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응도(凝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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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주 연산향교 장의
천지(天地)는 덕(德)의 주체이다. 인간은 천지를 벗어나서 살 수 없다. 우리 유학은 인간은 하늘로부터 덕을 성(性)으로 받아 태어났으니 덕의 사회를 완성하는 주재자로 자임함으로써 천지와 인간이 삼위일체(三位一體)의 동위(同位)개념이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인간의 공존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것은 평화안녕 질서이다. 덕의 가치로 동참할 때 안녕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 집단의식이 덕을 지향할 때 그 완성은 복지사회로 귀결되며, 의식문화가 이 경지에 이르면 인간이 천지공덕(天地公德)에 참여하여 지위를 천지와 같이한다고 하니 유학이여, 사람을 위대하게 하는 도다.
유학정신을 요약한 결정이 『대학』·『중용』 두 권의 책에 있다.
『대학』은 덕본주의(德本主義)와 자본주의를 비교하여 설명하였다. 덕본주의를 이념하고 수신제가(修身齊家)로 국가를 경영하여야 평천하(平天下)가 된다고 한다. 자본주의는 경쟁사회를 부추기고 소비지향으로 팽창하다가 재앙을 초래하여 방향을 잃게 된다는 내용으로 끝을 맺는다.
『중용』도 덕을 바탕한 도를 요체로 삼았다(부지덕 지도불응(不至德 至道不凝)). 덕은 인성의 실체이니 국민가치관이 덕을 구현하도록 제시하고, 집단의식이 덕을 지향해서 질서로 응결되는 현상이 응도(凝道)이니 응도를 잘 관리하라는 뜻으로 맺음한다. 덕의 핵심이 오륜(五倫)이기 때문에 오직 의를 위주하고, 도는 예를 수반하니 예의를 문화로 표출하는 것이다.
덕을 주체하고 도를 통해서 윤리문화를 밝히는 뜻이니 핵심명사를 명륜(明道 明德)이라 한다. 덕을 지향한 응결된 사조(도)를 국민이 이탈하지 않도록 정부는 관리하고 국민은 그 기조에 동참하니 그 동참이 곧 정부의 관리역량이 혹 느슨하지 않도록 견제하는 눈치가 된다. 이를 위해 제도한 것이 교육이다. 교육행정과 국민의 인식과 동참의 향유가 상호균형을 유지하여 흐르는 응도질서가 미풍양속으로 거듭되니 인간의 덕이 천지와 동위한다는 설명이다.
충청남도 논산시에는 돈암서원(遯巖書院)이 있다. 조선시대 유학의 대부(大父) 중 한 분인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고 전한다.
서원 내에는 응도당(凝道堂)이 있다. 응도의 뜻은 위에서 밝혔고, 여기서 설명하려는 것은 응도당 기둥에 걸려있는 8개 주련(柱攣)의 내용이다.
아득한 천지 숙여보고 올려봐도 끝이 없는데-茫茫堪輿 俯仰無垠
사람은 그 사이에서 묘연하게 몸 하나로 있네-人於其間 渺然有身
이 몸 작아서 태창 안에 좁쌀 꼴이로되-是身之微 太倉粢米
(천지에) 동참하여 삼재가 되니 오직 마음 쓰임에 있을 뿐이다-參爲三才 曰惟心爾
고대로부터 오늘날까지 누군들 이 마음 없었으랴만-往古來今 孰無此心
욕망에 이끌려 부림을 당하니 이에 짐승같은 신세로다-心爲形役 乃獸乃禽
오로지 이목구비 수족동정을-惟口耳目 手足動靜
어떻게 쓸지 처지와 선택 순간 그것만이 고민이다-投間抵隙 爲厥心病
천지우주를 설정해놓고 그 삼라만상들 중에 인간을 심덕(心德)의 주재자로 등재시켰다. 질량의 부피로야 보잘것 없지만 마음으로 덕을 따르니 천지공덕에 동참한다. 태고로부터 누구나 이 마음 가졌건만 물욕에 빠져서 허우적대니 한낱 날개짓 짐승, 기는 짐승 신세를 못 면한 경우를 지적했다. 사회라는 공존체의 주역으로써 공존의 자양분이 되는 덕의 주재자로써 마음먹기에 따라 응도에 동참하거나 이탈하거나 하는데 동참을 간구하는 고민이 결국 내게 있는 이목구비와 사지를 다루는 데 있음을 나타냈다. 처지와 때에 따라 응도에 이탈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주련은 학도들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당호(堂號)와 주련의 뜻으로 보건대 가르치고 배움이 하나의 뜻에 여합부절(如合符節)함에 탄성이 나온다. 옆에는 양성당(養性堂)이 있다. 양성당 주련에는 양성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다. 선조들의 배우고 수양하는 면모가 눈에 선현하다.
경제(經國濟民)라는 말은 나라를 경영하여 국민생활을 안정되게 한다는 뜻이다. 옳은 정책을 펼쳐서 국민의 공감을 얻고 동의, 동참 향유하는 게 그 정책의 성공이다. 우리 유학은 도덕을 중심한 경제이념이며 철학이다. 교육을 통해서 민초들의 자각력을 최대한 일깨워서 원초적인 공감력을 극대화하고자 한다. 사회투명성을 높이는 가치 실현을 제시하고(在明明德), 사회공감대를 이끄는 기능은 교육이다. 고대로부터 정부가 교육행정에 역점을 둔 이유이다. 지방의 작은 농촌에 자리한 사설서원에서 정부정책이 요구하는 목적에 부합하는 교육기능의 중심이 된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국민의식을 응도에 이르게 하는 것은 어떤 것보다 우선하며 위대한 경제라고 생각한다. 선생은 국가경영에는 참여하지 않으면서 제민(濟民, 민중구제) 사업을 담당하였고, 배출되는 후학들의 응도에 동참하는 의지를 이렇게 길렀으니 과연 도덕군자의 면모라 하겠다.
경국(經國)의 이념이나 철학이 일단 수립되면 그것을 옹호하기 위하여 총력을 기울이다가 일정 세월이 흐르면 그 자체로 경화현상이 일어난다. 파생된 부작용을 관리하는데 느슨하다가 적폐가 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모든 나라가 그러한데 조선도 그러했다. 오늘의 자본주의 이념은 『대학』에 의하면 그 자체로 부작용이 크다. 이 적폐의 경화증은 지금이지 않을까?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일정한 원칙이 있다. 국가의 흥망성쇠는 변천사(變遷史)지만 민초는 원칙을 유지하는 일정한 전통 속에서 삶을 보전해왔다. 그 원리를 일깨워서 공감대를 이루고 공존의 역량을 공고하게 하는 것은 예의문화 밖에는 없다고 생각하며, 예의문화를 주장하는 것이 유학이다. 온고지신은 예로부터 이어오는 실마리를 찾아서 다시 계승하라는 뜻이다. 실마리는 오륜이며 오륜을 다시 밝혀야(明倫) 한다. 덕은 천리이다. 천리를 따르거나(凝道) 버리거나(非道)하는 것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몫이다.
용(庸, 五倫常道)에 중(中, 맞춤)하여 이탈하지 않게 사회질서(凝道)를 관리하라는 뜻이 중용이다. 응도당 주련에 담긴 고민하는 의미를 공유하는 것은 민초가 응도에 동참하는 것이다. 여기서 잠시라도 이탈하면 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드러나지 않는 것(자기 마음)을 경계하고 삼가며 들리지 않는 것(자기 생각)을 두려워한다—도야자(道也者) 불가수유리야(不可須臾離也) 가리비도야(可離非道也) 시고(是故) 군자(君子) 계신호기소부도(戒愼乎其所不道) 공구호기소불문(恐懼乎其所不聞)-고 명시하지 않았던가? 제시하고 참여하는 응결력이 여기에 이르면 어리석었더라도 반드시 밝아지며 유약했더라도 반드시 강해진다—과능차도의(果能此道矣) 수우필명(雖愚必明) 수유필강(수유필강)-라고 하니 중용한 응도로 국력을 이루면 천리의 나라(天國) 아니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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