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시작은 자시(子時)인가 자정(子正)인가?
오프라인에 600년 전통의 성균관이 존재한다면 온라인의 성균관 홈페이지 또한 도도한 역사의 물결 속에 또 다른 성균관으로서 존재하며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새로운 성균관장이 선출됨에 따라 그 동안 망가뜨렸던 성균관의 홈페이지도 복원하고 바로잡아야 할 터인데 8,000여 건의 자유게시판 글과 의례문답이 사라진 지 2년이 넘는데도 그대로 방치돼 있어 마음이 씁쓸하다. 정부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홈페이지가 몰지각한 이들에 의해 사라졌고 새로운 집행부에서도 역시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각설하고 요즘 의례문답의 화두는 자시(子時)에 관한 건인데 이론이 분분하다. 즉 우리의 선조들은 해시와 자시 사이인 23시를 날짜 변경선으로 보았는지 아니면 자정을 전후로 한 24시[0시]로 날짜를 변경했었는지에 대해 이설이 분분하다. 이에 본인의 의견을 간단하게 적어보고자 한다.
『태학지』「석전조」에 ㉮ 奠幣 釋奠日 丑前五刻 [丑前五刻 卽三更三點 行事用丑時一刻] ㉯ 奠幣 享日 丑前五刻 [丑前五刻 卽三更三點 行事用丑時一刻]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는 『태학지』뿐만 아니라 『국조오례의』등 모든 예서에서 늘 동일하게 사용하는 문구임은 새삼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태학지』의 글에서 말하는 축시 5각 전이나 3경 3점은 24시간으로 분류하면 23시 45분에 해당된다. 즉 23시 45분을 석전을 봉행하는 당일이라고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산 정약용의 학설[故一日十二時 其子時剖之爲二 上半屬之上日 下半屬之下日 :그러므로 하루는 12시이며 그 자시는 둘로 나뉘어 앞은 전날에 속하고 뒤는 다음 날에 속한다.]에 근거하여 자시를 둘로 나눌 때, 23시 45분은 상일(上日), 즉 전날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왜 『태학지』와『국조오례의』에서는 전날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향일(享日 :향사 당일) 또는 석전일이라고 적시하고 있을까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는 조선에서는 자시를 둘로 나누어 날짜 변경선으로 삼지도 않았으며, 자정 이전을 전날이라고도 하지 않았음을 명확히 말해주는 근거가 된다.
정 다산의 자시를 둘로 나눈다는 글 말미에 "현재 한 결 같이 행해지는 법이 ~또한 소략함이 심하다"라고 밝히고 있다. 즉 다산은 자신의 학설과는 다르게 그 당시에 모두가 잘못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 속에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당시에는 자시를 둘로 나눠 전날과 다음날로 구분하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다산은 본인의 글 속에서 이미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본인의 학설은 기존의 학설과 달리 바르게 고증하고 있다는 의미겠지만 이 말 속에는 자시부터 다음날로 간주하는 학설이 이미 오랫동안 존재하고 있었음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명나라 말기에 서양의 천주학이 들어오면서 서양의 역법이 따라 들어왔다. 그 와중에 자정을 분기점으로 날짜를 변경하는 서양의 역법과 태양력(太陽曆)이 다산에게도 영향을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이는 다산의 글 속에도 자세히 나와 있다. 일 년을 현대의 시간과 동일하게 며칠 몇 시간 몇 분이라고 기록한 대목이 바로 그것이다.
송나라 소 강절 선생의「동지음(冬至吟)」이라는 싯귀의 ‘동지자지반(冬至子之半)’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이미 송대의 학자들은 해시와 자시를 경계로 하여 날짜가 바뀜을 충분히 논의해 놨다. 우리나라에서도 다산보다 앞선 시대를 살다간 송 우암이 "하루는 자시에서 시작한다"라고 확실하게 말하였고, 이 학설은 『상변통고』에서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참고로 유 동암의 『상변통고』는 후인들의 교정을 거친 후, 1830년에 간행된 것으로 기억한다. 이는 정 다산보다 후대(後代)를 살다간 유학자들 또한 송대의 학자나 우암의 학설과 동일하게 하루의 시작을 자시[23시]로 보았다는 것이다.
홈페이지의 내용에 근거하면 이 문제는 3년 여간 설왕설래 답을 못 내면서 성균관의 바른 답변을 요구하고 있으나 정작 성균관 측은 꿀 먹은 벙어리다. 성균관이 묵묵부답 주인의 역할을 못하다보니 국립국어원이니 표준시를 관리하는 기관 등등의 학설을 퍼 날라다가 오히려 바른 답을 하는 사람을 공격하고 있는 실정이다. 적어도 성균관 홈페이지에서는 남대문을 직접 가 본 사람보다 남대문에 안 가 본 사람이 득세하고 있다. 날짜를 보는 시각에 따라 제사 날짜가 바뀔 수 있음을 명심하자. 3년여 만에 찾은 성균관 홈페이지에 대한 감회가 씁쓸할 뿐이다.
방동민 / 무형문화재 제85호 석전대제 이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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