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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시론

<특별기고> 예(禮)는 옛 것을 지키며 계승되어야 한다

일부 유림지도자들이 주도하고 있는 비례(非禮) 행위들을 비판한다

오흥녕
2024.02.13·5분 읽기·조회 32

 

김두호 성균관 윤리위원, 기장향교 사무국장

 


 

‘상창난기(上蒼難欺, 위에 있는 푸른 하늘은 속이기 어렵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의 선대들은 옛날부터 하늘을 두려워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오랜 기간의 과정을 통해 잘못을 저지르면 언젠가는 하늘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내리는 모습을 목격해왔고, 그 대상이 본인이 되기는 싫었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 일부 유림지도자라는 분들이 오랫동안 내려온 유교문화의 전통을 원칙과 근거도 없이 마음대로 바꾸고, 각종 회의나 대표 선출 과정을 제대로 진행하지 않거나 정관, 향교직제 등을 지키지 않고 마음대로 조작하거나 해석하기도 하며, ‘내 말이 맞으니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등의 과한 언행으로 심산 김창숙 선생을 비롯한 선배 유림들이 해방 이후 피와 땀을 흘려 만든 성균관과 유림조직을 점점 혼돈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전국에서 들려오는 믿을 수 없는 최근 소식들 중에 모 지방향교에서 엄연히 계묘년과 갑진년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계묘년 음력 그믐에 분향을 하고 삭(朔, 초하루) 분향을 봉행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보여 두 눈을 의심했다.

 

다른 향교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오질 않으니 삭·망분향을 한 번만 하기로 했다’며 마치 큰 개혁을 한 것처럼 자랑스럽게 발언한 전교의 이야기가 지방 언론에 실렸다.

 

유교 의례에서 정위(正位)는 북쪽에 있는데 왜 헌관은 서향(西向)을 하는지도 모르는 유림지도자들도 흔히 볼 수 있으니 할 말이 없다.

 

전교와 유도회장이 서로를 헐뜯고, 전교가 ‘유도회는 필요 없으니 향교에서 나가라’고 외치며, 대표자인 전교, 회장 등을 연임, 3임, 무제한 재임하기 위해 서류상으로만 회의를 열고 실제로는 개최하지 않는 조직들에 대한 이야기, 개인적인 원한과 본인의 일신영달(一身榮達)을 위해 성균관과 다른 유림기관에 대한 협조 사항을 무시하는 내용 등도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 계속 전해지고 있으니 상호존중과 예의, 염치로 존재해온 유림의 근본정신을 일부 부유(腐儒)들이 훼손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 유교권에서는 문묘에 모셔진 휘국공(徽國公) 회암(晦庵) 주자(朱子, 주희(朱熹, 1130-1200)) 선생의 『주자가례(朱子家禮)』를 규범으로 삼아 각종 예절을 시행해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집안마다 조금씩 다른 예법을 뜻하는 ‘가가례(家家禮)’라는 표현을 내세우며 ‘내가 있는 곳은 알아서 하니 간섭하지 마라’는 인식이 확산되었고, 원래 해방 이후에는 통일적으로 운영되던 성균관과 지방의 각종 향례의 모습이 점점 제각각으로 변형되어 이제는 바른 내용을 말해도 ‘무슨 자격으로 말하느냐? 우리가 알아서 한다’는 반발로 되돌아온다.

 

유교 및 전통문화에 대한 지식 습득을 게을리하지 않고, 선조들부터 내려온 전통을 현대에 잘 적용시키며, 다소의 어려움 속에서도 한 줄기 가능성을 위해 도전하고 애써 다음 임기를 이끌 이에게 보다 발전된 모습을 전하려 노력하는 모습이 우리의 지도자여야 하므로 그렇지 않은 이들은 지도자의 자격이 없다.

 

외부인들과 접촉할 때에 용어 사용도 신중해야 한다.

 

어느 글에서 모 유림지도자가 ‘전교는 총장의 개념이다’라고도 했던데, 고려 후기부터 조선시대를 거쳐 일제강점기까지의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면 그렇게 표현하는 것은 지나치게 과하다.

 

게다가 전교(典校)는 ‘학교 책임자’의 뜻이 강한데, 강학(講學)과 제향(祭享)이 균형을 이루던 조선시대까지의 모습과 달리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제향 위주로만 운영되었으므로 엄연히 따지면 ‘가르치는 기능이 사라진 기관의 책임자’ 정도로 본다면 현재는 ‘대학교나 대학원의 최고 책임자’를 뜻하는 총장과는 전혀 맞지 않는 개념인 것이다.

 

얼마 전 유교신문 인터넷판에 보도된 ‘<긴급점검> 2024년 문화체육관광부 예산 내역에서 확인되는 유교의 현재 위치와 향후 과제’ 기사에 의하면, 이웃종교에 배정된 예산들에 비해 우리 유교에 배정된 예산은 부끄러울 정도로 적어 더 이상 방치하거나 간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부나 정치권 등 외부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못하면서 내부에서만 서로 잘났다고 비방하고 싸워봐야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세상의 조롱거리가 될 뿐이다.

 

이제부터는 서로를 깎아내리는 데 에너지와 열정을 사용하기보다 우리 유교의 본질을 더욱 연구하고, 세상과 소통하며, 한 명의 이웃과 국민이라도 유교와 친숙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만세사표(萬世師表, 만세에 귀감이 되는 영원한 스승)인 공부자께서는 2,500여년 전부터 예(禮)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하셨다.

 

그리고 이후의 유림지도자들은 일반인보다 훨씬 엄격하고 절제된 예를 일상의 삶에서 실천함으로써 귀감(龜鑑)이 되어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예의와 염치가 통하는 모범적인 모습으로 만들어왔다.

 

세상이 아무리 변하고 일반인들이 점점 편안함을 추구한다고 하더라도 유림이라면, 특히 유림지도자라면 우리 조상들이 어떠한 국난에도 묘당(廟堂)의 위패(位牌)와 향촉(香燭)을 목숨 걸고 보존하고 지켰던 자세를 갖춰야 할 것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면 가능하겠는가? 

 

하늘을 속인다고 그게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