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안회당(安懷堂)에서

손세제(철학박사)
충남 홍성에 가면 옛 홍주읍성(洪州邑城)의 동헌 터가 있다. 세월의 풍파를 맞으며 묵묵히 견뎌오다 지난 십수 전부터 정비를 받아 옛 모습을 찾아 가고 있다. 이곳에 유학의 정치 이념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명소가 있어 여기 소개하여 그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논어』 「공야장」편 제25장에 이런 말이 있다. “안연(顔淵)과 계로(季路)[子路]가 공자를 모셨다. 공자가 말하였다. ‘어찌 각기 너희들의 뜻을 말하지 않느냐?’ 그러자 자로가 말하였다. ‘수레와 말과 가벼운 갖옷을 친구와 함께 쓰다가 해지더라도 유감이 없고자 합니다.’ 안연이 말하였다. ‘제가 잘한 것을 자랑함이 없고 공로를 과시함이 없고자 합니다.’ 그러자 자로가 말하였다. ‘선생님의 뜻을 듣고자 합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늙은이는 편안하게 해 주고, 친구에게는 믿음을 주고, 나이 어린 이는 감싸주고자 한다.’”(顔淵·季路侍. 子曰 “盍各言爾志?” 子路曰 “願車馬·衣輕裘, 與朋友共, 敝之而無憾.” 顔淵曰 “願無伐善, 無施勞.” 子路曰 “願聞子之志.” 子曰 “老者安之, 朋友信之, 少者懷之.”)
언젠가 안연과 자로는 공자와 한가한 때를 보낸 적이 있다. 이 이야기는 그때 있었던 일을 소재로 제작된 것이다.
물론 이 일은 실제 일어난 사건은 아니다. 세간에 떠돌던 이야기를 취해 논어를 편집할 때 끼워넣은 것이다. 어떻게 알 수 있느냐? ‘계로(季路)’라는 말에 그 단서가 있다. 자로(子路)는 성은 중(仲)이고, 이름[名]은 유(由)이며, ‘자로(子路)’는 그의 자(字)이다. 그는 노나라 변(卞) 땅 사람으로 일찍이 낭인이 되어 천하를 떠돌았지만, 공자를 만난 뒤 공자의 인품에 감화되어 스스로 제자가 된 사람이다. ‘계로(季路)’는 공자의 자제 가운데 용기로 이름 높았던 자로의 별명이다. [伯仲叔季를 생각하면 자로는 중씨(仲氏) 집안의 넷째(季路)였던 것 같다.]
논어는 공자께서 돌아가신 뒤 두 세대가 지난 공자의 재전제자(2대 제자) 때부터 서서히 편집되기 시작하여, 그후 약 600여년 동안 갈고 다듬는 과정을 거쳐, 삼국 시대의 하안(何晏) 대에 이르러 현행본으로 정초된 책이다. 당시 논어를 편집한 공문 제자[재전제자]들은 공자의 제자[직제자]들의 이름을 기록할 때, 자신의 스승이 사우(師友)를 대하던 예에 따라, 그들의 이름을 ‘자(字)’로 칭했다. ‘자’는 동료들이 서로를 칭할 때 사용하던 호칭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전통사회의 호칭수법이다.
옛날 선비들에게는 여러 가지 호칭이 있었다. 하나는 이름인 ‘명(名)’, 다른 하나는 ‘자(字)’, 다른 하나는 ‘시호(諡號)’이다. ‘명’은 부모ㆍ임금ㆍ스승이 당사자를 부를 때 사용하였고, ‘자’는 관례(冠禮)를 치른 뒤 받았는데, 주로 동료들이 서로를 칭할 때 사용했다. 그리고 ‘시호’는 죽은 뒤 임금이 그 공덕을 칭송하여 추증(追贈)하여 내린 이름이다.
그런데 위 문장에서는 자로를 ‘계로(季路)’ 곧 별명(別名)으로 칭하고 있다. 공문에서 사용하던 호칭 수법이 아니다. 이 문장은 공문 밖의 세간에서 전해지던 이야기에서 소재를 취해 만든 것이다.
“논어(論語)”의 ‘논(論)’은 토론을 거친 뒤 편찬했다는 뜻이고[論纂] ‘어(語)’는 이야기란 뜻이다. 『논어』는 공자께서 돌아가신 뒤 전해오던 공자 및 사우들에 관한 이야기를 모아 편집한 책이다. 공자께서 돌아가신 뒤 제자들은 각지로 흩어졌다. 그래서 공자의 말씀에 이견이 생겼다. 사라져 없어진 것도 있었다. 이에 스승의 가르침을 영구히 보존하고자 공문 내외에서 전해오던 이야기를 모아 편집하게 되었다. 다만 아무 것이나 모아 두서없이 편집한 것은 아니고, 격언이나 격식으로 삼을 만한 것들을 취해 내용과 형식을 조정하여 편집했다. 그래서 ‘논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위에 인용한 「공야장」편의 문장에는 옛사람들의 의식과 정신이 담겨 있다. 고대의 왕조들은 유교를 국시(國是)로 택했다. 그래서 공자의 말씀을 기록한 『논어』는 누구나 애독하던 고전이 되었다. 옛날 홍주목사가 홍주 고을을 다스릴 때 이 문장에서 ‘안회(安懷)’라는 말을 취해, 거기에 자신의 생각을 담은 듯하다.
이제 이 문장을 오늘날의 취지에 맞게 해석해 보겠다.
어느 날 공자는 안연ㆍ자로와 함께 담소하는 시간을 가졌다. 안연은 공문의 최고 고족(高足)이고, 자로는 공자에게는 벗이요 보디가드요 조언자요 반려자이니, 이들 세 사람이 시간을 내어 만났다 하여 이상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그때 공자는 평소 아끼던 두 제자가 곁에 있자 이렇게 말했다. “그 동안 참으로 격조했구나. 이제 우리들이 한자리에 모였으니 겉치레는 접어두고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눠보자꾸나, 너희들이 평소 품었던 뜻을 말해 봐라.” 요즘 말로 하면 스승과 제자가 한가함을 즐기며 마음에 두었던 뜻을 서로 나누었던 모양이다.
그러자 자로가 바로 말했다. 자로는 성정이 매우 급했다고 한다. “저는 남자라면 의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보다 먼저 남을 생각하고 대(大)를 위해서는 소(小)를 희생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다음에 제가 크게 성공하더라도, 제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배타적으로 오직 제 소유로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친구들과 함께 쓰겠습니다. 설령 친구들이 제 재산을 축낸다 하여도 저는 결코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공자는 빙그레 웃으며 칭찬을 해 주었다. “그래 너다운 말이다. 남자라면 의당 그래야겠지.” 선생님께 칭찬을 받자 자로는 으쓱해 하며 안연을 쳐다보았다. 안연은 심사숙고하는 형이라 좀처럼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일이 없었다. 공자에 버금가는 인격을 갖췄다 하여, 공문(孔門) 십철(十哲) 가운데 으뜸으로 배향(配享)되는 제자이다.
자로가 자신을 바라보자 안연이 말했다. “저는 부족함이 많은 사람입니다. 만일 제게 한가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저를 되돌아보고, 저의 잘못된 점을 고치고, 어떻게 해야 선생님처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 고민해 보겠습니다.” 모범생ㆍ샌님ㆍ전형적인 책상물림다운 말이다. 안연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자 자로는 크게 당황했다. ‘아뿔사! 내가 또 경솔했구나.’ 그래서 겸연쩍은 상황을 돌리려고 재빠르게 공자에게 청했다. “선생님의 꿈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내가 벼슬길에 나아갈 수만 있다면, 노인들은 여생을 편히 지낼 수 있도록 해 주고, 나라 사람들에게는 서로가 믿을 수 있도록 해 주고, 어린아이들은 자식처럼 품어 주겠다.” 공자는 출사를 몹시 바랐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나이 50세가 되도록 미관말직도 얻지 못했다. 아마 이 이야기는 그때 있었던 이야기로 추정된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모든 정치가들이 공자의 말씀처럼 정사에 임한다면 상하 좌우는 모두 평안해질 것이다. 다툼도 없고 대립도 없고 갈등도 없는 그야말로 대동세상이 될 것이다.
정치란 한 마디로 말하면 ‘가치를 배분’하는 일이다. ‘가치’란 ‘선’ ‘이상’을 말하는데, ‘옳고’ ‘바른 것’이다. 누구에게나 옳고 바르게 여기는 것이 있다. 그것을 우리는 ‘가치관’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어떤 일이 닥치면, 그것을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가치관, 잣대]에 비추어, 적당한지 혹은 지나친지 혹은 모자라는지를 살핀다. 그리고 ‘옳다’ ‘그르다’ ‘지나치다’ ‘모자란다’라고 말한다.
그 자[尺]가 정신에서 온 것이면 ‘도덕’[moral]이라 하고 생활 속에서 온 것이면 윤리[ethic]라고 한다. 가치관은 저마다 다르다. 그래서 생각이 다르다고 남을 비난하면 나도 비난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생각 곧 가치관이 격하게 충돌하면 사회에는 큰 혼란이 일어난다. 지식이나 신념체계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이를 조정할 수단으로 ‘정치’라는 행위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정치란 바로 이 가치(지식, 신념)가 올바르게 구현될 수 있도록, 말하자면 모든 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고루 펼칠 수 있도록, ‘배분’ ‘분배’ ‘조정’하는 행위이다. 다양한 생각들이 공존할 수 있도록 정책을 시행하여 사회를 통합하는 것, 이것이 정치의 본질이요 정치가가 해야 할 역할인 것이다. ‘국가를 위해 국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국가가 존재한다’는 말도 이에 기인한다. 개인의 행ㆍ불행이 국가의 정치에 달려 있어 잠시 국가가 개인보다 우선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개인이 국가의 기체(基體)인 것이다. 이 점을 각별하게 기억해야 어진 수령이 된다.
나이 지긋한 어른들은 아들과 딸 그리고 손자와 손녀, 일가친척들 그리고 자신의 삶이 걱정 없이 잘 되기를 바라고, 한창 일을 하는 젊은 사람들은 상대방(국가, 정부를 포함하여)이 약속[信]을 잘 지켜 일이 잘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고, 어린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구존(俱存)하고 또 자신의 꿈이 실현되었으면 하는 것이 희망이요 바램일 것이다. 서로 다른 계층에 있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지닌, 서로 다른 꿈들이 모두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것, 말하자면 가치가 고르게 배분되도록 조정하는 것, 공자는 그것을 ‘정치’라 생각하고, 그것이 이루어진 세상을 ‘사람다운 세상’, 그것을 이루는 도덕을 ‘사람다움’이라고 생각했다. 공자의 언어를 빌어 표현하면 ‘인(仁)’이 그에 해당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고, 그런 생각을 실현하려 하며, 그런 생각을 도덕으로 하는 사람에게는 적(敵)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인자무적(仁者無敵)”이라 한 것이다.
“노자안지, 붕우신지, 소자회지”[老者安之, 朋友信之, 少者懷之]에는 이런 뜻이 담겨 있다. 정치가의 덕목은 가치를 배분하는 것이다. 모든 이의 꿈이 이루어지도록 해 주는 것이다. ‘안회(安懷)’라는 말은 “노자안지”의 ‘안’, “소자회지”의 ‘회’를 따서 만든 것이다. 가히 목민(牧民)하는 자의 견결(堅決)한 의지와 투철한 사명감이 느껴지는 말이다. 역대 홍주 고을의 수령들은 이 뜻을 가슴에 새기며 정사를 폈다. 그 뜻을 실현하는 데 한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자임했다.
그 뜻을 가슴에 새겨 행하면 마음에 거리낌이 없어, 언제나 마음이 편하고 행동도 반듯하게 된다. 그런데 추세(趨勢)에 눈이 멀어 이를 행하지 못하니 불안하고 초초해서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찬 허언과 성명만을 구할 뿐이다.
이 ‘안회당(安懷堂)’ 뒤에는 ‘여하정(如何亭)’이란 이름의 고즈넉한 정자가 있다. 과거 홍주목사가 휴식을 취하던 곳이라 한다. 안회당에서 정사를 본 뒤 여하정 뜰을 거닐 수만 있다면 목민관으로서의 본분은 이미 행한 것이나 진배없다.
여하(如何)! 누가 나에게 묻기를, “그대는 왜 임금께서 하사하신 경사(京師) 고관(高官)을 마다하고 홍주(洪州) 같은 벽지(僻地)에서 수령으로 있으려 하는가”라 하기에, 대꾸하지 않고 웃어넘겼더니,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더라. “좌우 사방의 산세가 이리도 좋거늘 어찌 이곳에 선비[東南美玉]가 없다 하리오? 그들과 함께 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거늘...” [余方有公事, 作小樓二間. 懷伊水中央, 樹環焉泉懸. 開方塘半畝, 九日湖之湄. 一人斗以南, 捨北官何求. 環滁也皆山, 於此其無隹, 貧主東南美, 其必有所樂.]
여하정의 ‘여하(如何)’라는 말에는 이런 뜻이 담겨 있다. ‘안회(安懷)’의 정사를 펴니 고즈넉하고 무사(無事)한 것이 꼭 이백(李白)이 말하는 ‘별천지(別天地)’에 있는 것 같더라. 안회(安懷)가 구현된 홍주 고을을 인간 세상 밖에 있다는 별천지에 비유한 것이다.[別有天地非人間]
촌부향사(村夫鄕士)들은 ‘안회(安懷)’와 ‘여하(如何)’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지만, 구안지사(具眼之士)에게는 이백이 살던 벽산(碧山)만이 떠오를 뿐이다. 홍주가 왜 홍주인지, 왜 글 읽는 선비들이 출사한 뒤 이곳의 고신(告身)을 받으려 했는지, 어떤 정사를 펼쳐야 태평 세상에 되는지, 두 명소는 말없이 일러주고 있다. 그래서 그 정신을 지키고자 구한말 일제강점기에 그토록 많은 선비 처사들이 의병이 되고 독립투사가 되어 살신성인(殺身成仁) 했으리라.
그 숭고하고 거룩한 곳에 석비(石碑)가 하나 놓여 있다. ‘천주교순교…’. 홍주 고을 수령의 정사를 힐난이라도 하듯. 자신들에게는 왜 안회(安懷)의 덕을 펴지 않았느냐고 질타라도 하는 것일까? 그래서 천고낙지(天鼓落地)라 말하기 어렵다는 것일까?
오늘도 안회당과 여하정 뜰에는 비가 내린다.
問如何事栖碧山 누가 나에게 무슨 일로 碧山에 사느냐 묻기에
笑而不答心自閑 웃으면서 대답하지 않으니 마음이 저절로 편안하더라
桃花流水窅然去 복숭아꽃 떨어져 흘러가는 저 물 아득히 먼 곳에
別有天地非人間 인간 세상 아닌 별천지가 있으리라.
(李太白, 山中問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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