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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시론

<특별기고> 유교의 현대화만이 대중화의 길이다

안병주 기자
2023.01.09·10분 읽기·조회 101

 

 

안병주/성균관유도회 홍주지부 회장

 

 


 

유교(儒敎)는 변화해야 한다. 지금까지 유교는 대중화와 괴리감이 크다는 비판을 받아오고 있다. 이것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교는 역(易)이라는 근본사상에 뿌리를 둔 철학이다. 그 중에서 변역이란 변하고 바뀐다는 뜻으로 삼라만상 끊임없이 변한다는 말이다. 유학(儒學)은 공자시대부터 성리학(性理學), 양명학(陽明學), 실학(實學)으로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변해 왔다.

 

그런데도 대중에게 유교는 고리타분한 학문이라고 인식되고있다. 현대사회에 와서는 유교가 변화하지 못하고 예전의 관습을 지키는 것만 강요하는데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도에 비해 2500여 년 전 성립한 유교의 변화는 더뎌 4차 산업정보혁명시대에 맞는 새로운 윤리와 세계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현재 과학과 생태적 가치와 윤리 등의 방식으로 새로운 정신문화와 호응하려는 노력들이 나타나는 것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하지만 영원불멸의 진리가 아니라 2500년 전 당대의 당면한 과제들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했던 공자(孔子)의 언행인 시중(時中)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1. 예(禮)는 시대의 변화를 따라야 한다

 

유교는 시중(時中)을 중시한다. 과거의 전통을 받아 계승해 나가되 시대의 변화를 알아야 한다. 또 새로운 시대를 맞아 그 시대의 유교적 가치를 새롭게 재정립해야 한다. 그래야 지속적으로 유지 발전할 수 있다.

 

시대에 맞게 예를 새롭게 만들어나가는 것이 본래 유교의 근본정신이고 보면 옛것에 얽매이거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그것은 유교 문화의 진정한 의미를 계승하지 못하는 것이다. 옛날의 예를 법도로 삼되 오늘의 우리 시대에 맞게 변통할 줄 알고 새로운 현대의 예(禮) 문화를 창조해 나가되 법도를 잃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유교의 시중의 도리를 시대와 상황에 맞게 작용하며 그 의미를 찾는 일이 될 것이다.

 

우리의 전통의례는 오늘날 너무나 번잡하고 형식적이어서 우리 시대에 적합하지 않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전통사회의 의례는 오랜 시간 동안 변화를 거부하고 고집하면서 번거로운 절차에 사로잡혀 있다. 이러한 속사정에는 의례의 정신을 상실한 형식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법절차의 형식적 수행이 관습화 되면 예법이 본래 추구하는 공경의 정신은 사라지고 형식의 절차만 남아 번문욕례(繁文縟禮 : 번거롭고 까다로운 규칙과 예절)에 빠지는 폐단이 우리의 사회적 병폐가 되어 왔다.

 

2. 유교 경전(經典)의 전파와 의례(儀禮)에 있어 한글로 바꿔져야 한다

 

우리의 유교문화가 한자(漢字) 문헌으로 전해지고 있기 때문에 한글세대와의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유산의 계승이 실질적으로 어렵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유교 지식인들 사이에서 한문 세대는 한글의 언어적 감각에 매우 무디고, 반면에 한글 교육을 받은 세대는 한문에 대한 이해에 심한 장애를 느낀다고 한다.

 

현실적으로 유교를 계승하여 이끌어갈 젊은 유림(儒林) 층이 향교입문(鄕敎入門)을 꺼려하는 것이 한자에 대하여 취약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유교문화가 한자 문헌으로 전해지고 있기 때문에 한글 세대와의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유산의 계승이 실질적으로 어렵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한국유학자들의 문집을 중심으로 유교 고전의 한글번역이 상당수 이루어져 연구자와 독서인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지만 아직도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 문제가 있다. 유교경전에 있어 한글화하는데 있어서는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교양서적처럼 만들어야 한다.

 

또한 의례(儀禮)의 한글화가 이루어져야 하겠다.

 

의례 중 제향(祭享)의 홀기(笏記)에 있어 한문만 고집해 한글세대에는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함으로써 제향참여를 꺼려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시대와 사회적 여건에 맞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민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의례의 한글화가 되어야 한다. 의례의 한글화는 단순히 한글로 된 의례문을 번역하는 사업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사상과 신앙을 현대인의 의식에 맞춰 쉽게 재창조하는 사업이다. 또한 한글화만으로 불충분하다 모든 언어를 일상적으로 바꾸어야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현대 해석에 맞는 한글로 정리한다면 오랜 역사와 문화적 전통을 담고 있는 유교경전과 의례의 한글화는 유교의 현대화에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3. 의례(儀禮)의 간소화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 안에서는 전통적 요소들이 현대화와 충돌하면서 오는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다. 유교적 전통문화가 지닌 진정한 가치를 살려 내는 창조적 작업을 위해서는 먼저 전통에 대한 철저한 성찰과 비판이 선행되어야 하며, 과감한 변혁이 추구되어야 할 것이다. 이 변혁의 건강한 방향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 시대의 세계와 미래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 있어야 하며, 그것은 단지 유교만을 위한 과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지닌 전통과 미래의 종합이라는 공통 과제이다.

 

우리 시대에서 문화적 재창조를 위한 과제는 바로 안주의 편안함이 아니라 개혁에 따르는 진통을 감내 하는 용기와 신념을 기반을 두어야 한다.

 

유교 의례의 경우도 「주자가례」가 시대에 따라 변천해 왔는 만큼 의례정신을 시대현실에 적합하게 재 규정하는 것이 당면 과제이다. 1973년 「가정의례준칙」이 제정되었을 때 유교조직이 보수적 거부 의지만 제시하였을 뿐 스스로 자기 변혁을 할 수 없었던 것은 결국 유교의례를 형식적 껍질만 남기고 의례의 근본정신을 상실하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유교전통에서 의례가 도덕규범과 사회질서를 지탱해 주는 역할을 해 왔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우리의 전통문화가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자랑스러운 문화의식에서 본다면 의례의 현대적 재창조가 우리 시대의 중요한 과제가 이닐 수 없다.

 

예(禮)는 번잡하면 어지워지고, 어지러워지면 공경하지 않으며, 예의 본의가 없어지므로 예의에 있어서는 근본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에의 그릇은 형식이고 격식이지만 그 그릇에 담긴 내용물은 정신이고 마음이다. 큰 예법일수록 마음을 더 중시했다. 형식은 간결하고 그득하게 해야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걸 지키기 위해 격식이 생겨났다. 세월이 흐르면서 어느 새 주객이 전도되었다. 마음과 정신은 온데간데 없고 형식과 제도가 주인이 되었다. 어느덧 사람들은 그곳을 향해 절을 하고 있다.

 

현대인들의 바쁜 삶에서 의례만으로 일괄되는 제례(祭禮)는 그만큼 간략해야 한다. 그냥 시간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줄인 만큼 이해하기 쉬운 내용으로 채워져야 한다. 일상 의례(儀禮)는 특별한 훈련이 없어도 할 수 있을 민큼 쉬워야 하며, 유교를 믿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도록 쉽게 바꾸어야 한다.

 

4. 유교의 교화(敎化) 기능이 매우 비현실적이다

 

유교조직의 교화기능으로서 충효교실이나 서예교실을 열어 매우 제한적인 교육활동을 하고 있어 실질적 교화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유교 교단이 끊임없이 도덕의 진흥(인성교육)을 공언하면서 이를 실천하는데 있어서는 아주 미약한 실정이다. 이는 유교 조직의 성격이 이미 개혁의지를 상실하고 전통 제례만을 고수하는데 급급한 실정으로 시대변화의 추이에 멀어지고 대중화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인성교육도 기존의 유림만이 참여하고 있으며, 일반인의 참여가 극히 저조한 실정이다. 기독교나 천주교, 불교 등에서는 교주가 상당히 교리를 알고 있어 교리 전파에 적극적이나 현재 향교에는 교주격인 전교가 유교의 교리를 대부분 일지 못하고 제례에만 주력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다른 종교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모임 행사를 열어 경전 등을 강의하고 있으나 향교는 대부분 한 달에 한 번 월례회의를 개최하는데 그치고, 그나마 유교 교리 및 인성교육이 전무한 상태이다.

 

지금의 성균관과 향교에는 교육의 기능이 미진하며, 단지 문묘의례의 봉행만을 수행할 뿐이다. 현재 성균관과 향교, 성균관유도회총본부, 재단법인 성균관, 향교재단 모두 유교 교직자로서의 기준이 없으며, 전문 교직자 양성기관도 미진한 사태이다. 단지 자격요건으로 다른 종교 단체의 가입 여부만을 따질 뿐인데, 이런 점에서 보면 유교 교단에서 유교에 대한 종교적 신념을 가진 유교 지식인이라고 하는 전통적 의미의 유림이란 찾아보기 힘들며 지금은 명목만 남아 있을 뿐이다. 특히 전통적 규범 선양을 위한 강연회나 강습만 가지고는 현대화의 목적을 이룰 수 없으며 전통적 규범의 고수를 위해 감성적 측면에서만 호소해서는 효과를 거둘 수 없다.

 

유교의 핵심 교리는 극기복례(克己復禮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간다)이다.

 

예을 실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자신을 낮추는 일이다. 자기를 낮추기 위해서는 자기가 높아지려는 욕망, 자기만 이익을 얻으려는 욕망, 먼저 좋은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욕망을 이겨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예의 근본은 겸양(謙讓)에 있다. 겸양은 겸손하고 사양한다는 의미이다. 겸양의 미덕은 인(仁 : 어진 마음)에서 나온다. 인은 공자, 맹자의 가르침의 핵심이다. 인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씨이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자기를 이기기 어렵고 예를 실천할 수 없다.

 

작금의 유림사태를 보면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려는 예의가 없어 벌어진다고 본다.

 

유교의 교화기능인 예의(禮義)가 부족하여 발생된다고 본다. 예의는 인간관계에서 타인의 인격을 높여주면서 동시에 시회의 질서를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예의는 상대방을 기쁘게 하는 동시에 자신도 즐거워진다. 겸손한 마음, 친절한 태도, 양보하는 미덕과 같은 예의의 교화기능이 한층 강화되어 유림을 화합하는 밝은 사회로 이끌어 가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