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바위에 새겨진 각자(刻字)에서 역사를 배운다⑩ 전남 곡성 동악산 구한말 위정척사파의 회합장소, 청류동 구곡을 찾아서

송진모 / 부산시 주재기자,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전라남도 곡성군은 북동부에 위치한 군으로 동쪽은 구례군, 서쪽은 담양군과 화순군, 남쪽은 순천시, 북쪽은 전라북도 순창군과 접하고 있다. 평야는 비록 협소하나 북부의 옥과면과 동부의 섬진강, 보성강 유역은 평야 구릉이 상연하여 비옥하고 관개(灌漑)가 양호하다. 군청 소재지는 곡성읍 읍내리이다.
소백산맥의 지맥이 중앙을 달리며, 다시 여러 지맥을 이루는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동부의 섬진강 유역과 북부의 옥과천 유역에는 분지형 평야가, 남부의 보성강 유역에는 좁은 곡저 평야가 있을 뿐이다. 대표적인 산으로는 동부에 천마산, 천덕산, 주부산 등이 솟아 있고, 남부에 봉두산, 아미산, 희아산 등이 솟아 순천시와 경계를 이룬다. 전라남도에서는 비교적 내륙에 위치하기 때문에 기온이 낮은 편이다.
신라 사찰 도림사(道林寺)가 있는 곡성 동악산은 계곡이 아름답다. 도림사를 끼고 있는 청류동(淸流洞) 계곡은 특히 그러하다. 넓은 반석 위로 얇게 퍼지듯 물이 흐른다. 그 풍경도 아름답거니와, 암반과 바위 곳곳에 새겨진 각자(刻字)들도 아름답다. 산수(山水)는 산수이되 그 각자 또한 아름다워 청류동 풍경은 문화산수(文化山水)라 불린다.
동악산 청류동 계곡은 조선 성리학의 성지 해동무이(海東武夷)이고, 조선의 선비들이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으로 유학의 본지(本旨)를 찾고 도통의 연원을 이어 가면서 민족자존의 항일의병과 민족독립운동을 이끌어간 위정척사 사상의 모태였음을 보여주는 곳이다. 조선시대의 기록에 의하면 김인후(金麟厚,1510~1560), 고경명(高敬命,1533~1592), 유형원(柳馨遠,1622~1673), 허생(許生), 박세채(朴世采,1631~1695), 김창협(金昌協,1651~1708), 김창흡(金昌翕,1653~1722), 이익(李瀷,1681~1763), 정약용(丁若鏞,1762~1836), 기정진(奇正鎭,1798~1879) 등을 비롯하여 구한말 최익현, 전우, 송병선, 황현, 기우만 등 쟁쟁한 선비들과 나라를 위해 절의를 지킨 열사들이 동악산으로 들어온 것은 조선 유학자들의 성지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곡성의 숨은 선비들이 남긴 발자취를 찾아본다.
이곳에 춘기(春沂) 정순태(丁舜泰)와 하정(荷亭) 조병순(曺秉順)이 설치한 청류동 구곡이 있다. 일곡(一曲)에 쇄연문(鏁烟門) 춘기(春沂) 하정(荷亭)의 각자가 있다. 일제강점기 곡성에 살던 유학자들로 정순태 집안은 만석꾼이고 조병순 가문은 천석꾼이었다. 춘기 정순태 집안은 조병순과 같은 이치로 재산을 털어 학교를 세우고 '자금'을 모았다고 한다. 그리고 문중에서 7대를 모아온 장서 1만 권을 1931년 연희전문학교에 기증했다. 양반가의 정신적 목숨을 그리 내놓았다. 근처에 향회입연식(向晦入宴息)·계구근독(戒懼謹獨)이 있고, 하천 건너 또 일곡(一曲)인 도채위경(淘採爲耕), 옆에 간재 전우가 창시한 성사심제(性師心弟)가 있고, 아래쪽으로 제법 떨어진 곳에 귀기간소(歸奇顅慅)가 있다.
이곡(二曲)은 도림사 일주문 가기 전 범바위 맨위 입천정에 해당하는 곳에 거연천석(居然泉石)이 있고 바로 좌측에 소아(小啞) 양덕모(梁德模) 외 8명의 각자가 있다. 다음은 그 아래 혀에 해당하는 곳에 무태동천(無太洞天), 혀 밑에 독호수선(篤好守善), 선사어제(鮮史御帝)는 턱 중앙에 있고 그 좌우에 새긴 각자는 우측으로부터 송석(松石) 이중희(李重禧)·한주(寒洲) 곽임선(郭林善)·봉산(鳳山) 오관순(吳寬淳)·사운(沙雲) 유인영(柳寅永)·매운(梅雲) 조영가(趙泳嘉)·오강(梧岡) 김정호(金正昊)·근암(近庵) 박인섭(朴寅燮)·남강(南岡) 조원승(曺元承)·가곡(可谷) 이정식(李正植)·소봉(小峰) 조상천(趙相天)·법재(法齋) 정일필(丁日弼)·죽당(竹堂) 신봉국(申鳳國)·두후(斗後) 조상묵(曺相黙)·춘기(春沂) 정순태(丁舜泰)·회천(晦泉) 조병선(趙秉善)·금강(錦岡) 정신태(丁信泰)·하정(荷亭) 조병순(曺秉順)까지 17인과 좌측 끝에 묵용(黙容)을 새겨 놓았다. 그리고 범바위 우측에 심재(心齋) 이곤수(李崑壽) 외 16명, 그리고 범바위 좌측 볼에 해당하는 곳에 난사(蘭史) 김학묵(金學黙) 외 10명이 있다.
또 길 아래 하천 좌측에 이곡(二谷) 영과후진(盈科後進) 방호사해(放乎四海), 춘기 정순태·하정 조병순이 있고, 하천 우측 조금 아래에 사무사(思無邪), 사무사 암벽에 오헌 조병식 외 12명 각자가 있다. 사무사에서 하천 상류로 오르면 주자(朱子)의 시(詩) 소간(小澗)이 각자되어 있다.
다음은 도림사 일주문을 지나 도림사 주차장 옆 삼곡(三曲) 대천벽(戴天壁) 바위군이 있다. 좌측 맨 위로부터 대천벽이 있고, 대천벽 좌측에 관재 이도영 외 8명의 각자가 있고 우측에 오형남 등의 각자가 있다. 그 아래에 퇴계 이황의 친필 징분질욕(懲忿窒慾), 또 아래에 간재 전우의 글 정윤리(正倫理) 독은의 (篤恩義), 그 아래 나무아미타불 각자 우측 4각형 바위에 보가효우(保家孝友:집안을 다스리는 데 효와 우애로 하라) 이 글씨를 쓴 이는 고종이고 옆에 작은 각자는 '주연서우석어당(珠淵書于昔御堂)'으로 주연은 고종의 호고, 석어당은 덕수궁에 있던 고종 침전을 말하고, 또 청류동(淸流洞), 동유록(同遊錄) 각자가 있다. 보가효우 각자석 우측 조금 위쪽에 명나라 황제 의종의 어필 비례부동(非禮不動), 보가효우 우측에 면암 최익현의 친필 낙경민직(洛敬閩直)이 있다.
다음은 대천벽 정면 길섶에 도림수석(道林水石) 시아원거(是我爰居) 기원사신유(紀元四辛酉) 중춘(仲春) 박성칠 (朴聖七)서(書), 자(子) 경조(慶祚)이다. 도림사 주차장 옆 제3곡 바위군 앞 길 아래 반석에 삼곡(三曲) 신산구절계(神山九折溪) 연소차중반(沿泝此半盤)은 주자의 시(詩) 행시무이정사(行視武夷精舍)라는 시의 일부를 적어놓은 것이다.

단심대 전경
사곡(四曲)은 청류동 계곡 반석에 단심대(丹心臺)가 있고, 좌측 아래에 춘기(春沂) 하정(荷亭)이 있다. 좌측으로부터 다음 간재(艮齋)의 단심가(丹心歌)가 있다, 단심대는 말 그대로 일편단심을 다지는 뜻이다. 청류동은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까지 고단한 세상을 고민했던 위정척사파의 회합 장소였다. 개혁 대신 쇄국을 앞세운 한계는 있었으나, 망국의 설움을 의병이라는 무력 투쟁과 비밀결사로 털어내려는 지사들의 모임처였다. 이어 기노사송사양선생장구처(奇蘆沙松沙兩先生杖屨處:기정진․기우만 두 선생 다녀간 곳), 그 아래에 서산강론(西山講論:서산 선생이 강론을 한 곳)이 있다. '서산 강론' 아래에 하정 조병순 외 8명의 각자가 있다. 서산(西山)은 조형일이다.
단심대 맞은 편에 유상(流觴), 서자불사주야(逝者不舍晝夜) 청혜영탁혜족(淸兮纓濯兮足) 중 일부만 남은 것은 공사과정에서 깨어진 것이라 한다. 단심대 아래에 조대(釣臺)라 하고 그 옆에 주부자(朱夫子)의 시(詩) 조기(釣磯)가 있다. 조대 아래 반석에 빙청옥결(冰淸玉潔), 남파유적(南坡遺蹟), 남파는 곡성군수를 지낸 박재규인데 면암 최익현을 따라 의병을 일으켰다. 또 주자가 지은 유밀암(遊密庵)의 시를 적어놓았고, 단심대 아래쪽 담(潭) 위에 대자(大字)로 새겨진 청류수석 동악풍경(淸流水石 東樂風景) 숭정기원후사신유(崇禎紀元後四辛酉) 춘화화은희제(春和華隱戱題) 각자는 대원군이 썼다고 전해진다.
단심대에서 하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좌측 바위에 세한후조(歲寒後凋) 사물삼성(四勿三省), 세한후조 우측에 백운동문(白雲洞門) 회암서(晦菴書)가 있고, 잉어 형상의 바위 상류 우측에 수륜대(垂綸臺), 수륜대 맞은편 옛 일주문터 좌측 바위에 만사수유(萬事須臾, 만 가지의 일이 순간), 옛 일주문 바로 위에 알존(遏存)이 있다.

요요대 전경
오곡(五曲) 요요대(樂樂臺)는 도림사 정문 계곡 하천 가운데에 있다. 요요대 바로 좌측에 학구성현(學求聖賢) 연비어약(鳶飛魚躍) 주부자서근모각(朱夫子書謹模刻), 뒤쪽 바위에 모주앙금(慕朱仰金), 도림사 산문 앞 생직(生直), 소심학성(小心學性), 소성학성 맞은 편 광풍제월(光風霽月)이 있다.
육곡(六曲) 대은병(大恩屛), 대은병 좌측에 오산정래봉(梧山丁來鳳), 육곡(六曲) 아래 만절필동(萬折必東), 바로 옆에 도취이성(陶醉李醒), 정조대왕의 자호인 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 여기서 만천명월만 남아있다. 도림사 후문 계곡 바위에 단표(簞瓢), 도림사 경내 수반 돌에 새겨진 천수(川水) 기일신(己日新), 도림사에서 새로 만든 교량 건너기 전 좌측 작은 바위에 주자서(朱子書)인 신선동문(神仙洞門)이 있다.
다음은 신선동문을 지나 첫 번째 바위에 원효부터 눌봉까지 동악산을 거쳐간 승려들로 원효조사 외 11명 각자이다. 여기가 칠곡(七曲) 모원대(暮遠臺)이다. 모원대에서 팔곡 해동무이로 건너기 전, 빙호추월(氷壺秋月)과 김청한자(金淸閒子) 소요처(逍遙處)가 있고, 빙호추월 좌측에 송락 조호현 외 3인의 각자가 있다.

해동무이 전경
다음은 철다리를 지나 용소(龍沼) 위에 팔곡(八曲) 해동무이(海東武夷) 조서산(曺西山) 삼강오륜(三綱五倫) 각자를 만난다. 팔곡 반석 중앙에 중류지주(中流砥柱) 백세청풍(百世淸風)이 있다. 중류지주 밑에는 주부자의 시 차관폭포운(次觀瀑布韻)이 있고, 백세청풍의 밑에는 전간재·송연재·정소송 삼선생 장구처에 이어 황매천진사장구처(黃梅泉進士杖屨處:황매천 진사 다녀간 곳)를 새겼다. 전간재·송연재·정소송 삼선생 장구처(田艮齋宋淵齋鄭小松先生杖屨處), 연재 송병선은 을사늑약 시 자결한 분이고, 매천 황현은 경술국치를 맞아 절명시를 쓰고 자결한 선비다.

전간재·송연재·정소송·황매천 장구처 각자
백세청풍으로 상징한 스승 밑에 강학산 외 5명의 장구처 각자가 있고, 또 길 옆 바위벽에 이심재 외 8명의 장구처 각자가 있다. 이들은 암서재(巖棲齋)와 포경재(抱敬齋)에서 후학들을 지도했다. 팔곡 암벽에 새겨진 지경(持敬),지경 옆 필학성인(必學聖人), 일심사천(一心事天), 우측 길옆(등산로) 바위에 이한종 외 3명 각자, 그리고 해동무이 상류 방향 우측 숲속에 있는 암서재(巖棲齋, 복원 공사중)와 포경재(抱敬齋), 명경성의 양협진지(明鏡誠義 兩夾進持), 기린바위를 지나 철다리 위 물을 거슬러 몇걸음 거리 우측 바위에 석재 윤추섭 외 3인의 각자가 있다.

암서재·포경재 복원 현장
다음은 길상암 입구, 배넘어재 갈림길 삼거리 좌측에 구곡(九曲) 소도원(小桃源)이 있다. 구곡 소도원에서 길상암 쪽으로 조금 위쪽 좌측 바위에 목석거록시유(木石居鹿豕遊) 각자가 있고, 목석거록시유 각자 뒤편 거북바위(龜龍臺)에 주자의 무이산 구곡시의 마지막 부분 제시인간별유천(除是人間別有天)의 각자가 있다. 여기가 바로 무릉도원이다. 마지막으로 거북바위에서 길상암 방향 10여분 쯤 오르면 서풍등고(西風登高)와 괴천 조필승 외 5명의 각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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