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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시론

독자기고 : 成均館 奉審을 다녀와서

편집부
2013.12.01·2분 읽기·조회 16

이른 아침부터 부산함을 떨었지만 삼척향교에서 아침 6시30분에 출발해야만 하는 성균관 봉심 가는 길은 멀기도 하였다. 바쁘게 출발하여 진부에서 조찬을 즐기고 나니 분주함이 사라졌다. 이어서 정갈한 몸과 마음으로 봉심해야 한다는 전교님의 말씀에 모두가 숙연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성균관 성묘에 봉심을 드린다는 것은 그리 가벼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깨닫게 됐다. 드디어 오전 10시경 성균관에 도착하여 유복을 갈아입고 나니 대성전 앞뜰에서 홍기평 관장대행의 따뜻한 환대와 격려의 덕담이 있었다. 멀리 삼척향교에서 찾아온 우리를 편안하게 하였다. 

오전 11시에 봉심 분향례가 올려졌다. 대성전 단 아래에서의 배례를 올리며 공부자의 가르침을 생각하며, 가슴이 뛰어 온 몸을 흔드는 감격을 느꼈다. 이어서 홍기평 관장대행과 함께 성균관 봉심을 증명하는 사진을 촬영했다.

그리고 성균관 총무처의 박광영 의례부장의 안내와 설명으로 경내를 탐방하였다. 대성전을 양쪽에서 지켜온 삼강오륜을 상징하는 나무는 외과 수술한 모습으로 오랜 성상을 이겨온 품격을 내뿜는다. 수복청(守僕廳) 앞의 주목은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의미하듯 죽은 가지와 산가지가 함께 있어 세월을 묻는다. 성균관 문묘의 역사와 의미, 그리고 성균관에 배치된 전(殿), 당(堂), 각(閣), 고(庫)의 설명을 듣고 의미를 이해했다.

나는 당대의 명필인 한석봉(韓石峯) 선생이 썼다고 하는 대성전 현판 글씨를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명륜당 앞들을 거닐며, 엄선된 인재들의 학문과 인격을 탁마하는 모습을 연상해 본다. 명륜당 앞뜰의 느티나무, 회화나무, 은행나무의 단풍이 아름다워 한참 쳐다보며 회상에 잠겼다.

몇 백 년을 이 자리에서 지켜온 고목은 세월을 이겨 낸 지혜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 일제 강점기에 엄청난 탄압을 받았던 성균관과 향교는 국가와 민족의 불행을 말하기도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저며 온다. 여기에 우리 유림들이 헤쳐 나아가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것 같았다.

 

閔庚九(三陟鄕校 掌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