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玄崗의 泮中雜詠>성균관 문묘에 생기를 불어넣어야 한다

필자가 어렸을 때 성균관 문묘 명륜당은 또래의 친구들에게 즐거운 놀이터였다. 명륜당 마당에 가꿔진 화단은 개나리, 진달래 등 계절을 달리 하며 꽃들을 활짝 피웠고 무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 학생들과 동네 사람들에게는 훌륭한 피서지였다. 당시에는 그것이 일제의 잔재인지 몰랐지만 그때는 그랬다. 물론 지금은 재정비돼 제 모습을 찾았다. 벌써 40년도 훨씬 전의 일이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양현재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녔다. 학생들은 장학금을 받는 대신 성균관 문묘의 동․서재에 기거하며 학과 교과 과정 이외에 양현재 교과를 별도로 이수해야 했다. 성균관에서 학생들의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명륜당 마당에서 몰래 음주를 하다 걸려 한우 아저씨(250여 년 동안 같은 일을 하며 성균관을 지켜온 집안의 손인 이정우 씨로 2012년 8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성균관을 출입하던 아이들은 그냥 한우 아저씨라고 불렀다.)한테 혼이 나도 오히려 떼를 써 진사식당에서 얻어먹는 국밥 한 그릇은 웬만한 진수성찬 못지않았다.
대학원 박사 과정을 다니면서는 대학에서 강사를 하며 유교대사전을 집필했다. 10여 명의 동료들과 성균관 문묘의 존경각에서 5년 동안 작업을 했다. 성균관대 도서관에서 유교 관련 도서를 대여해 존경각을 그야말로 도서관으로 만들었다. 고맙게도 성균관대에서는 트럭 몇 대 분의 도서를 대여해줘 사전 편찬 사업을 끝낼 수 있도록 후원해줬다. 당시에는 컴퓨터로 작업을 할 때도 아니었고 추운 겨울날 꽁꽁 언 손으로 원고지를 끄적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난방도 연탄이나 갈탄으로 할 때였지만 어떤 사고 한 번 없었다.
이처럼 비록 조선시대의 성균관은 아니었지만 성균관대의 강의실과 기숙사로, 혹은 성균관의 사무실과 교육장소로, 성균관 문묘의 각 전각들은 수백년 동안 그러했듯이 유림들에 의해 여전히 그 본래 기능에 맞게 사용되고 있었다.
그런데 2004년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오랜 기간 동안 성균관을 둘러싸고 고소고발을 일삼았던 류모라는 자가 “성균관대가 국가 유적지를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대통령 민원실에 진정을 낸 것이다. 이에 대통령 민원실은 대검찰청에 진상파악을 지시했고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이 경찰에 내사 지휘를 내렸다.
수사 관계자는 “성균관대측은 1959년부터 종로구 명륜3가 53 사적지 143호 내에 있는 양현재, 명륜당, 진사식당, 향관청, 수복청, 비천당 등 21개 동의 건물 중 양현재를 문화재청에 신고하지 않은 채 학생들의 기숙사로 무단사용한 혐의가 있다”며 성대 총장을 입건했다.
그리고 종로구청은 사적 143호 내 21개 동 중 13개 동을 허가 없이 사용하고 있다며 퇴거명령을 내렸다. 수백 년 동안 사용돼 오던 것을 당시 문화재보호법 제20조에 규정된 문화재청장의 허가 규정을 지키지 않았으니 위법이라는 것이었다.
또 숭례문 화재 사건 이후 2008년에는 문화재청으로부터 건물의 관리책임을 넘겨받은 종로구청이 대성전의 전기시설을 철거하고, 명륜당의 출입문을 봉쇄하고, 하련대 옆에 컨테이너로 관리사무소를 설치하는 등 600년이 넘게 지켜온 유교의례를 제대로 진행할 수 없게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러는 동안 유교 종단인 성균관의 전통에 무지한 인사들에 의해 성균관 문묘는 오히려 이곳저곳 훼손되었고 지금도 그 흔적은 유림들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전향례가 뭔지도 모른 채 전향문의 붉은 칠을 멋대로 벗겨 버리고 명륜당의 문들을 없애 버린 일, 하련대에 흉물스런 관리사무소를 둔 일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성균관 문묘가 제향공간인 대성전과 강학공간인 명륜당, 동·서재 등으로 구성돼 있는 것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종교적으로 대성전에 모신 성현은 모성지심(慕聖之心)을 갖춘 유생들의 생기(生氣:살아 있는 기운)에 의해 존재할 수 있는 것이고, 그 유생들이 기거하고 강학하는 공간이 명륜당, 동·서재 등이다. 이는 혈통을 같이 하는 후손들의 생기에 의해 사당의 귀신이 존재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다.
지난 2011년 이후 정부의 문화재 관리 정책은 단순 보존에서 ‘보존과 활용’으로 그 틀을 크게 바꿨다. 이에 따라 향교와 서원, 전통사찰 등에서는 각종 사업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성균관 문묘 일원만을 예외로 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지난 수년간 성균관을 비롯한 유림사회가 혼란에 빠졌던 것도 대성전에 모신 성현들에게 우리 유림들의 생기가 제대로 전해지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루라도 빨리 성균관 문묘 관리가 성균관으로 일원화돼야 한다. 성균관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소중하게 생각하는 유림들이 관리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다. 동·서재에도 예전처럼 학생들이 기거하고 명륜당에서 글 읽는 소리가 들려 대성전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상호 /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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