杞溪兪氏 機張大邊門中에서 한 烈夫와 두 孝女가 탄생하다
대저 나라를 위한 순절(殉節)은 위지충(謂之忠)이라 하고 위선계술(爲先継述)은 위지효(謂之孝)라고 하며 충효지인(忠孝之人)은 통위지현(通謂之賢)이라고 한다.
고래(古來)로 우리 압동(鴨東)에서는 충·효·열(忠·孝·烈))을 천하삼절(天下三絶)로 숭상(崇尙)해 왔다.
기장군 기장읍 대변리의 기계유씨(杞溪兪氏) 한 문중(門中)에 400년의 유교가통(儒敎家統)을 이어오는 사람이 있으니 그는 청해(淸海) 유주열(兪周烈) 공(公)이다.
기계유씨 유주열 공의 가계(家系)를 살펴보면 신라조(新羅朝)에 아찬(阿湌) 벼슬을 지낸 유삼재(兪三宰) 공을 시조(始祖)로 삼고 있으며 후손 유의신(兪義臣)이 고려개국(高麗開國) 후 절의(節義)를 지켜 태조왕건(太祖王建)의 신하(臣下)되기를 거절하자 기계현(杞溪縣) 호장(戶長)으로 강속(降屬)시켰다. 유의신은 그러한 처사에 굴하지 않고 기계에서 여생을 보내면서 세계(世系)를 잇게 되었는데 후손들은 세거지(世居地)인 기계(경주의 옛 지명)를 본관(本貫)으로 삼았다.
기계유씨는 우리나라 285성씨 가운데 손세번연(孫勢繁連)하는 대성(大姓)이다. 절의(節義)를 중시하던 문중에서는 고려개국 초기 관직에 오르는 것을 피하였으나 후기(後期)에 이르러 세거지를 경기도 지방으로 옮기면서 서서히 문중번거(門中繁居)의 기틀을 다져 가며 벼슬에 뜻을 두기 시작했다. 고려말 좌복야(左僕射) 유득선(兪得瑄), 판도판서(版圖判書) 유선(兪僐), 판도판서(版圖判書) 유승계(兪承桂) 3대가 두각을 나타냈고 유득선(兪得瑄)의 증손 4형제가 뒤를 이어 종중번성의 중추를 이루게 되었다.
한편 조선조(朝鮮朝)에 들어와서는 많은 명신(名臣)과 명현(名賢)을 배출시키면서 성세(盛勢)를 누렸으며 충절의 표징인 사육신(死六臣) 유응부(兪應孚) 장군의 배출 또한 유문(兪門)의 가장 큰 자랑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유응부 장군은 평안도절제사(平安節制使)를 거쳐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올랐다.(正二品) 장군은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등과 단종(端宗)복위를 꾀했으나 실패하고, 세조(世祖)의 친국(親鞫)에도 굴하지 않고 절개를 지켜 순절한 명현으로 청사(靑史)에 추앙받고 있다. 장군은 충신(忠臣)의 사표(師表)가 되며 청렴강직하기가 비할 데 없는 청백리(淸白吏)의 귀감으로 전래(傳來)되고 있는 분이다.
이렇게 역대(歷代) 왕조를 거치면서 절의(節義)와 충절(忠節)에 빛난 혈통은 대대로 이어지면서 이런 궁벽한 시골마을에 이름 없이 사는 후손 유주열(兪周烈) 공 대에 와서도 선조들의 고귀한 혈통답게 한 집안에서 열부(烈夫)와 두 효녀(孝女)가 나옴은 우연이 아니고 그 선조(先祖)에 그 후손(後孫)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고 본다.
청해 유주열(72) 공은 온갖 난관을 극복하면서 유명한 기장미역을 양식해 왔다. 그 양식사업을 하는 동안 아내 권수금(71) 여사의 내조 또한 크게 기여했다.
1992년 10월 하순 경에 기장대변리 앞바다(수심 20m)에서 미역양식어장 작업을 하면서 어장 네 기둥을 반듯하게 하려면 멍(일종의 닻)을 물 밑에 놓는 작업을 하는데 (멍1개 무게가 10톤) 갑자기 아내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바다 밑에 내려가는 멍줄에 아내의 다리가 감겨서 물밑으로 빠져 내려가는 순간이었다. 유주열 공은 그 찰나 전광석화와 같이 아내의 한쪽 팔을 잡고 젖 먹던 힘을 다해 붙잡고 놓지 않았다.
이 순간에 많은 수산양식업자들이 사고가 나는데 바다 밑으로 빠져 내려가는 사람을 살리려고 하다가 같이 빠져 죽는 경우가 허다하다. 유공(兪公)은 잘못하면 같이 죽는 순간이 될 뻔했으나 전신의 힘을 집중(集中)한 결과 아내는 한쪽 다리에 살이 다 벗겨지고 뼈만 보였고, 아내의 발목이 떨어져 물위에 둥둥 떠 있었다. 공은 정신을 잃지 않고 아내를 건져 배에 올려놓고 물에 떠있는 발목을 건져서 부랴부랴 배를 인근 연화리항으로 정박시켜 놓고 정신없이 살펴보니 관광 온 자가용이 한 대 보여 차주에게 사정 얘기를 하고 협조를 구해 기장고려병원으로 급송했다.
응급처치를 하고 큰 병원으로 가려고 할 때 이현주 원장이 책임지고 수술을 하겠다고 하여 그렇게 하라고 했더니 접합수술이 천만다행히 성공적으로 끝났다. 이에 큰딸 은아(38)와 막내딸 난이(36)가 온갖 정성을 다하여 주불이칙(晝不離則)하고 야불취수(夜不就睡)로 눈물겨운 간호를 한 결과 어머니가 평생 불구가 될 뻔했는데 온전히 걸을 수가 있게 되니 원근에서 칭송이 자자하였다. 남편과 두 딸이 아니었으면 아내가 살았을 리도 없었거니와 두 딸이 없었다면 어머니는 평생 불구의 몸이 되었을 것이다. 남편인 유주열 공은 평소에 이해심이 깊고 관대하며, 공명정대하고 도량이 넓은 사람이다. 딸들은 어려서부터도 정직하고 자라면서 정숙하여 효심이 극진한 편이었다.
특히 큰딸 은아 씨는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아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기장미역양식업을 경영하여 국가의 산업에 기여하고 있다. 막내딸 난이 씨는 광학(光學)을 전공한 세계적인 박사(博士)로서 각국의 초청을 받아 분주히 활동을 하고 있으면서 현재는 광주고등광기술연소실장으로 연구에 전념하고 국가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이 두 딸은 출천지효녀(出天之孝女)라고 평판이 높다. 이 사실이 기계유씨 대종회에 알려져서 기계유씨 전국대종회에서 대종회사상 처음으로 두 딸에게 2015년 10월 3일 대종회 정기총회에서 효녀로 선발하여 효녀(孝女)상을 받게 되었다.
절의(節義)와 충절(忠節)을 숭상하는 가문에서 효녀가 둘씩 탄생하니 누대(累代)에 걸친 선조(先祖)들의 얼이 살아 있음을 입증(立證)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겠다. 세상이 혼탁하고, 연일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열부(烈夫)와 두 효녀(孝女)가 세상을 밝혀 주는 등불이 되길 바란다. 이런 사실이 묻히면 안 되겠기에 온 세상에 알려지기를 바라고, 더욱 유교문화가 확산되어 도덕이 창달하는 사회가 되길 소망한다.
김진옥 / 전 성균관 전의·기장향교 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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