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문묘 수호는 곧 국격이다

방동민 / 석전대제 이수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다.
성균관에는 충과 효를 상징하는 정신국이 살던 수복청이 있어 그의 후손들이 대대손손 인조 임금의 왕명에 따라 성균관에 거주하면서 600년 전통의 문묘를 지켜왔다.
그런데 숭례문이 불탄 해에 갑자기 문화재를 지켜야 한다는 명분하에 충효의 표상(表象)이던 정신국의 후손들을 성균관에서 추방했다.
병자호란(1636년) 당시 수복 정신국은 공자를 비롯한 4성(聖)과 10철(哲)의 위판을 짊어지고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였다. 난(亂)이 끝나고 인조 임금께서 정신국의 공을 치하하고 소원을 물었다. 정신국은 면천(免賤)과 포상(褒賞)을 마다하고 대대손손 성균관에 봉직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한다. 후손 또한 조상의 뜻을 받들어 숭례문이 불타기 전까지 성균관에서 살고 있었다.
국가와 사문(斯文)을 위해 헌신한 정신국의 거사와 행동은 충(忠)에 다름 아니며, 선조(先祖)의 명에 따라 대대손손 성균관에 봉직한 후손들의 삶은 조상의 뜻을 어기지 않은 효(孝)의 상징이다. 이 충과 효는 시대를 초월하여 인류가 지향해야 할 지고지순한 가치이다.
중국은 5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육필거(六必居)라는 장아찌 가계를 전통이라고 자랑한다. 이 가게는 중일(中日) 수교 때, 다나까 수상이 주은래 수상에게 ‘육필거(六必居)는 잘 있냐?’고 묻는 바람에 부랴부랴 홍위병들이 없앤 가게를 다시 되살렸다는 이야기로도 유명하다.
정신국 일가가 표방한 충과 효는 중국의 장아찌 가게와는 비교도 안 될 우리 민족만의 자랑이다.
중국과 대만과 일본과 베트남, 그 어느 나라도 이제는 유교국가라고 불리지 않는다. 그러나 전 세계가 우리나라를 유교국가라고 말하고 있다. 그 진정한 이유는 성균관과 234개의 향교, 수백 개의 서원(書院)과 사우(祠宇)에서 초하루와 보름에 끊이지 않고 향불을 피운 우리 유림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는 현재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정체성과 전통을 도외시한 채, 애매모호한 불확실성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동방예의지국이니 효니 충이니 하는 말들은 이젠 사전에서나 볼 법한 단어로 전락하고 말았다. 전통적 가치인 도덕은 내팽겨진 지 오래고 무슨 일만 있으면 법원으로 달려가는 세상에 살고 있다.
언제까지 영국 왕실의 수문교대식을 흉내 내어 꼭두각시처럼 경복궁 앞에서 수문장 교대식이나 하면서 전통을 계승한다고 앵무새처럼 떠들어대기만 할 것인가?
맹자께서는 “무형은 대체이며 유형은 소체다(以無形者爲大體 有形者爲小體)”라고 하셨고, 다산 정약용 선생은 “무형(無形)으로 유형(有形)을 컨트롤한다.(以無形御有形)”고 하셨다.
새 정부에 바란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유형의 성균관 건물을 보호하기 위하여 무형의 정신적 가치인 정신국의 후손과 학생들을 쫒아낸 우(愚)를 계속 범(犯)하지 않기 바란다.
400여 년 역사의 산 증인인 정신국의 후손이 외국인과 젊은 청소년들에게 성균관의 역사와 정신을 설명하는 모습을 새 정부에서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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