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 부끄러움을 아는 데서 의로운 행동이 나온다
성균관은 명실상부한 유교의 총본부로 관행이었다는 미명아래 어려운 처지에 처해 있다. “두루 친하되 편당하지 않는 것은 군자의 공심(公心)이며 편당하되 두루 친하지 않는 것은 소인의 사의(私意)이다”고 탕평비에 새겨져 있다. 성균관장의 유고로 장정에 의해 직무대행이 지명되어 조직 정상화를 도모했지만, 사심 가득한 일부 인사들의 현 체제를 부정하는 소송이 이어졌다. 성균관은 더 이상 자생할 수 없다는 근거 없는 유언비어마저 돌고 있지만 성균관을 방문하여 맡은 소임에 충실한 임직원들을 보며 지방에서의 우려는 기우(杞憂)로 안도감을 갖게 되었다.
의(義)는 마땅함[宜]이란 뜻으로 사람이 행해야 할 마땅한 도리며 옳은 길을 의미하며 행동의 올바름을 말한다. 의는 사리의 판단 기준이므로 공(公)의 입장에서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심을 가지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사회관계에서 이익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척도가 의(義)이다. 공부자는 “의를 보고도 실행에 옳기지 않으면 용기가 없는 것이다”고 했으며, 맹자는 “자신의 잘못을 부끄럽게 여기고 남의 악(惡)을 미워하는 마음[羞惡之心]을 확충시킨 것이 의의 단서가 된다고”고 했다. 부끄러움을 아는 데서 참된 용기가 나오고, 부끄러움을 아는 데서 의로운 행동이 나온다. 부자(父子)와 같은 혈연적 관계가 친(親)에 의한 결합이며, 군신(君臣)의 관계는 의(義)가 되어 어버이를 친히 하는 것은 인(仁)이며 어른을 공경하는 것은 의(義)가 되는 것이다.
최근 전임 관장 체제하에 성균관의 중요직을 맡았던 소수의 자들이 책임을 통감하며 근신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정당성을 주장하며 급기야 총회 전에 개최하는 중앙상무위원회의조차 열지 못하도록 소송 등을 제기했다는 말을 듣고는 아연실색(啞然失色)했다. 제도권에서 올바른 의견조차 제대로 개진하지 못했던 자들이 이제와서 음지에서 폐단만을 지적하며 운운하는 행동은 정당화 될 수 없을 것이다. 비록 대의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송사(訟事)까지 이르는 극단적인 방법을 취한 것은 의(義)에 위배되는 것이다. 공부자께서 춘추(春秋)를 지으시니 난신적자(亂臣賊子)들이 두려워했다고 한다. 송사를 감행하여 법의 판단을 받고자 해도 누워서 침 뱉기에 불과하며 성균관의 위상 추락에 힘을 보탠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유림은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말고 시비곡절을 분명하게 판단하는 혜안이 필요하며 더 이상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金斗浩 (부산시 주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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