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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시론

밥상 위에 조상을 앉혀서야 되겠는가

편집부
2015.09.12·4분 읽기·조회 20

앞으로 10여 일 후면 민족의 최대 명절 8월 한가위를 맞아 예외 없이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될 것이고 고속도로는 거대한 주차장화하여 지·정체가 반복될 것이다. 그 간난신고(艱難辛苦)도 불사하고 고향을 찾아가는 귀성객들, 그러나 고향과 부모형제를 잃어 귀성도 못하는 실향민에 비하면 그래도 그들은 부모형제와 선영이 있는 고향 가는 길이 마냥 행복에 겨울 것이다.

귀성(歸省)! 고향을 찾아 ‘살아계시는 조상과 돌아가신 조상을 정성 들여 보살핀다’가 진정한 의미일진데 나는 명절만 되면 직업의식의 발로인지 TV 포커스에 담긴 차례 상(기일제사 포함) 위를 유심히 보는 게 어느덧 버릇처럼 되었다. 정성들여 마련한 제수며 단정한 예복까지 갖추어 엄숙하게 차례를 지내는 것까지는 더할 나위 없으나 결코 지나칠 수 없는 게 바로 위패(神位)를 모시는 자리이다.

유교의 예(禮)에서는 돌아가신 조상을 모시는 의식을 강신(降神-신의 강림)이라 해서 분향강신으로 연기를 피워 하늘(陽의 세계)에 계실 조상의 혼(魂)을 모시고 뇌주강신으로는 모사(茅沙)에 술을 적셔(삼제우지-三除于地) 지하(陰의 세계)에 계실 백(魄)을 모심으로써 혼과 백으로 분리되어 돌아가신 조상이 비로소 혼백이 합쳐져 살아오신 것으로 의제(擬制)되며 한낱 종이에 불과했던 지방도 이때부터는 종이가 아닌 신위가 되어 조상신이 깃들게 된 것이다.

옛부터 참으로 귀하게 정성들여 받드는 일을 ‘신주 모시듯 한다’라고까지 한다.

이 귀하디 귀한 신주(神主-임시로 종이에 쓴 신주는 紙榜이라 함)는 반드시 교의(交椅:혼백상자를 올려 두는 긴 의자를 말하며 交牀이라고도 함)에 모셔야만 된다. 전통사회의 사대부 집안에서는 다리가 긴 의자(교의)를 병풍 앞에 설치하고 그 앞에〈그림 1〉과 같은 높은 상다리를 받친 제상(祭床)을 설치하여 제수(祭羞)를 진설(陳設)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 서민들은 삶 자체가 워낙 팍팍하고 여유가 없다 보니 그런 격식을 갖추지 못하여 신위를 상위에 올려놓거나 심지어는 신위를 병풍에 붙여놓고 제사를 지내오다 보니 그것이 마치 관행처럼 굳어져 당연시하게 된 무례를 범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제상은 대부분 교자상(낮은 平床)을 사용함으로써 다리가 긴 높은 교의는 현실에 맞지 않으며, 또한 이에 마침맞는 높이가 낮은 교의〈그림 2〉는 찾는 사람도 없으니 시중에 아예 구할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자체 제작이 어려우면 일반 의자라도 제상 뒤(병풍과 제상 사이)에 놓고 방석이나 깨끗한 백지를 깔고 그 위에 신위를 모실 것을 권장한다.

제상(祭床) 위에 그대로 신위를 뫼시면 밥상(제상) 위에 조상을 앉혀놓는 꼴이 되어 후손으로서 지극히 죄송하고 또한 그런 무례가 어디 있겠는가? 지금까지 그 의미를 몰라 불효를 저질렀다고 한다면 이제는 그 의미와 정신을 되새겨 교의에 조상 신위를 바로 모시는 그런 후손이 되어 아름다운 우리의 전통예절을 바르게 실천해 나가야 할 것이다.

 

                 

                       다리가 긴 전통 교의와 제상                                현대의 교자상 높이에 맞춘 교의

 

김영진 (경남 사천향교 교화수석장의, 전 용남중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