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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시론

<李玄崗의 泮中雜詠>유교의 ‘人治’를 다시 생각해 본다

편집부
2017.01.14·5분 읽기·조회 23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이야기됐던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그 주범과 부역자들의 끝 모를 치부가 연이어 드러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나라 걱정에 속앓이를 하는 이들의 탄식이 끊이질 않는다.

 

일찍이 공자는 “사람의 삶은 곧게 마련인데, 곧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것은 요행으로 면하는 것이다(人之生也直 罔之生也 幸而免)”라고 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치는 본래 곧은데 곧지 않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요행으로 면한 것뿐이라는 말씀이다.

 

‘국정농단’ 사건의 주범과 부역자들이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고 모르쇠로 일관하며 국회와 사법기관을 우롱하는 것을 보면 이들은 여전히 뭔가 요행을 바라는 것 같다. 하지만 이 같은 요행도 한두 번에 그칠 뿐이다. 혹여 법망을 피할 수 있다 하더라도 국민과 역사의 심판은 피할 수 없다.

 

중국 항주의 명소 서호에는 송나라 때 명장 악비의 사당과 무덤이 있다. 그리고 이 악비의 무덤 앞에는 악비를 모함하고 해친 간신들이 포승줄에 묶인 철상의 형태로 무릎을 꿇고 있다. 엄정한 역사적 심판의 현장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던진 오물을 뒤집어쓴 채 악비의 무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매국노 진회의 모습은 보는 이들의 낯을 화끈거리게 만든다. 오죽하면 침을 뱉지 말라는 안내판까지 붙여 놓았을까.

 

청나라 건륭 연간(1736~1795)에 장원급제한 항주 사람 진간천(秦澗泉)은 대 간신 진회의 후손이다. 그는 악비의 무덤을 찾아 무릎을 꿇고 있는 대 간신 진회의 부부상을 보며 치밀어 오르는 수치심을 참지 못하고 다음과 같은 글로써 참담한 심정을 전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송나라 이후부터 회(檜)라는 이름을 부끄러워했고

 

나는 지금 그 무덤 앞에서 진(秦)이라는 성에 참담해 하는구나.”

 

이 같은 상황을 예상했던 것일까. 진회 같은 대 간신도 역사에 더러운 이름을 남기지 않으려고 역사를 개찬하고 실록을 날조하려 했다. ‘문자옥’을 일으켜 자신을 칭찬하는 자는 살려두고 솔직한 붓을 휘두르는 자는 제거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것이다.

 

진회가 살았던 당시에도 법과 ‘忠과 奸’을 구별하는 시대의 상식은 있었다. 하지만 법과 상식은 여지없이 유린되었던 것이고, 이는 지금의 ‘국정농단’ 상황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이 때문에 공자는 “법으로 이끌고 형벌로 다스리면 백성들이 형벌은 면하지만 부끄러워함이 없게 된다(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고 했고 “송사를 처리하는 것은 나도 다른 사람과 같겠지만, 반드시 송사가 없게 할 것이다(聽訟 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라고 했던 것이다.

 

공자의 이 말씀은 법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법 이상을 말하는 것으로 ‘법의 존재 이유는 법 없는 사회 구현’을 위해서라는 법의 존재 정신 혹은 이상과 상통하는 것이다. 법을 만들고 운용하는 사람이 우선이라는 유교의 오래된 믿음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공자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논어』는 ‘배움(學)’에서 시작해 ‘사람을 아는 것(知人)’으로 끝난다. 혹자는 『논어』의 이 두 글자만 읽어도 『논어』를 다 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논어』 전 편의 주제는 ‘사람’이고, 바로 이것이 ‘焚書坑儒’로도 ‘批林批孔’으로도 없애지 못한 수천년 유교의 가치이고 생명이다.

 

『논어』의 ‘사람을 아는 것’은 『중용』의 ‘하늘을 아는 것(知天)’으로 이어진다. 『중용』에서 공자는 “사람을 알 것을 생각한다면 하늘의 이치를 알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이 두 가지를 이어주는 것이 바로 성실함(誠)이고, ‘남이 한 번에 능하거든 나는 백 번을 하며, 남이 열 번에 능하거든 나는 천 번을 하는 것(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이 바로 공부다.

 

朱子가 15~6세 때 읽다가 전율을 느꼈다고 회고한 이 『중용』 제20장은 유교 정치사상의 백미를 담고 있다. 공자는 哀公이 정치에 대해 묻자, “문왕과 무왕의 정사가 방책에 펼쳐져 있으니, 그러한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러한 정사가 거행되고, 그러한 사람이 없으면 정사가 종식된다”고 하면서, 정치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爲政在人)고 했다.

 

법이나 제도는 정치의 수단이지 본질은 아니며, 그 법과 제도를 만들고 운용하는 것은 사람이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 몸을 仁하게 하면 훌륭한 군주가 있고 훌륭한 신하가 있어서 정사가 거행되지 않음이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중용』 제20장에 담긴 유교 정치사상의 요지이고 人治이다.

 

혼군(昏君) 밑에 간신(奸臣)이 있고 성군(聖君) 밑에 현신(賢臣)이 있는 것이다. “정직한 사람을 기용하여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 위에 놓으면 백성이 따르고, 정직하지 못한 사람을 기용하여 정직한 사람들 위에 놓으면 백성이 따르지 않는다(擧直錯諸枉 則民服 擧枉錯諸直 則民不服)”고 한 공자의 말씀이 가슴 깊이 와 닿는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