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玄崗의 泮中雜詠>어제는 성현모독! 오늘은 사문진작? 사문난적이라 전해라

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장 신정근 교수는 향교·서원에 보낸 사업설명회 안내장에서 ‘사문진작’에 전념하는 임원 여러분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보다 앞서 신 교수는 자신이 대표로 있는 인터넷 사이트에 ‘공자와 안연, 애틋한 사제를 넘어 동성애로’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리고 신 교수의 주장이 영향을 끼친 것인지 인터넷에는 공자와 안자를 희화한 글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유림으로서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내용들이다. 신 교수의 글이 영향을 끼친 게 아니라면 이런 글들을 보고 신 교수가 인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한 것일까.
어제는 성현을 모독하더니 오늘은 사문진작 운운한다. 도무지 적응할 수 없는 시추에이션이다.
심산 김창숙 선생은 일찍이 성균관대를 설립하면서 “성균관은 곧 우리나라의 유학을 높이 장려하던 곳이다. 유교가 쇠퇴하면 국가도 따라서 망하고 나라가 망하면 국학도 역시 폐한다”며 “건국의 대업에 헌신하고져 한다면 마땅히 우리 유교문화의 확장에서 시작할 것이오 진실로 우리 유교문화를 확장하고져 한다면 마땅히 성균관대학의 확립으로써 급무를 삼을 것이다”라고 했다.
유학대학 학장이자 유교문화연구소장인 신 교수의 해괴한 주장을 심산 선생이 봤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내가 이러려고 성균관대를 설립했느냐면서 땅을 치고 통곡했을 일이다. 적어도 유학대학 학장으로서 그리고 유교문화연구소장으로서 신 교수는 금도를 넘어섰다.
그런데 과연 신 교수의 주장처럼 <논어>에서 그렇게 읽어낼 말한 구절이 있을까. 신 교수는 <논어>에 나오는 아래의 네 구절을 근거로 들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안회와 종일 말을 하였으나 내 말을 어기지 않는 것이 마치 어리석은 사람 같았는데 물러간 뒤에 그 사생활을 살펴보니 그 말의 이치를 충분히 드러내고 있었다. 안회는 어리석지 않다!(子曰 吾與回言終日 不違如愚 退而省其私 亦足以發 回也不愚)”(「爲政」)
“공자께서 자공에게 말씀하시기를 ‘너와 안회는 누가 더 나으냐’고 하셨다. 자공이 대답하기를 ‘제가 어찌 감히 안회를 바라보겠습니까?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고 저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압니다’라고 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같지 않다. 나도 네가 안회보다 못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라고 하셨다.(子謂子貢曰 女與回也孰愈 對曰 賜也何敢望回 回也聞一以知十 賜也聞一以知二 子曰 弗如也 吾與女弗如也)”(「公冶長」)
“안연이 탄식하며 말하였다.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고, 뚫을수록 더욱 단단하며, 바라봄에 앞에 있더니 홀연히 뒤에 있도다. 부자께서 차근차근히 사람을 잘 이끄시어 글로써 나를 넓혀주시고 예로써 나를 요약하게 해주셨다.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어 이미 나의 재주를 다하니 내 앞에 우뚝 서있는 듯하다. 비록 그를 따르고자 하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顔淵喟然歎曰 仰之彌高 鑽之彌堅 瞻之在前 忽焉在後 夫子循循然善誘人 博我以文 約我以禮 欲罷不能 旣竭吾才 如有所立卓爾 雖欲從之 末由也已)”(「子罕」)
“안연이 죽자 공자께서 곡하시기를 지나치게 애통해 하셨다. 공자를 모시는 종자가 말하기를 ‘선생님께서 지나치게 애통해 하십니다’라고 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지나치게 애통함이 있었느냐? 저 사람을 위해 애통해 하지 않는다면 누구를 위해 애통해 하겠는가?’라고 하셨다.(顔淵死 子哭之慟 從者曰 子慟矣 曰 有慟乎 非夫人之爲慟而誰爲)”(「先進」)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 구절들은 신 교수의 주장처럼 읽히지 않는다. 신 교수와 같은 인문학적 상상력이 모자라서일까.
일찍이 <공자가 죽어야…>라는 책이 노이즈마케팅으로 제법 팔리게 되자 당시 다른 한 출판사에서는 마침 번역 출간을 기다리고 있던 책을 ‘공자가 죽인 여인들’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하려고 했다. 주변의 반대로 그렇게 출판되지는 않았지만 결국 출판사는 노이즈마케팅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비슷한 다른 제목으로 출판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 책의 원제목은 <MALE ANXIETY AND FEMALE CHASTITY>로 그대로 번역하면 ‘남성의 불안과 여성의 순결’이다. 책의 내용도 중국의 명청시대에 강요된 정절로 인해 여성들이 자살한 현상에 대해 분석한 것으로 명청시대에 와서 정절을 지키기 위한 여성의 자살이 성행하게 된 데에 어떤 요소가 작용했는지를 탐구한 책이다. 저자의 결론은 명대 중기 이후 과거시험 경쟁 격화로 인한 남성들의 출세길 좌절이 여성의 자살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그 출판사가 붙이고 싶어 했던 책의 제목과는 거리가 멀었다.
‘남성의 불안과 여성의 순결’이라는 책을 단지 몇 권 더 팔아보자는 심산에 밑도 끝도 없이 ‘공자가 죽인 여인들’이라는 제목을 붙이려고 한 것이나 신 교수의 주장이나 다를 게 하나도 없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사문진작 운운하며 유교문화활성화지원사업을 하겠다고 한다. 사문진작이 아니라 그야말로 사문난적이다.
맹자는 “무릇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업신여긴 뒤에 남이 업신여기고, 집안은 반드시 스스로 무너뜨린 뒤에 남이 무너뜨리고, 나라는 반드시 스스로 정벌한 뒤에 남이 정벌하는 것이다(夫人必自侮 然後人侮之 家必自毁 而後人毁之 國必自伐 而後人伐之)”(<孟子> 「離婁上」)라고 말했다.
맹자의 이 말은 지금 이 시점에 모두가 다시 한 번 깊이 새겨야 할 성현의 말씀이다. 돈 몇 푼 욕심에 오욕의 기록을 남기는 우를 또 다시 범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상호/편집인



![무신사, ‘책상을 탁쳤더니 억하고 말라서’ 카드뉴스 논란 확산 [유교경영리포트]](/uploads/4/legacy/photos/20260521/art_17791935224319_134c6c.jpg)

![[단독] 구리시장 경선판 흔드는 ‘유령 여론조사’... 언론사 명의 빌린 ‘불법 대리 조사’ 의혹 포착](/uploads/4/legacy/photos/editor/2604/20260417081433_gxgnwrel.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