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典校)의 진퇴에 대해 제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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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동섭 성균관 고문(진주향교 원임 전교)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나라에서 운영하는 교육기관으로 중앙에는 명칭은 다양했지만 성균관과 같은 곳, 지방에는 향교가 있었다. 교육기능을 함께 수행했던 서원은 사립이라 할 수 있다.
조선이 건국된 후에는 향교에 문묘(文廟)를 설치하여 공자를 비롯한 선성선현(先聖先賢)을 모시고 제향을 하면서 교육과 향사 등 두 가지 기능을 수행했다. 백성들의 교육을 담당한 향교는 일반 백성들의 정신적 지주로서 신성시되었고, 고을의 수령들이 부임하면 먼저 향교에서 취임 고유(告由)를 하고 집무를 수행했다.
그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전국 상당수의 시장과 군수, 시의회 및 군의회 의장, 시·도의원들이 의무가 아닌데도 향교를 찾아와 고유례를 봉행하는 경우가 많다. 근래에는 유가(儒家)에서 성장한 KBS 사장이나 세무서장, 대학총장도 스스로 찾아와 고유를 하는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향교를 관리하는 책임자(校長)는 전교(典校)인데, 전교를 선출할 때는 유림들이 직접선거를 하는 경우가 있고, 현 전교가 추천하여 원로회의에서 엄격한 심사를 거친 후 유림들의 추인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가문이나 인품, 지도력 등을 두루 살펴 성균관장의 선임장을 받는다.
향교의 전교나 장의(理事)로 임명되면 도덕적으로 엄격한 규제를 받는데, 언행이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함은 물론 조금의 하자(瑕疵)만 있어도 냉정할 정도로 주위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 예로 부모나 처(妻), 형제의 상(喪)을 당하면 즉시 그 직을 사직했는데, 이런 경우는 가혹하리만치 정확하게 적용되어 왔다. 법이나 정관으로 명시된 바도 없지만 도덕을 앞세워 근신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인 듯하다.
옛날에는 상주(喪主)가 되면 부모를 잘 모시지 못해 돌아가시게 한 죄인이라 하여 스스로 비단옷을 입지 않고 삼베옷을 입으며 시묘살이를 했다. 부득이 외출할 일이 생기면 죄인이 하늘과 남 보기 부끄럽다고 삿갓을 쓰고 얼굴을 가리고 다녔으니 효심이야 갸륵하지만 어찌 죄인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근래에는 더러 상신(喪身)이면서도 사직을 하지 않고 그대로 직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었다. ‘2,500년이 지난 유교, 공자의 사상이 변화하지 않고 언제까지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가’라는 여론도 있고, ‘시대에 따라 현실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는 견해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지금 시대에는 그 어떤 고위공직자든 상신(喪身)이라고 사직하는 경우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 유림단체에서도 성균관 차원에서 냉정히 판단하고 검토하여 사직보다는 적당한 기간 근신하는 것으로 조정하여 시행하면 어떨까 조심스럽게 건의해 본다.
지금까지는 유림이라는 사실만으로, 불합리한 줄 알면서도 유독 유림들만이 도덕을 앞세워 고집해 왔던 관습을 냉정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사실 관혼상제(冠婚喪祭) 모두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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