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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시론

특별기고 - 바른 예절[正禮]과 가가례(家家禮)의 오류

편집부
2017.05.12·5분 읽기·조회 66

황동섭 / 성균관유도회 예천지부 회장

 

우리가 조상에 대한 봉제사(奉祭祀)를 정성들여 지내면서 제례(祭禮)의 뜻을 제대로 알고 지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예기(禮記)』의 단궁편(檀弓篇)을 보면 “대저 예절이란 남에게 전할 수가 있고 남이 본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울부짖음과 몸부림치는 일에도 모두 절도가 있는 것이다(夫禮 爲可傳也 爲可繼也 故哭踊有節)”라고 하였다.

『중용(中庸)』에도 “예의의 근본은 이치에서 나오고 이치의 근본은 하늘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하늘이 변하지 않으면 예 또한 변하지 않는다(禮之大本 出於理 理之大本 出於天 天不變 禮亦不變)”라고 하였다.

또 “예절이란 이치이니 사리를 통합하여 묶은 법칙이다. 이치는 도리라 이르니 예절이란 말은 만인으로 하여금 함께 섬기게 하는 도리이다. 그러므로 예절은 나라의 법제도이다(禮者 理也 事理統結之法則也 理謂道理 言禮者 使萬事合於道理也 故禮者 國家之法制)”라고 하였다.

바른 예절은 음양상생(陰陽相生)에 맞춘 진설원칙에 따라 소목(昭穆)으로 천산(天産)은 동물인 어(魚) 육(肉) 치(雉:궝) 등의 회(鱠:膾)와 구이[炙]로 양수(陽羞, 양의 제물)이니 양의 방향인 동쪽에 차리고 지산(地産)은 식물인 채(菜) 곡(穀) 등의 숙채(熟菜)와 지짐이[臇]로 음수(陰羞, 음의 제물)이니 음의 방향인 서쪽에 차려야 한다. 이렇게 제상의 전후좌우가 균형이 되게 진설(進䬦)함은 역경(易經)의 중정사상(中正思想)과 중용(中庸)의 화(和, 화평)의 정신에 의거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올곧은 선비의 바른 자세로 숭조목종(崇祖睦宗)하며 부귀영화(富貴榮華)로 다복한 가정을 이루어 건강하게 오래 복록을 누리고 잘 살기를 바라는 조상들의 교훈이 담겨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가가례는 집집마다의 예절이 틀린다는 것인데 집집마다 예절이 틀린다는 것은 예절이 없다는 말이 된다. 가가례로 인해 가정의례의 기본원칙이 흐트러졌으며 오늘날 예서(禮書)도 구구각각이어서 더욱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런 것들이 가가례의 오류라고 생각된다.

가가례가 아직까지 고쳐지지 않은 까닭은 『논어(論語)』 학이편(學而篇)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3년간은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행하시던 것을 그대로 두고 고치지 않아야 효자라 할 수가 있다(三年無改於父之道可謂孝矣也)”라는 구절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3년 동안 고치지 말라는 것은 마땅히 고쳐야 할 입장에 있으나 아직 고치지 않아도 될 수 있는 것을 말한 것이다(三年無改亦謂在所當改而可以未改者耳)”라고 하였다. 이 말은 섣불리 하여 불효가 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라는 경구(警句)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만약에 도리가 아니라면 어찌 3년을 기다릴 수 있겠는가(如其非道可待三年)”라고 한 것을 보면 “도리가 아닌 반드시 고쳐야 할 것은 3년 동안 기다리지 말고 고치라는 것이다.” 이제라도 후세에 부끄러운 조상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가가례를 전범(典範)이 되는 바른 예절로 올바르게 고쳐야 할 것이다.

일찍이 우리 조상들은 동방예의지국이란 명성을 세계만방에 떨쳐 예의바른 국민이라 자부하여 왔는데 지금은 국민 모두가 실천하고 후세에도 전할 수 있는 전범이 되는 예절 하나 없다는 것은 심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가가례는 극심한 사색당쟁과 예송의 갈등으로 파생된 것이지만 율곡(栗谷) 이이(李珥) 선생께서 『격몽요결(擊蒙要訣)』의 제의편(祭儀篇)에서 말씀하시기를 “지금의 사람들은 예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 제사를 지내는 예절이 집집마다 같지 않으니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다. 만약에 예절을 하나로 통일하지 않으면 마침내는 문란하고 질서가 없어서 오랑캐의 풍속으로 되돌아갈 것이다(今俗人 多不識禮 其行祭之儀 家家不同 可笑也 若不一裁之以禮 則終不免素難無序 歸於夷虜之風矣)”라고 한탄을 하시면서 통일된 전범을 만들 것을 희망하셨다.

천리절문(天理節文)과 인사의칙(人事儀則)에도 어긋나는 가가례를 오래 전부터 선조들이 지켜 오신 예절이라는 이유만으로 제례원칙에도 맞지 않는 것을 우직하고 고집스럽게 그대로 답습해서는 안 된다. 후세에 부끄러운 조상이 되지 않으려면 남에게 전할 수가 없고 남이 본받고자 하지 않는 비례(非禮)를 이론과 사리에 합당하고 남에게 전할 수가 있고 남이 본받을 수 있는 전범이 되는 바른 예절로 고쳐서 다 같이 실행하기를 제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