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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시론

<특별기고> 2024년 칠백의총 종용사 제향 논란에 대하여

<span style="color:#FF0000;">종용사는 유림이 건립한 사당이고, 유교 제향을 올리는 곳이다</span>

김문준
2024.09.14·4분 읽기·조회 105

 

 

칠백의총 종용사의 내, 외부 모습이다.

 


 

 

 

칠백의사순의탑이 건립되어 있다.

 


 

 

 

칠백의총기념관은 매일 많은 관람객들이 다녀가고 있다.

 


 

 

김문준 건양대학교 교수·중봉조헌선생기념사업회장

 


 

 

올해에도 9월23일 충남 금산에 위치한 종용사에서 제향을 올린다. 매년 국가유산청은 임진왜란 때 순국하신 중봉 조헌 선생과 그 막료들, 고경명 선생과 그 막료들, 변응정과 그 막료들, 승병장 영규대사와 승병을 모시는 제향을 올린다. 모든 국민들이 가슴을 여미고 의의를 새겨야 하는 제향이다.

 

 

 

 

그런데 최근에 안타깝게도 뜻밖의 논란이 일어나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이번 종용사 제향에 대한 논란은 그동안 종용사 제향에서 승려 영규대사가 국가와 유교인에게 홀대받아 온 것처럼 호도된다는 것이다. 승병이 목숨 바쳐 나라를 구했는데도 불구하고, 국가와 유림이 유교국가인 조선시대처럼 승병을 홀대하고 존중하지 않는다고 불교계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종용사 제향에 대해 일어난 논점은 불교 홀대가 본질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번 문제의 핵심은 영규대사와 승병에게 제례를 올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종용사에서 불교 제례를 올리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종용사는 조선시대에 유림이 세우고, 국가가 사액을 내린 유교 사당이다. 조선 조정은 현종 11년(1670년) 이후, 숙종 대, 영조대, 정조대에 예관을 파견하여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사당이 훼손되어 1855년(철종 6)에 다시 중수했으나, 일제강점기인 1940년에 일본인 금산경찰서장이 의총과 종용사를 훼손하고 순의비를 폭파했다. 8ㆍ15 광복 후 1952년에 순절 360주년을 맞이하여 유림이 중심이 되어 금산군민이 기념사업회를 조직하고 성금을 모아 의총을 고치고 종용사를 재건했다. 1963년에 국가가 사적으로 지정했다.

 

그러다가 1971년에 국가에서 제1차 정화사업으로 종용사와 부속 건물을 준공했다. 칠백의총 관리는 금산군에서 담당하다가, 1975년에 충청남도에서 관리하다가, 그 해에 문화공보부 직속기관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1976년 제2차 정화사업, 2020년 종합정비사업 1단계, 2023년 2단계 준공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연혁을 보면 종용사는 유림이 건립한 사당이고, 수백년간 유교 제향을 드려온 사당이다. 현대에 국가가 이곳을 성역화하여 관리하고 제향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사찰의 불당이 불교 제례를 올리는 공간이고 성당이 천주교 의례를 행하는 공간이라면, 사당은 유교 제례를 행하는 공간이다. 사당에서 행해지는 제례는 수백년 동안 유교 제례로 올려오고 있다.

 

당연히 영규대사와 승병의 위대한 희생을 함부로 여겨서는 안 된다. 국가 위란의 고비에서 자신의 목숨을 바쳐 국가와 백성을 구한 희생을 누가 감히 천하게 여기고 함부로 여길 수 있다는 말인가. 영규대사와 승병들의 영령도 당연히 높이 받들고 적절한 방식으로 제향을 올려야 마땅하다.

 

 

 

그런데 종용사(從容祠)는 유림들이 세운 사당이고 이 사당의 주벽(主壁)은 조헌 선생과 고경명 선생이다. 다른 분들은 배향(配享)이다. 당연히 종용사에서 불교 제례를 올리고자 한다면, 먼저 유림과 제향된 분들의 후손과 적절한 논의를 통해 합의해야 마땅하고, 그리고 사회 각계 인사가 참여한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 앞으로 이러한 성숙한 논의가 진행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