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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시론

<특별기고> 공문십철(孔門十哲)과 공묘십철(孔廟十哲) 및 자명상보설(字名相補說)

오흥녕
2023.08.01·11분 읽기·조회 119

 

김윤수(성균관유도회총본부 부회장, 일두기념사업회 이사장, 지리산문학관장)

 


 

1. 공문십철(孔門十哲)

 

『논어』 「선진」에 공자께서 “진채의 사이에서 나를 따르던 자들은 다 권문에 들지 못했구나” 하시고 사과(四科) 십철(十哲)을 열거했는데 그 10인은 다음과 같다.

 

덕행에 안연, 민자건, 염백우, 중궁이요

 

언어에 재아, 자공이요

 

정사에 염유, 계로요

 

문학에 자유, 자하이다.

 


 

2. 공묘십철(孔廟十哲)

 

문묘에는 공자에 사성(四聖)이 배향되고 십철이 전내(殿內) 종향되었다. 문묘십철은 공문십철과 다르다. 이른바 공묘십철이다. 공묘십철은 공문십철과 두 가지가 다르다.

 

공묘십철은 민자건, 염백우, 중궁, 재아, 자공, 염유, 계로, 자유, 자하, 자장이다.

 

공묘십철은 공문십철과 비교하여 공문십철 제1인 안연이 사성에 승격되어 빠지고, 제2인 민자건이 제1인이 되며, 맨끝에 새로 자장이 승격되어 편입되었다. 공문십철은 이름 대신 성과 자로 불리고, 공묘십철은 봉호와 성명으로 불린다.

 

<국조오례통편 권2 길례 문선왕묘> 전내종향

 

동벽 서향

 

비공민손 제일(費公閔損第一)·설공염옹 제삼(薛公冉雍第三)·여공단목사 제오(黎公端木賜第五)·위공중유 제칠(衛公仲由第七)·위공복상 제구(魏公卜商第九)

 

서벽 동향

 

운공염경 제이(鄆公冉耕第二)·제공재여 제사(齊公宰予第四)·서공염구 제륙(徐公冉求第六)·오공언언 제팔(吳公言偃第八)·영천후전손사 제십(穎川侯顓孫師第十)

 

동무(東廡)와 서무(西廡)에 종향된 이는 공자의 72제자와 중국 역대 유현과 동국 18현이다.

 

고려시대 문묘향사도는 조선시대와 많이 다르다.

 

<고려사 권62 길례중사 문선왕묘>에는 공자에 안회만이 배향되고, 동벽에 민손·염경·염옹·재여·증삼, 서벽에 단목사·염구·중유·언언·복상·맹가, 남벽에 문창후 최치원·홍유후 설총이 전내종향되었다.

 

안자, 증자, 맹자에 자사자가 합류하여 사성으로 승격되어 공자에 배향되고, 공묘십철에 자장이 승격하여 편입되어 공자에 전내종향된 것이 조선시대 문묘향사도이다.

 

그런데 중국은 공묘십철에 유약(有若-有子)과 주희(朱熹-朱子)를 증보하여 십이철(十二哲)을 배향하고 있다. 송조 6현을 전내종향하는 한국이 성리학자의 나라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조선 숙종 40년(갑오년, 1714) 8월에 송나라 조정의 여섯 현인(賢人)-송조 6현을 문묘(文廟) 대성전(大聖殿) 전내(殿內)에 올려 배향하였다. <국조보감 제55권>

 

도국공(道國公) 주돈이(周敦頤)는 위공(魏公) 복상(卜商) 아래에 봉안하였고, 예국공(豫國公) 정호(程顥)는 영천후(穎川侯) 전손사(顓孫師) 아래에 봉안하였고, 낙국공(洛國公) 정이(程頤)는 도국공 주돈이 아래에 봉안하였고, 신안백(新安伯) 소옹(邵雍)은 예국공 정호 아래에 봉안하였고, 미백(郿伯) 장재(張載)는 낙국공 정이 아래에 봉안하였고, 휘국공(徽國公) 주희(朱熹)는 신안백 소옹 아래에 봉안하였다.

 

이 일은 임술년(1682, 숙종8)에 이미 명이 내렸던 것인데, 그럭저럭 미루어 오다가 예조판서 민진후(閔鎭厚)의 말을 인하여 대신에게 논의하여 행하게 된 것이다.

 

광복 후에 성균관의 문묘는 심산 김창숙 선생의 지도하에 성균관의 대성전에 성현을 집체제향하고 동무, 서무의 제향은 폐지하였다. 현재 오성, 공문 10철-실제로는 공묘십철-, 송조 6현, 동국 18현 등 모두 39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성균관 대성전 문묘에 배향된 공문십철은 『논어』에 나오는 공문십철과는 약간 차이가 있는 공묘십철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추모와 제향에 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부연 설명하였다.

 


 

3. 자명상보설(字名相補說)

 

○ 공자는 이름이 구(丘)이고 자가 중니(仲尼)이다. 중니의 중(仲)은 둘째아들이란 뜻이고, 니(尼)는 이름과 합하여 니구라면 하면 니구산이 된다. 공자 모친이 니구산에 기도하여 공자를 잉태하고 낳았기에 이를 기념하여 한 자씩 이름과 자에 사용하여 의미를 완결한 것이다.

 

공자의 맏아들도 유사하다. 이름은 리(鯉), 자는 백어(伯魚)이다. 공리가 탄생했을 때 노 소공이 잉어 한 마리를 축하 선물로 보냈기에 이를 기념하여 이름은 리, 자는 백어로 지었다. 합하면 리어가 된다.

 

공구, 중니 및 공리, 백어처럼 이름과 자는 서로 보충하는 역할을 한다. 이를 자명상보(字名相補)라고 하고, 그런 주장을 자명상보설(字名相補說)이라고 한다. 어떠한 사람의 이름을 보고 그의 자를 추측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논어』 첫 장의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說乎)아’를 모르는 유림은 별로 없을 것이다.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을 모르는 유림도 역시 없을 것이다. 심유적불(心儒跡佛)이라고 매월당의 마음은 유자(儒者)이고, 자취는 부처라는 뜻이다. 김시습의 자는 열경(悅卿)이다. 기뻐할 열자, 때때로 익히면 기쁘다고 한 것이다.

 

『논어』 「이인」의 ‘오도(吾道)는 일이관지(一以貫之)니라’는 공자 말씀이 있는데, 조선 숙종 때 판서를 지낸 문신학자로서 울진현감일 때 매월당을 위하여 동봉서원-귀암서원(龜巖書院)을 창건한 서파(西坡) 오도일(吳道一, 1645-1703)은 자가 관지(貫之)다. 일이관지의 관지다. 해주오씨니 ‘나의 도, 오도’하곤 다르지만 소리로는 같다. 도는 하나로 관철해야 하는 것이다.

 

송나라 재상에 범조우(范祖禹, 1041-1098)가 있는데, 우임금을 조술(祖述)한다는 뜻인가 짐작할 것이다. 그의 자는 순부(淳夫)이니 이름과 연결이 안 된다. 그의 모친이 후한 광무제 개국공신인 명장 등우(鄧禹, 2-58)가 침실에 들어오는 꿈을 꾸고 임신하여 낳아서 등우라고 한 것이니 우임금이 아닌 등우의 고사에서 취하여 자를 지은 것임을 추측할 수 있다. 『후한서』 「등우전」에 ‘우내문명(禹內文明) 독행순비(篤行淳備)’라는 구절에서 따와 자를 순부라고 지은 것이다. 이를 고증한 이가 함양목민관 안음현감 구당(久堂) 박장원(朴長遠, 1612-1671)이다. 『구당선생집(久堂先生集)』 권19 「차록(箚錄)」

 

구당 박장원은 동방오현 일두 정여창이 안음현감일 때 중건한 광풍루의 기문을 지었고, 안음 유생 신경직(愼景稷)·성경창(成慶昌) 등이 자기들 조상인 요수 신권(愼權)· 석곡 성팽년(成彭年)을 위하여 향교 가까운 곳에 사우(祠宇)-구연서원(龜淵書院)-를 건립했는데, 현감 박장원(朴長遠)이 온 고을의 공론에 따라 그 사우를 철거하고, 그 재목(材木)으로 제월당(霽月堂, 선현 정여창(鄭汝昌)이 창건)을 옛터에 옮겨 지었었다. 그런데 신경직 등이, 박장원이 체임되어 돌아간 때를 틈타서 다시 제월당을 부수어 철거했으므로 경상감사가 신경직 등을 가두고 그 사실을 보고하니, 곧 그 죄를 다스릴 것을 명하였다.(『인조실록』 46권, 인조 23년(1645) 1월 20일)

 

이제 공문십철의 자명상보설을 탐색해보기로 한다.

 

‘덕행(德行)은 안연(顔淵)·민자건(閔子騫)·염백우(冉伯牛)·중궁(仲弓)이요, 언어(言語)는 재아(宰我)·자공(子貢)이요, 정사(政事)는 염유(冉有)·계로(季路)요, 문학(文學)은 자유(子游)·자하(子夏)니라’

 

안연(顏回)-자(字) 자연(子淵)

 

민손(閔損)-자(字) 자건(子騫)

 

염경(冉耕)-자(字) 백우(伯牛)

 

염옹(冉雍)-자(字) 중궁(仲弓)

 

재여(宰予)-자(字) 자아(子我)

 

단목사(端木賜)-자(字) 자공(子貢)

 

염구(冉求)-자(字) 자유(子有)

 

중유(仲由)-자(字) 자로(子路)

 

언언(言偃)-자(字) 자유(子遊)

 

복상(卜商)-자(字) 자하(子夏)

 

기타 2철

 

증삼(曾參)-자(字) 자여(子輿)

 

전손사(顓孫師)-자(字) 자장(子張)

 

안회와 증삼은 석명어이다. 회는 물돌이로 읽어야 한다는 석명이고, 삼은 수레로 읽어야 한다는 석명이다.

 

민손과 재여는 동의어이다. 민손의 자 자건은 둘 다 손해란 뜻이니 ‘손지우손(損之又損)하여 이지어무위(以至於無爲)’의 뜻이다.

 

 

재여의 여와 자 자아의 아는 다 나, 자기란 뜻이다.

 

언언 자유와 복상 자하는 유의어이다.

 

언언의 뒤 언은 쉰다는 뜻이고, 유는 논다는 뜻이니 유의어이다.

 

복상의 상은 장사 상업의 뜻이 아니고, 자하의 하는 여름 뜻이 아니다. 둘 다 나라 이름으로 하나라, 상나라이니 유의어이다. 하은주, 하상주 삼대 성군의 정치를 보좌하라고 지은 뜻일 것이다.

 

 

단목사 자공은 반의어이다. 하사하고 조공하는 것이다, 예물은 주고 받아야 하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주거나 받기만 해선 안 된다는 뜻일 것이다.

 

중유 자로와 전손사 자장은 목적어이다. 길을 다녀야 하고 군대를 벌려야 한다는 뜻이니 목적을 이루기 위한 이름과 자의 관계이다.

 

염경 백우와 염옹 중궁은 도구어이다. 밭갈이는 소로 한다는 뜻이고, 옹은 화(和)이니 평화의 뜻이고 궁은 활이니 군비이다. 평화를 외치려면 군비를 확보해야지, 빈손으로 평화를 외친들 침략자가 들어줄까. 하루아침에 점령당하여 학살과 약탈의 생지옥에 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평화를 갈구하지만 활을 준비하라는 뜻이다.

 

염구 자유는 인과어이다. 구하라, 그리하면 얻을 것이라는 인과가 성립되는 이름과 자이다.

 

이름과 자를 통해서 고대사를 이해할 수도 있는 것이다.

 

○ 어떤 이가 말하기를 “소로 밭을 가는 것은 후세에 와서 한 일이다” 하였는데, 김황강(金黃岡 김계휘)이 말하기를, “염경(冉耕)의 자가 백우(伯牛)인 것으로 보면 상고 시대에도 역시 소로 밭을 갈았다” 하니, 세상에서들 모두 명언(名言)이라고 하였다. <대동야승 기옹만필(畸翁漫筆) 정홍명(鄭弘溟)>

 

이름과 자의 자명상보설을 바탕으로 명판결을 내린 함양목민관 안음현감 관아재(觀我齋) 조영석(趙榮祏, 1686-1761)의 고사를 소개하며 마칠까 한다. 관아재도 안음현감 일두 정여창의 광풍루와 제월당을 중수하고 기문을 지었다.

 

먼저 맹자의 말씀을 이해해야 한다. 맹자는 ‘궁즉독선기신(窮則獨善其身)하고 달즉겸선천하(達則兼善天下)니라’ 하였다.

 

안의에 오씨, 이씨 양반이 살았는데, 내외 오촌 숙질간이었다. 이씨가 오씨의 사위가 되었는데 처남이 어린 고아이므로 이씨가 재산 관리를 맡았다. 그러나 문서를 위조하여 전답을 팔아먹었다. 이씨가 제출한 문서에는 전답의 주인은 오달겸으로, 겸자가 겸손할 겸자였고 그런 서명이었다. 화회기에는 오달겸이 겸할 겸자이고 서명도 동일하였다. 관아재가 판결하였다.

 

“겸손할 겸자는 달(達)자와는 연결되지 않는다. 겸할 겸자가 맞으니 곧 달즉겸선천하의 겸자이다. 이씨가 제출한 문서는 위조가 분명하다” 하니 승복하였다.

 

그 뒤 들으니 오달겸의 자는 선보(善甫)라고 하였다. 고을에서 명판결이라고 칭찬하였다. 작은 벼슬이라도 배움이 없어선 안 된다고 하겠다”(『관아재고(觀我齋稿)』 권3 「만록(漫錄)」)

 

이 배움에는 자명상보설도 한몫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