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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시론

특별기고 - 인간사랑[仁]과 관용[恕]의 토대

편집부
2016.07.21·5분 읽기·조회 31

조남욱 / 부산대학교 교수

 

일상생활에서 미운 마음이 생길 때, 그리고 무시당했을 때, 도덕을 중시하는 유림들은 일반인과 달리 어떠한 모습을 보일까? 오늘날의 남녀노소 대부분은 그 누구로부터 조금이라도 무시되거나 모욕을 당할 수 없다고 여긴다. 그만큼 자존심이 강하다. 그리고 그 어떠한 경우에도 불이익을 당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기주의적 성향까지 보인다. 이 때문에 나날이 극심한 갈등과 폭력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에게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는 미명은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사람들은 어떤 어려운 처지를 당하면 흔히 “사랑하라”, “용서하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인가? 혹자는 남의 것을 빼앗고서도 더 빼앗으려하고, 또는 남에게 빼앗길까 우려하여 그 방어 장치를 마련하는 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인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남을 돕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남들이 ‘퍼준다’고 비웃어도 그는 ‘뿌듯하다’고 자평한다. 그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러한 마음을 놓아버리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애정은 어떠한 토대에서 나타나는 것일까?

공자는 제자 번지(樊遲)가 “인(仁)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愛人]”이라고 가르쳤다. 이를 배경으로 주자는 ‘인’을 ‘사랑의 이치[愛之理]’라 해석하고, 정다산은 ‘사랑의 행동[愛之行]’으로 풀이했다. 그 인간사랑[仁]에는 공경의 의미까지 포함되는 것이므로 공자는 중궁이 ‘인’을 물었을 때 ①“집을 나서면 큰 손님 뵙듯이 하고 백성을 시킴에는 큰 제사 올리듯 하라. 내가 하고 싶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 그리하면 나라에서 원망함이 없어질 것이요, 집안에서도 원망함이 없어질 것이다”라고 응답하기도 했다. 또 자공으로부터 받은 ‘종신토록 행할만한 것’의 질문에 대해서는 ②“용서함[恕]이로다. 내가 하고 싶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이 ①②는 ‘인(仁)’과 ‘서(恕)’를 말함인데 밑줄 친 부분으로 확인되듯이 그 실천방식은 양자에 동일하다. 여기서 우리는 사랑과 관용(용서)의 맥락은 하나로 이어지는 것임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그러한 마음은 어디서 솟아나는 것일까? 그 토대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생각건대, 그것은 자기 스스로에 대하여 ‘소아(小我)’가 아닌 ‘대아(大我)’의식에서 가능한 일이다. 즉 항상 깊이 살피며 아끼는 ‘자기’라는 영역의식을 좀 더 넓혀가는 경우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대아’의식은 또 어디서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 이는 지금 현재 내가 남들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환경적 상황, 즉 상호 공존의 유대관계를 직시함으로써 발현될 수 있다. 이 존재의식이 좁으면 ‘소아’의 틀을 벗어나기 어려워서 이기주의의 작동은 당연시되기 마련이다. 유교에서 그 ‘대아’의식을 토대로 그려진 것이 곧 ‘대동사회(大同社會)’이다. 자기 부모만 부모로 여기지 않고, 자기 자식만을 자식으로 여기지 않으며, 재물이 소중하되 나만을 위하여 쓰지 않는 태도가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다.

흔히 자기보다는 남을 탓하기 쉽고, 자기의 잘못에는 관대하면서도 남의 잘못에는 매정하기 쉽다. 그러나 이리하면 자기 스스로에겐 어떠한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고 또 남들과 화목하게 살아갈 분위기 조성도 어렵게 된다. 그리하여 『명심보감』에 전하는 바와 같이 중국 송나라의 범순인(范純仁)은 “남을 책망하는 마음으로 자기를 책망하면 잘못이 적어질 것이요, 자기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하면 사귐이 온전해질 것이다”라고 일깨웠다. 또 장자는 “나에게 좋게 하는 자엔 나 또한 좋게 대하고, 나에게 나쁘게 하는 자에게도 나 또한 좋게 대하라”고도 말했다. 왜일까? 나는 언제나 상대의 호오(好惡)에 좌우될 수 없는 ‘선행의 주체’라고 자신하는 심기가 강인하기 때문이다.

실로 이러한 모습의 바탕은, 남들을 탓하기에 앞서 자신을 먼저 살펴보려는 ‘수기(修己)’의 노력, 그리고 ‘자기’라고 하는 영역의식을 극대화시켜 잘 모르는 사람들까지 포용할 수 있는 사회적 공동체의식의 충만함으로 확보된다. 이때에 비로소 공자가 그토록 강조한 인간사랑[仁]과 관용[恕]의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

부디, 우리 유림 제위께서는 선현들이 보인 것처럼,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 모두를 아우르며 긍정할 수 있는 대아의식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기원한다. 그리하면, 서로를 공경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유림사회에 나타나는 작금의 대소 문제들은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게 될 것이요, ‘지공(至公)의 대동사회’에도 근접해 갈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