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림시론

<특별기고> 빨리 떠날만하면 빨리 떠나고, 머물만하면 머문 공자를 생각하며

김용헌
2024.05.11·5분 읽기·조회 39

 

 

유교신문 경기도주재기자/수원향교 장의

 


 

 

 

《맹자》 <만장> 하편에서 맹자는 다른 유형의 삶을 산 옛 성인 네 분의 이야기를 했다. 

 

 

먼저 "백이(伯夷)는 눈으로는 나쁜 색을 보지 않았고, 귀로는 나쁜 소리를 듣지 않았다. 자기에 맞는 임금이 아니면 섬기지 않았고, 자기에 맞는 백성이 아니면 부리지 않았다. 다스려지면 나가고(治則進), 어지러우면 물러난다(亂則退)"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깨끗한 사람이라고 하며 맑은 사람 즉 청자(淸者)라고 불렀다. 이런 사람은 세상을 더럽히지 않는 정의로운 사람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때로는 자신만 깨끗하게 살려고 하고,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사람이라고 본다. 그들은 주로 은둔하며 산다. 비록 자신은 깨끗하나 세상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는다. 

 

 

두 번째, 이윤(伊尹)의 이야기다. "그는 누구를 섬긴들 임금이 아니냐, 누구를 부리더라도 백성이 아니냐며, 잘 다스려져도 나가고 (治亦進), 어지러워도 나갔다(亂亦進). 하늘이 백성을 낳은 것은 먼저 깨달은 사람이 나중에 깨달은 사람을 깨우치게 한 것이라고 했다. 그 자신은 하늘이 낳은 백성 가운데 먼저 깨달은 사람이니, 장차 백성을 깨우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사람을 임자(任者)라고 부른다. 이런 사람은 청자와 달리 자신보다 알지 못하는 사람을 깨우쳐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역할을 하게 한다. 다른 한편 이런 사람은 바르지 못한 정치에 아부하거나 그들을 도와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데 도움이 안 될 수 있다. 

 

 

세 번째, "유하혜(柳下惠)의 이야기다. "그는 더러운 임금도 부끄럽지 않고, 작은 관직도 마다치 않았다. 버려지더라도 원망하지 않았고(遺佚而不怨), 어려움에도 고민하지 않았다(阨窮而不憫). 그는 너는 너 이고 나는 나이니, 비록 내 곁에서 옷을 걷어 올리거나 옷을 벗더라도 네가 어떻게 나를 더럽힐 수 있겠는가? 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의 풍모를 들은 비루한 사람은 너그러워지고, 가벼운 사람은 돈독하게 되었다"라고 했다. 유하혜는 이윤과 비슷한 유형이라고 볼 수 있지만 역경을 비난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사람을 맹자는 화자(和者)라고 했다. 화자는 융통성 있게 조화롭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으로 훌륭한 인품이 있다. 한편 그의 단점은 임자와 같이 불의에 대하여 저항하며 바른 세상을 구현하고자 하는 정의로움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공자(孔子)는 머물만하면 머물고 빨리 떠날만하면 빨리 떠나고 오래 있을 만하면 오래 있으며, 머물만하면 머물렀다. 공자는 성인 가운데 때를 맞춰 행한 분이다. 집대성한 분이다. 성스러움과 지혜를 구비하고 때에 맞추어 행한 분이다"라고 했다. 청자, 임자, 화자가 훌륭한 인성을 가지고 있지만 또한 단점도 있다. 반면 공자는 시의적절하게 대응하므로 단점을 찾기 어려우며 온전한 정치를 하였다라고 생각된다. 

 

 

살다 보면 잘 풀리는 일도 있지만 때로는 뜻대로 안 되는 어려움에 부닥칠 때도 있다. 이런 때 우리 유림은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지 생각한다. 백이와 같이 유교의 시대 정신이 옳다고 밀고 나가서는 안 될 것이다. 이윤이나 유하혜와 같이 비판 없이 남의 의견을 수용한다면 문제해결이 되지 않을 것이다. 마땅히 공자와 같이 여건에 맞춰 시의 적절히 처신해야 할 것이다. 

 

 

요즘 향교에는 사람이 없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오지 않고 있다. 갈수록 유교가 쇠퇴하고 있다. 유교가 쇠퇴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시대에 순응하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禮記』에서 예는 시를 중히 여기는 것(禮時爲大)라고 했다. ‘시속(時俗)에 부합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우리의 실상은 어떤가? 젊은이들은 한문을 거의 쓰지 않으나 우리는 한문을 너무 많이 쓰고 있다. 釋奠大祭(석전대제)가 무슨 뜻인지 알고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耆老宴(기로연)도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렵다. 불교는 석가탄신일을 부처님오신날로 누구든 알기 쉽게 부르고 있다. 우리는 일반인이 알 수 없는 공부자탄강일이라고 부르고 있다. 제례홀기도 거의 한문이다. 

 

 

우리 유교는 시대에 순응하지 못하고 있다. 젊은이들에게 취향에 맞게 의례도 바꾸고 교육프로그램도 바꿔야 할 것이다. 그래야 공자의 말씀을 따르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