이사 덕분에 환관 조고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조고는 진시황이 죽자마자 자신의 애제자인 호해를 옹립하고 몽의 몽염 형제에 대한 원한을 갚기로 결심했다. 

조고는 우선 교묘한 언변으로 호해의 승낙을 얻고 나서 이사를 찾아가 회유했다. 이사는 승상의 자리와 오랜 세월 누려온 부귀영화를 놓지 못해 조고와 함께 진시황의 조서를 위조했다. 호해를 태자로 세운다는 거짓 조서를 만들어 놓고 원래의 조서는 부소와 몽염에게는 자살을 명하는 내용으로 위조해 보냈다. 결국 부소는 자살했고 몽염은 체포되어 옥사하고 말았다. 

하지만 진 2세 2년(기원전 208년) 이사는 조고의 모함을 받아 모반죄의 누명을 쓰고 요참형에 처해졌다. 진시황 사망 후에도 이사는 조고의 음모를 폭로하고 다시 공신으로 자리매김해 부소의 신임을 얻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권력과 지위에 너무나 집착한 나머지 충심과 명철함을 잃었고 결국 실패와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성균관유도회총본부와 성균관 모두 직무대행 체제에 처하게 되었고, 성균관유도회총본부는 이미 파탄나 버렸다. 성균관은 임시총회를 소집해 비로소 정상화의 첫발을 내디뎠다. 성현의 말씀과 지난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는 게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