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광풍루(光風樓) 제월당(霽月堂) 530주년 기념 주련차운(柱聯次韻)

김윤수 성균관 부관장, 지리산문학관장, 일두기념사업회장
1. 광풍루 제월당 530주년 기념 주련차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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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陰三洞武陵天
안음삼동은 무릉도원의 하늘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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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儲之師臨遠邊
세자의 스승이 먼 변방에 임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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君子亭中希聖哲
군자정 가운데에서 성인을 기약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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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門院址感風煙
용문서원 터에서 바람 안개에 느껍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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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庸三著型如岳
용학주소 등 세 책은 전형이 태산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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官吏十條政似川
관리 지침 수십조는 정치가 냇물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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霽月光風誠敬得
광풍제월은 정성과 공경으로 터득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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顧名思義慕年年
명칭 따라 뜻을 생각해 해마다 흠모하네
*압운: 天 邊 烟 川 年/칠언율시 평기식
*시법: 칠언율시(칠언사운)/압운/평기식 평기평결/측기식 측기측결/이사부동이륙동/홀짝부동짝홀동/중련대우
2. 일두 순교 520주기, 안음현감 부임 530주년, 광풍루 제월당 건립 530주년
일두 정여창은 동방오현이다. 세계문화유산 남계서원의 주벽이다. 1498년(연산군4) 무오사화에 희생되어 1504년(연산군10)에 순교한 성현이다. 2024년이 순교 520주기이다. 절친 동문 한훤당 김굉필과 함께 순교성인이며, 조선성리학의 개창자이다.
일두는 그 10년 전 1494년(성종25)에 안음현감으로 부임하여 관아 객사 문루인 선화루를 중창하고 광풍루로 개칭하고 제월당을 금천 언덕에 세우고 광풍루와 짝이 되게 하였다. 염계 주돈이의 기상을 산곡 황정견이 묘사한 광풍제월 문구에서 따와 명명하였다. 올해가 광풍루 제월당 530주년이니 기념할 만한 해이다.
일두는 안의 지역에 세 건의 건물을 지었다. 관아 건물인 광풍루와 제월당이고, 사적 건물인 서하에 있는 군자정이다. 광풍과 제월은 주돈이의 기상을 묘사한 용어에서 취한 것이고 군자는 주돈이의 대표작 <애련설>에서 련(蓮)은 화지군자야(花之君子也)에서 취한 것이다. 연꽃은 본디 불교의 상징화였는데 주돈이가 <애련설>을 지은 뒤로 유교 선비의 꽃으로 변하였다. 군자란 용어가 등장하면 연꽃이 배경에 있는 것이다.
군자정은 1802년에 정선전씨 선비들이 세운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그 터는 원래 일두가 노닐던 곳이었다고 했으니 정자인지 석대인지 불명확하다. 그러나 일진왜란의 일기 <고대일록>을 남긴 고대 정경운의 기록에 의하면, 정유재란 때도 군자정은 건재하여 1597년 9월27일에 우락동에서 군자정을 구경하였다고 하였다. 이때 건재한 군자정은 악양에 악양정을 지어 은거했던 일두가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서상에 군자정을 짓고 주돈이의 연꽃을 사랑하며 공무의 여가에 쉬던 곳이라고 짐작한다.
제월당은 변천이 복잡하고 연혁의 오류도 많다. 일두는 금천 언덕 위, 지금의 제월대 위에 제월당을 창건하였다. 연산군 때 역신의 물건으로 몰려 헐렸을 것이고 중종 때 중창했는데 이때 원위치에 복구하지 않고 광풍루에 연이어 지었다. 중종 25년(1530)에 새로 증보,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제월당(霽月堂)은 광풍루(光風樓)에 연구(連構)하였다’고 하였다.
임진왜란에 다시 불탔을 것으로 추정된다. 암행어사 박문수의 증조부인 구당(久堂) 박장원(朴長遠, 1612-1671)이 인조 21년(1643) 2월에 안음현감으로 부임한 후 〈광풍루기(光風樓記)〉를 짓고, 고을의 명망에 부합하지 않는 향유의 사우를 헐어 제월당을 원위치인 제월대 위에 중건하였다. 향유의 사우는 수승대 주인인 요수(樂水) 신권(愼權, 1501-1573)과 후학 석곡(石谷) 성팽년(成彭年, 1540-1594)을 병향하는 사당이다. 나중에 수승대 근처에 건립한 구연서원의 원조이다.
인조 23년(1645) 1월20일 갑진 1번째 기사에, 예조가 경상도로 하여금 안음(安陰)의 유생 신경직(愼景稷)·성경창(成慶昌) 등의 죄를 다스리게 할 것을 청하니, 상이 따랐다.
‘처음에 신경직·성경창 등이 자기들의 조상인 신권(愼權)·성팽년(成彭年)을 위하여 자기들 스스로 향교 가까운 곳에 사우(祠宇)를 건립했는데, 현감 박장원(朴長遠)이 온 고을의 공론에 따라 그 사우를 철거하고, 그 재목으로 제월당(霽月堂) 【선현 정여창(鄭汝昌)이 창건한 당이다】을 옛터에 옮겨 지었었다. 그런데 신경직 등이, 박장원이 체임되어 돌아간 때를 틈타서 다시 제월당을 부수어 철거했으므로 감사가 신경직 등을 가두고 그 사실을 보고하니 곧 그 죄를 다스릴 것을 명하였다’
박장원의 후임으로 1645년에 부임한 안음현감 김극혜(金克譓)가 감독하여 옛터에 중건하였다. 이후 기록은 모두 원문을 잘못 해석하여 김극혜가 광풍루에 연이어 지었다고 오기하였다. 광풍루와 제월당이 따로 존재하다가 다시 제월당을 광풍루에 연이어 지은 이는 안음현감 장세남(張世南, 1642-1700)이다. 1685년(숙종11)에 장세남이 중건하고 그 스승 우암 송시열에게 지어달라 하여 <안음현광풍루기>를 받아 게시하였다. 자신도 칠언율시를 지어 시판에 새겨 게시하였다. 지금은 그 시가 주련으로 게시되어 있는데, 다음과 같다.
光風樓 柱聯 / 張世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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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洞名區別有天
안음삼동의 명승은 별천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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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樓風月浩無邊
광풍루의 바람 달은 넓어 가이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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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園竹樹宜疎雨
서쪽 동산 대숲에 부슬비 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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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嶺山嵐和暮烟
동쪽 고개 아지랑이 저녁 연기 섞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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漠漠田間飛白鷺
아득한 밭고랑에 백로가 날아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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磷磷石上瀉晴川
반짝이는 돌위에 맑은 냇물 흐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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蠹翁去後今吾至
일두가 가시고 지금 내가 이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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此樂寥寥二百年
이 즐거움 적막한 지 200년이 되었네
*압운: 天 邊 烟 川 年/칠언율시 측기식
*시법: 칠언율시(칠언사운)/압운/평기식 평기평결/측기식 측기측결/이사부동이륙동/홀짝부동짝홀동/중련대우
3. 광풍루 주련 시비
지금 안의면 광풍루에 위 칠언율시가 주련으로 걸려 있다. 그런데 캐나다에 사는 자칭 한학자란 이가 민원을 제기하여 주련의 순서가 <안의읍지>에 실린 것과 틀리니 <안의읍지>에 실린 순서대로 다시 게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련은 수련, 함련, 경련, 미련으로 게시되어 있다. <안의읍지> 제영 광풍루 조에는 수련, 경련, 함련, 미련의 순서대로 잘못 바뀌어 게재되었다. 압운이 天 邊 烟 川 年이 아니고 天 邊 川 烟 年의 순서로 잘못 게재되었다. 서각가가 군의 청탁으로 서각하여 게시할 때 함련과 경련이 뒤바뀌어 실린 것을 간파하고 바로잡아 게시하였다.
민원인은 <안의읍지>에 실린 것은 <화림지>에 실린 것을 저본으로 삼은 것이니 절대로 순서를 바꿔선 안 된다는 것이다. 틀린 것은 바로잡아 게시할 수 있는 것이지 절대로 안 된다는 게 어느 나라 논리인가.
그런데 1931년간 <화림지>에는 실리지 않았고 1966년간 <안의읍지>에 처음 실린 것인데 앞에 O표시도 생략된 채 급히 게재한 의심이 드는 편집상 잘못 순서 매겨 실린 것이다. 함련과 경련이 뒤바뀐 것이니, 주련 판목을 떼어 놓은 것을 옮기어 적다 보면 얼마든지 순서가 잘못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압운은 맞추지만 평측은 못 맞출 수도 있는 것이다.
<화림지>에 실리지도 않은 것을 <안의읍지>가 <화림지>를 저본으로 실은 것이니 순서를 바꿔선 안 된다고 우기는 것은 무슨 경우인가.
<안의읍지> 순서대로 하면 칠언율시 측기식의 평측에 안 맞는다. 그리 얘기하니 파격으로 쓸 수도 있지 뭐가 문제냐고 억지를 부린다. 그러면서 안의현감 연암 박지원(1737-1805)의 문체반정 빌미, 실용주의, 파격적 자유분방의 한시, 가령 연암의 <田家(어느 농가)> 같은 시도 있을 수 있으니, 장세남이 그리 지은 것일 수도 있다, 바꿔선 안 된다고 한다.
燕巖集卷之四 / 映帶亭雜咏○詩 / 田家
翁老守雀坐南陂。
粟拖狗尾黃雀垂。
長男中男皆出田。
田家盡日晝掩扉。
鳶蹴鷄兒攫不得。
群鷄亂啼匏花籬。
小婦戴棬疑渡溪。
赤子黃犬相追隨。
그러면서 연암의 <전가>가 ‘2,4,6,8행의 끝 글자 압운이 수,비,리,수로 들쭉날쭉 쓰고 싶은 뜻이 중요하지 운이 맞지 않아 뜻이 좋아 쓰고 싶어도 못쓰는 적폐를 과감히 청산하고 압운 규칙을 무시하고 있다’고 하였다.
민원인이 한학자는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어찌 운자를 한글로 파악하는가. 4행도 아니고 5행의 운자가 다 운통에 맞는 것이다. 어찌 들쭉날쭉이라 하는가. 陂, 垂, 籬, 隨는 上平 支자운이고 扉는 上平 微자운인데 통운으로서 사용해도 무방하다. 압운은 운통에 맞는 것이고 들쭉날쭉 압운 규칙을 무시한 것이 아니다.
다만 연암의 <전가>는 압운은 맞는데 중련대우와 평측이 안 맞다. 그리고 연암이 지은 칠언율시는 모두 7편인데 하나 빼고 나머지 6편은 시법에 맞는 시를 지었다. <전가>가 파격시라 하지만 실상은 압운, 평측, 대우법을 맞추어가기 전에 일단 지어놓고 차차 시법에 맞추어가는 것인데, 미처 맞추지 못하고 끝난, 미처 진행되지 않은 미완성작인 것이다.
파격시라 하면 틀린 것이다. 파격이라면서 압운은 정확히 맞춘 것이니, 압운은 왜 맞추나? 파격으로 지을 것 같으면 뒤죽박죽 아무 글자나 놓지. 그리고 나머지 6편은 왜 시법에 맞게 짓는가. 다 파격으로 엉터리로 짓지.
연암보다 100년 전 사람인 장세남이 연암처럼 연암의 선구자로 파격시를 지을 수도 있다니, 무슨 황당한 이론인가. 장세남의 시는 필사과정에서 뒤바뀐 경련과 함련을 함련과 경련으로 바로잡으면 압운, 대우, 평측 등의 시법에 맞는 정확한 시가 되는 것이다. 파격적인 요소가 하나도 없다.
시법을 모르거나 몰라서 무시하거나 하면 바른 한시를 지을 수 없다. 어법이나 문법에 안 맞는 말이나 글을 지으면 어불성설인 거와 마찬가지로 한시도 시법에 맞게 지어야 하는 것이다. 시법에 맞는 한시를 바로잡지 말고 억측, 억지로 방치해야 한다는 것은 무슨 경우인가.
시법에 맞는 한시라고 설명해도 수용하지 않고 어설픈 지식으로 궤변을 일삼으며 스스로 전문가연하면서 잘못 필사한 원문을 금과옥조로 사수하며 악성 민원을 끝없이 제기하면 누가 옳은지 일반인이 어찌 알겠는가. 어느 전문가에게 물어 해결하겠는가.
4. 광풍루 주련 차운시 방증
장세남의 시는 시판으로 누각 안에 게시되고 언제인가 주련으로 게시되기도 한 것이다. 지금 광풍루 안에는 장세남의 시판은 없다. 하영규(河榮奎)의 <광풍루중수운> 시판(小序 포함)이 게시되어 있다. 하영규(河榮奎)는 고종 43년 병오(1906) 10월11일에 안의군 주사(安義郡 主事)에 임용되었고, 1926년에는 안의면장을 지냈다. 아석(我石) 정문섭(鄭文燮, 1859-1929)이 안의군이 폐지된 뒤 광풍루를 보존시키고 수리하자 면장이 되기 전인 1925년 을축년 여름에 광풍루 중수 때 지은 것이다. 소서는 생략하고 시만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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樓下平湖碧一天
누각 아래 호수 푸른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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花林勝狀在斯邊
화림동의 명승 여기에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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翠甍照耀龍門日
파란 용마루 용문서원 해 비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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丹榭交橫武峽烟
붉은 정자 골짜기 안개 어른거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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命名遺躅如喬嶽
명명하신 유적은 태산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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講道眞源障百川
도를 강론한 참 진리 이단 막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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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蹟相存應有數
고적 보존도 운수가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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幾回嗣葺又今年
몇 번이나 중수했나 또 올해도
*압운: 天 邊 烟 川 年/칠언율시 측기식, 평기식
*시법: 칠언율시(칠언사운)/압운/평기식 평기평결/측기식 측기측결/이사부동이륙동/홀짝부동짝홀동/중련대우 *특이하게 측기식에서 평기식으로 전환, 전운
이 <광풍루중수운>은 전운(轉韻)을 도모했는데 차운이란 용어는 안 썼어도 장세남의 시에 차운한 시이다. 정확히 天 邊 烟 川 年의 압운에 맞춰 차운하여 지은 것이다. <안의읍지>의 天 邊 川 烟 年 압운 순서와는 다르다. 당연하지 않은가. 주련의 압운 순서가 맞는 것이기 때문이다.
해장(海藏) 신석우(申錫愚, 1805-1865)가 철종 6년(1855)에 경상도 관찰사로서 지방 순행할 때에 안의현에 들러 광풍루에 올라 장세남의 원운에 차운시를 지었다. 측기식을 따랐다. 차운이란 용어를 안 써도 같은 압운이니 차운시인 것이다.
光風樓 / 申錫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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霽月光風別洞天
제월당과 광풍루 별천지에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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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賢氣像浩無邊
선현의 기상은 넓어 가이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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攀梯一上餘丹艧
사다리 잡고 올라가니 단청이 남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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開戶平臨濕翠煙
창을 열고 임하니 푸른 안개 젖어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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未了仙緣遅出峽
신선 인연 못 마치고 더디 골짝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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將尋往蹟逝如川
지난 자취 찾으려니 시간이 냇물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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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分春色名亭酒
가득한 봄빛이 유명 정자의 술잔에 고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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何似湘江宴宰年
어찌 소상강 수령들 잔치 벌린 해와 같을까
*압운: 天 邊 烟 川 年/칠언율시 측기식
*시법: 칠언율시(칠언사운)/압운/평기식 평기평결/측기식 측기측결/이사부동이륙동/홀짝부동짝홀동/중련대우
일제 강점기에서 현대까지 활동한 학자 치당(恥堂) 심상복(沈相福, 1871-1951)은 확실히 시판을 보고 차운시를 지었다. 원운은 측기식인데 압운은 따르되 체재는 따르지 않고 평기식으로 지었다.
登光風樓次板上韻 / 沈相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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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風飄灑洞中天
빛나는 바람 상쾌한 골짝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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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尺元龍活水邊
높은 누각이 남강천 가에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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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野桑麻當肇夏
사방 들에는 뽕, 삼이 첫 여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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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家楊柳羃淸煙
천 채 집 버들은 맑은 안개에 덮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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堪憐先輩優遊地
선배들이 유람하던 곳 어여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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可惜光陰逝似川
세월이 냇물처럼 가는 게 안타깝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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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此尋眞知未遠
이로부터 심진동 멀지 않음 아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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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如太古日如年
산은 태고적, 하루 해는 한 해 같네
*압운: 天 邊 烟 川 年/칠언율시 평기식
*시법: 칠언율시(칠언사운)/압운/평기식 평기평결/측기식 측기측결/이사부동이륙동/홀짝부동짝홀동/중련대우
위 3인의 시는 모두 압운이 天 邊 烟 川 年으로 주련의 압운과 일치한다. <안의읍지>에 실린 天 邊 川 烟 年과는 다르다. 이는 압운은 운통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없지만 함련과 경련이 바뀌어 있는 것을, 평측이 틀린 것을 알아보지 못해 사단이 발생한 것이다. 읍지에 옮길 때 잘못 필사한 것이니 자세히 살펴보고 바르게 알아보는 것이 안목이다. 모든 책에는 오류가 있으니 교정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영규의 시판은 <안의읍지>에 수록되지 않았다. 누락된 것이다. 누락되었으면 <안의읍지>는 절대불변의 원전이니, 증보에 채록하면 안 된다고 할 것인가.
위 3인의 시는 모두 天 邊 烟 川 年으로 장세남의 원시와 일치되게 수련, 함련, 경련, 미련의 순서대로 압운이 정확히 이루어졌고 그 운에 맞춰 차운이 이뤄진 것이다. 위 3인의 시로서 주련 순서가 맞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다.
필자의 시는 장세남의 원운에 차운한 것이지만 심상복처럼 원운의 측기식을 따르지 않고 평기식을 따라 지은 것이다. 시는 측기식과 평기식의 법식이 있고 차운시는 압운만 따르면 측기식이든 평기식이든 무방한 것이다.
5. 光風樓霽月堂530周年紀念柱聯次韻 전국한시지상백일장
광풍루와 제월당이 함양 안의에 있으니 안의향교(전교 김경두)와 함께 (사)일두기념사업회는 지리산문학관의 후원으로 ‘광풍루제월당 530주년기념 주련차운 전국한시지상백일장’을 개최하여 공모하고 금년 4월말까지 인터넷으로만 접수하여 한시강사, 대학교수가 심사하여 선발할 계획이다.
필자의 시는 일주일 구상하고 한두 시간에 짓고 다듬은 것이다. 지상백일장은 한시를 잘 짓는 시인을 선발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 일두정신을 선양하고 광풍루와 제월당을 현창하는, 잘 지은 시를 선발하는 게 목적이다.
장원 100만원 1명, 방안 50만원 2명, 탐화 25만원 10명, 입선 인산죽염치약 10개(5만원상당) 20명을 선정하고 2024년 6월8일(토) 개최 예정인 일두선비문화제에서 시상할 계획이다. 전체 응모작은 한시집을 발행하여 배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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