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玄崗의 泮中雜詠>성균관과 향교, 유림의 정체성 다시 생각해 본다

최근 성균관과 유림 사회는 유사 이래 최대의 위기를 겪었다. 오령설과 영가무도 파문, 유림 아닌 인사들로 인한 종무행정의 혼란 등 지난 1년 반 동안 벌어졌던 일련의 사건들이 그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새롭게 성균관장이 선출되고 제자리를 찾았지만 이 사건들은 600년 넘게 이어져 온 성균관과 향교, 유림의 정체성을 뿌리째 뒤흔드는 초유의 일로서 이전의 유림 분규와는 성격이 크게 달랐다.
게다가 이런 사건들이 벌어지는 와중에서 드러난 일부 유림들과 종단 조직의 모습은 성속(聖俗)의 구분이 없는 성균관과 유림 조직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줬다.
만약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할 경우 성균관과 향교, 유림의 정체성과 존재 의의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 것이라는 게 유림사회의 중론이다.
이 때문에 많은 유림지도자들은 대책 마련의 시급함을 지적하고 있다.
지난해 오령설 파문 당시 총무처장이라는 인사는 본지의 오령설 비판에 대해 “오령은 미신이 아니고 오령서는 부적이 아니다. 그러므로 신흥종교 운운은 저능아의 헛소리거나 음해에 불과하다”, “오령은 억조만민이 융성한 태성평대를 인증하는 상징이 분명하며 오령의 출현을 바라는 것은 이상사회의 도래를 위해 노력하는 유자의 태도임이 분명하다”며 막말과 궤변을 늘어놓았다.
이 인사는 유림 활동이 전무한 불교전공자로서 총무처장이 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임 관장의 말 한 마디로 임명됐다. 총무처장의 자격을 검증하는 시스템은 무용지물이었다. 하지만 보우를 순교자라 하고 당시 유림들을 광유(狂儒)라고 했던 인사가 성균관의 종무 행정을 제대로 볼 리는 없었다.
지난 31대 성균관장 선거 당시에도 총무처장이 선거관리부위원장을 맡는 관례를 악용해 직권을 남용했고, 당시 선거관리위원장을 맡았던 인사는 선거공고와 대의원 이중 명부 확정과 관련해 자신은 아무 것도 몰랐다고 진술했다.
이 같은 일련의 사건들에는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방관한 유림들의 책임도 적지 않으며, 이는 정체성에 큰 혼란이 있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일련의 사태로 정체성 문제가 제기되자 다수의 유림지도자들은 무엇보다도 우선 성균관과 성균관대학의 유기적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성균관이 다른 종단과 달리 종단 내에 성속의 구분을 둔 별도의 교육기관을 두지 않은 주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성균관대학의 존재 때문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찍이 심산 김창숙 선생이 유교 부흥과 유교인 양성을 위해 성균관대학을 설립해야 한다고 호소하자 전국 유림들은 다음과 같이 호응했다.
“전국 유교인이 합력하느냐 못하느냐의 여부로 성균관대학이 서느냐 못 서느냐를 점칠 수 있다는 그대의 말은 실로 정확한 말이다. 저 기독교나 불교인들은 진작 대학을 설립하였는데, 모두 합력해서 이루어진 일이다. 우리 유교인으로서는 저들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합력해서 세울 방도를 생각하지 않으리오.”
유림들의 공의를 모아 성균관대학을 설립한 후 교칙에는 유교사상에 의지해 이론과 실제에 원숙한 지도자 양성을 목적으로 한다는 조항이 명시됐고, 지금도 수기치인의 건학이념과 인의예지의 교시는 변함이 없다.
지난 반세기 넘는 기간 동안 성균관대학의 설립 취지와 유림들의 공의에 따라 성균관대학은 유교인 양성과 유림 재교육의 기능을 담당해 왔고 성균관과 향교, 유림은 유교이념의 현실적 실천 주체로서 역할을 해 왔다. 그리고 이런 속에서 성균관과 유교의 정체성은 굳건히 유지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이 같은 유기적 관계가 부실화되면서 유림사회에서는 유교와 유림의 존재가 대학의 수익 창출을 위한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비난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고, 심지어는 유교 관련 사업을 두고 경쟁자적 관계가 되는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다.
다수의 유림지도자들이 성균관과 향교, 유림의 정체성 혼란 원인을 성균관과 성균관대학의 유기적 관계 부재에 두고 있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 새롭게 선출된 성균관장과 집행부가 지금까지 지난 수년간의 혼란을 수습하느라 여념이 없었다면 이제는 이 같은 문제 해결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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