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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시론

특별기고 – 강릉향교의 문화재적 가치와 문화적 품격

어기식 기자
2020.12.25·9분 읽기·조회 144

문화재청장은 지난해 11월6일 ‘강릉향교 명륜당’과 ‘강릉향교 동무‧서무‧전랑’ 등 20건의 시‧도지정 서원‧향교문화재 국가지정문화재(보물)를 지정 예고하고 최종 승인만을 남겨두고 있다. 차제에 강릉향교의 문화재적 가치와 문화적 품격을 짚어보고자 한다.

 


 

 

 

강릉향교 전경

 


 

[강릉향교의 문화재적 가치]

 

먼저 강릉향교의 문화재적 가치를 살펴보면 왜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되어야 하는지 그 사유를 알 수 있다.

 

 

강릉향교는 1313년(충선왕 5년) 강릉도안렴사(江陵道按廉使) 김승인(金承印)이 강릉 화부산(花浮山) 연적암(硯滴巖) 아래 향교를 건립하였으나 백년을 채우지 못하고 1411년 불에 타버려 1413년 강릉대도호부판관 이맹상(李孟常)이 강릉의 명사 68인과 함께 공장에 서명 출연하여 중건하였다.

 

강릉향교는 강릉대도호부의 향교로서 고려시대에 가장 먼저 건립된 교육기관의 하나이고 우리나라 향교의 효시(嚆矢)라고도 한다. 개화기 이후에는 열악한 교육환경에서 근대학교의 설립 주체로 참여하거나 교육의 장을 제공하여 근대교육의 맥(脈)을 이어가는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향교 교육의 모습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역사적 산물이며, 배향인물 또한 유교의 전통을 그대로 간직한 곳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강릉향교의 건축물은 위치와 규모, 기법, 공간구조의 비례와 적합성, 유서 깊은 역사성 등에서 향교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대표성과 역사성, 조형성은 대성전과 명륜당을 비롯한 동무·서무, 전랑(내삼문) 등 모든 부속건물과 일체가 되어 서로 융합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대성전은 이미 1963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214호로 지정되었고, 명륜당을 비롯한 동무·서무, 전랑(내삼문) 등은 이번에 지정 예고된 것이다.

 

대성전은 조선 초기(1413년) 목조건축물로 기둥이 원주(圓柱)의 배흘림형식, 주심포 양식, 서쇠[牛舌]의 미적 감각이 한국 고대 목조건축물 전형요소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전면 한 칸을 퇴로하여 개방한 장방형으로 커다란 장대석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배흘림기둥을 세웠다. 기둥 윗몸은 창방(昌枋)으로 결구(結構)하고, 그 위에 주두(柱頭)를 놓고 공포를 짜올린 주심포(柱心包) 집이다.

 

가구(架構)는 5량(五樑)으로 전면 벽체 자리에 고주(高柱)를 세우고, 후면 평주(平柱)와 고주 위쪽 중간에 대들보를 얹고, 그 위에 동자기둥을 세워 종보[宗樑]를 받치고 있다. 종보 위에는 포대공(包臺工)을 얹어 종도리를 받쳤다.

 


 

 

 

보물로 지정 예고된 명륜당

 


 

이번에 보물로 지정되는 명륜당은 강학공간의 중심으로 유교의 이념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건립된 건물이다. 정면 11칸, 측면 2칸의 홑처마 맞배지붕의 건물로 조선 초기에 남루(南樓)라는 이름으로 11칸 장루(長樓) 형태의 독립 건물로 존재하다가 17세기 초반에 누각을 수리하여 명륜당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런 사례는 강원도 일부 향교에서 나타나고 있으나 강릉향교 명륜당은 그 가운데서도 규모가 크고 건축의 격식이 뛰어나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가치가 충분하다는 인정을 받았다.

 


 

 

 

동무, 서무, 전랑이 대성전을 에워싸고 배치되어 있다.

 


 

‘동무·서무·전랑’은 대성전의 일곽에 해당하는 건물들로 이전·이축 없이 당초 제자리를 고수하고, 대성전과 함께 향교건축의 전형을 담고 있다. 동무(東廡)·서무(西廡)는 정면 5칸, 옆면 1칸 규모의 단층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전면 양 옆 칸에 사롱창(斜籠窓)이 설치되어 있는데, 창틀의 모서리가 연귀맞춤으로 되어 있고, 안쪽으로 둥글게 잘라내고 다듬어 실내에 많은 채광과 환기가 잘 될 수 있도록 고려한 고식(古式)이 눈에 뛴다. 또한 베개 모양 받침을 갖는 동자대공, 둥글게 감아올린 보아지의 초각 등에서 고식의 건축기법이 계승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전랑(殿廊)은 전면의 강학공간과 후면의 제향공간을 구분 짓는 출입문인 내삼문과 좌우로 달린 낭(廊)이 하나의 건물로 기능한 것으로, 정면 9칸, 옆면 1칸 규모의 단층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정면 정칸과 좌우 퇴칸에 문이 설치되고, 나머지는 벽체로 마감되었다. 일반적인 향교의 내삼문의 역할을 하고 있으나 다른 향교와는 달리 행랑형식으로 되어 있고, 1721년 중수(전랑중수기록) 이후 큰 변화 없이 현재에 이르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있다. 보머리의 삼분두 형태 등을 고려해 볼 때 그 이전의 구성형식을 계승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고, 또 신문(神門)으로서의 격식을 드러내기 위해 어칸의 기둥을 높이고, 보 아래의 인방재를 추가하여 초익공과 유사한 머리장식을 돌출시켰다. 서까래의 단면을 조절하여 겹처마의 느낌을 가미한 점 등에서 건축적 탁월성을 보여준다는 사유로 역사적, 학술적, 건축사적 가치가 뛰어나 보물로 지정해 보존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강릉향교의 문화적 품격]

 


강릉에서 가장 우뚝 솟은 산이 화부산(花浮山)이다. 예전 관아에서 볼 때 산 아래로 수태극 양태극으로 휘감아 도는 남대천 위에 뜬 꽃봉오리 같은 산이 화부산이지만 그 사행천은 직강공사되고 화부산은 찬란한 건축물 숲에 쌓여 높이 푸르름을 뽐내며 시민의 산소를 공급하는 소나무 월림(越林)이 되었다. 강릉향교 앞에는 연적암(硯滴巖)이란 바위가 있다. 고서 「문헌비고」에는 독(瓮)같이 생긴 바위가 연적암이고, 그 아래 강릉향교가 있었다고 하였다. 고려 충선왕 5년(癸丑,1313) 강릉향교를 처음 지었던 위치가 연적암 아래이고, 강릉향교는 창건 100년 후 전쟁으로 인한 화재로 소실되었다. 2년 뒤인 1413년 다시 지을 때 화부산 양지바른 기슭에 제왕산을 바라보면서 지었고, 대성전은 그때의 건축물이 고스란히 보존되고 있다. 강릉에는 강릉향교와 연관된 지명이 많이 유래되고 있다. 인구 5만을 자랑하는 교동(校洞)은 향교마을이고, 당두(堂頭)는 명륜당이 있는 윗마을, 모안(慕安)은 안자를 기리는 마을, 운곡(雲谷)은 주자가 강학하던 곳과 비슷하다 하며, 보래미[浦南]에 있다.

 

강릉향교 배움의 공간에는 명륜당, 동재, 서재가 있고, 제향 공간에는 대성전, 동무, 서무, 전랑이 있다. 강릉향교는 지방 인재를 양성하던 국립 교육기관인데 고려시대에는 과거급제자가 100여인, 조선시대에는 705인으로 관리진출의 중요한 관문이었다. 얼마 전 강릉에서 일기장이 발견되었는데, 강릉향교 김현호(1761년생) 유생이 1791년부터 1794년까지 4년 동안 하루도 빼지 않고 쓴 일기장 「치치암일록」이다. 일기 속에는 당시 유생의 향교일상과 과거시험 보러 강원감영, 양구를 다녀온 과정, 향교의 교육과목, 향교의 교육방법으로 백장(현장시험), 십초백장, 순제(집에서 공부해오는 숙제), 십초순제를 주도적으로 실행하여 유생들의 학문을 숙성시킨 내용을 알 수 있었다. 향시(鄕試: 도단위 시험)가 엄정한 인재선발의 성격을 가졌다면, 빈흥과(賓興科)는 인재등용의 지역균형을 명분으로 하였다는 점과 유생들의 일체 경비는 관에서 지급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양구에서 본 과거시험은 빈흥과로 지방의 역사, 지리에 관한 문제가 출제되고, 정조임금이 경서(經書)의 뜻을 물으며, 유생들이 한 조목 한 조목씩 받아서 대답함이 돋보였다고 했다. 이는 임금의 학문성향의 반영이요, 향후 학문의 동향을 전망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인 1908년 강릉향교는 사립 화산학교(전교 鄭顯運)를 세워 몽양(蒙養) 여운형 선생을 모셔 근대학문을 보급하다가 1928년 강릉공립농업학교, 1938년 강릉공립상업학교, 1940년 강릉공립고등여학교, 1943년 옥천국민학교, 1949년 명륜중학교, 1963년 강릉명륜고등학교를 개교하여 강릉교육의 산실 역할을 해왔다. 강릉향교 전교 박용철(朴容喆)은 1965년 명륜당에 율곡선생기념사업회를 설립하여 장성택(張聖澤:율곡의숙장)을 위원장으로 율곡의 유품과 신사임당 유품을 수집하였다. 사임당 유품으로 초충도병풍 등 11점, 율곡유품으로 벼루 등 9점, 옥산의 유품으로 초서글씨 등 5점을 접수하고, 율곡선생유품추진위원회(위원장 尹天柱/문교부장관)를 발족하여 25점을 매입하여 율곡기념관에 보관하였으며, 율곡선생기념사업회에서 제1회 대현율곡이선생제를 주최하여 제9회를 마치고, 제10회부터는 율곡제전위원회에서 지금까지 추진하고 있다. 대성전, 동무, 서무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136인의 유학자 위패를 원형보존하는 것이 한국에서 유일하고, 전랑도 한국 유교건축물 가운데서 강릉에서만 볼 수 있는 소중한 보배이다. 고려 건축물에서 볼 수 있는 동·서무의 곡선 사롱창(斜籠窓)을 온전하게 보존함은 사라진 시대를 되살리고 있다. 이러한 과거의 유산이 세월의 무게를 이기고 온전한 가치를 발휘하여 이제야 대한민국 보물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앞으로도 더욱 큰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우리의 일상 속에 살아 숨 쉬는 문화유산이 되기를 바라본다.(자료제공 : 강릉향교 전교 최기순)

 

어기식 / 강릉향교 전 주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