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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시론

제삿날 올바르게 알자

편집부
2016.03.29·6분 읽기·조회 185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기업인이나 연예인이 대접을 받는 세상이 되었다. 그들의 동정(動靜)은 늘 뉴스의 중심이 되고 일반인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심지어 그들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는지에 대해 주목한다. 그래서 공인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온 나라에 끼치는 영향 또한 지대해졌다.

 

며칠 전 매스컴에서 대기업 회장의 제사와 관련된 영상이 방영되었다.

 

돌아가신 날을 양력으로 환산해서 제사를 모시는 것은 세태에 따라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이해하자. 그런데 제삿날과 제사 시간이 사망한 당일이 아닌 하루 전날 오후였다. 사회에서 영향력을 갖고 있는 공인의 제삿날이 잘못 된 줄도 모르고 시행되고 보도된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문제를 제기한 김에 바른 제사에 대해 알아보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아래에 ㉠ 제사 날짜 ㉡ 제사 시간 ㉢ 주기와 나이의 차이 ㉣ 제사 장소에 관해 차례로 알아보자.

 


 

㉠ 제사 날짜는 돌아가시기 전날이 아닌 돌아가신 날이다.

 


 

기제사는 돌아가시기 전날이 아닌 돌아가신 날에 모시는 것이고, 돌아가신 날은 자시(子時: 23시~01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즉 음력의 날짜변경시간은 자시인 23시부터이다.

 

참고로 누군가가 제사 날짜를 물었을 때, 하루 전 날짜를 알려주지 않으면 당일 새벽의 제사에는 참석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이 제사 날짜를 잘못 알게 된 근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에도 제사 하루 전날에 모이던 관습은 그대로 살아남았지만 아이들의 등교(登校)와 가족이나 친지들의 생계 문제 등이 어우러져 하루 전에 제사를 지내는 가정이 많아지게 되었다. 제사를 잘 아는 이들은 아는 이대로 편리함을 좆아 날짜와 시간을 앞당겼고, 모르는 사람들은 모르는 대로 제사 날짜가 하루 당겨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은 과거 권위주의 시대, 즉 군사정권 시대에 존재했던 통행금지와 빠른 사회 변화도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망자(亡者)가 마지막으로 살아있던 날이 제삿날이므로 죽기 하루 전이라고 억지를 부린다.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자. 마지막으로 살아있던 날 또한 하루 전날이 아닌 죽은 날과 동일한 날일 뿐이다.

 

또한 축문 중에 휘일부림(諱日復臨)이라는 구절이 있다. 이 뜻은 ‘돌아가신 날이 다시 이르렀으니...’라는 뜻이다. 이 또한 돌아가신 날이 제삿날임을 방증하는 자료이다. 귀신을 속일 수는 없지 않겠는가? 제삿날이 하루 차이가 나면 축문에 쓰는 일진(日辰)도 달라진다. 이렇게 되면 후손이 지내는 제사와 조상이 흠향(歆饗)하는 날짜가 다르게 되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 과거의 바른 제사 시간은 지금 시계로 새벽 1시 45분 경이다.

 


 

예서에 의하면 제사는 궐명(厥明)에 일어나서 제물을 차리고 질명(質明)에 모시라고 되어 있다. 지구와 해의 위치를 설명한 궐명과 질명은 계절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고 학자에 따라서도 조금씩 달랐다. 그러므로 율곡 선생께서는 닭이 울 때 일어나서 제물을 차리고 준비를 마치면 제사를 모신다 하셨고, 송나라의 장횡거 선생은 적어도 5경(更), 즉 3시에 제사지내는 것은 너무 늦으니 잘못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 제정한 예서인 『국조오례의』에서는 제사시간을 아예 ‘축시(丑時) 1각(刻)’이라고 못 박아 버렸다. 요즘으로 말하면 축시 1각은 새벽 1시 15분 무렵이다. 그러나 조선시대로 돌아가서 궁궐에 있던 자격루(自擊漏)나 해시계를 가지고 시간을 환산한다면 새벽 1시 45분경이 된다 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일본과 같은 시간을 사용하므로 조선시대의 시계와는 30분의 시차(時差)가 생기기 때문이다.

 


 

㉢ 태어남과 동시에 1세가 되는 것은 생명존중 사상에 기인한다.

 


 

또 하나, 회장의 100주기에 대한 관점의 차이도 문제다.

 

우리나라는 서양과 달리 태어나자마자 한 살을 먹는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서양교육의 탓인지 공식적인 장소에서는 전통적인 나이를 잘 헤아리지 않게 되고, 만 나이를 헤아리는 것이 또한 과학적이고 정확하다고 믿게 되었다. 서양과 달리 우리는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나이를 계산한다. 이 계산법에는 뱃속의 아이도 한사람의 인격체로서 인정하는 생명존중사상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회갑과 진갑, 고희 등등 나이를 기념하는 의식이 많다. 100세의 기념식 또한 예외일 수 없을 것이다.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하다보니 요즘처럼 아이들의 생명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금수(禽獸) 같은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이런 미풍양속이 점차 사라지는 세태가 못내 아쉽다.

 


 

㉣ 빈집에서 제사지낼 수는 없다. 장남의 집에서 제사지냄이 마땅하다.

 


 

이 댁은 원래 회장이 살았던 집은 비워두었다가 제삿날에만 가족들이 빈집에 모여서 제사를 모셨다고 한다. 그러다가 금년부터는 장남의 집으로 제사를 옮기게 됐는데 기자들이 그 이유를 물어보니 모두 답변을 회피했다.

 

『의례(儀禮)』「사우례」에 “귀신소재즉왈묘(鬼神所在則曰廟 :귀신이 계신 곳을 곧 사당이라고 말한다)”라고 되어 있다. 즉, 사당의 귀신은 혈통을 같이 하는 후손들의 생기(生氣: 살아 있는 기운)에 의해 그 사당에 존재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의 종갓집 옆에는 늘 사당이 있었던 것이다. 임금님의 집인 경복궁의 동쪽에 종묘가 위치한 것도 같은 이치인 것이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장남의 댁으로 제사를 옮겨가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있다. 새로운 시대의 공인으로서 그 사회의 전통을 바로 알고 바로 실천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었으면 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삶이 곧 국민들의 모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방동민 / 무형문화재 제85호 석전대제 이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