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효부(孝婦) 달성서씨(達城徐氏) 포상문(褒賞文) 해제 유감(有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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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석 현풍향교 전교
현풍향교 유도회 차한용(車漢用) 회장의 본향인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자모리(自慕里)는 연안차씨(延安車氏) 명문 세거지로서 창녕(昌寧) 성기덕(成耆悳) 선생이 찬(撰)하고, 포산(苞山) 곽동건(郭東健) 선생이 서(書)한 〈학생연안차공지묘(學生延安車公之墓) 좌(左) 유인달성서씨부장(孺人達城徐氏祔葬)>이라 쓰인 묘비가 있다.
정황으로 말하자면, 이 묘의 배위(配位)인 유인(孺人) 달성서씨가 연안차씨 가문에 출가하여 찌든 가난을 이겨 내고, 구고(舅姑,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극진히 봉양한 효부 서씨의 선부(先夫, 돌아간 남편) 차치병(車致秉) 선생과의 쌍분(雙墳) 묘비다.
건립 시기가 일제강점기라 정려(旌閭)는 내려지지 않은 것 같고, 지방 관서의 포창상을 여러 차례 수상했는데, 경인란(庚寅亂, 1950년 한국전쟁)으로 전화(戰火)에 모든 문헌과 행적이 소진되어 흔적이 없어졌다.
그 후 을미년(1955) 음력 8월8일 현풍향교 추기석전을 봉행하고, 향교 명륜당에서 효부의 두 아들이 선모(先母, 돌아가신 어머니)의 행적을 눈물 흘리며 도와줄 것을 청한 후 호소하였고, 당시 유림 어른들이 이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연명(聯名)으로 포창문(褒彰文)을 기술(記述)하였다.
최근 차한용 유도회장이 그 포창문을 가져와 번역을 간청하여 감히 천학비재(淺學菲才)한 서생(書生)의 우설(愚說)을 양지(諒知) 바란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당연지사인 삼강오상(三綱五常)은 인륜의 큰 도리이고, 그 첫째가 사친(事親, 어버이를 섬김)이어늘 하물며 우리 고을에 서씨부인 같은 효부가 나심은 어찌 우연함이라 할 수 있으리오.
효부의 가상(嘉尙)함에 대해 비록 나라가 내린 정문(旌門)은 세우지 못하였으나 이것은 진실로 차마 그 미담을 불가치(不可置, 세우지 않을 수 없음)라 아니할 수 없는 바라 포상을 고증하여 효부의 의적(懿蹟, 훌륭하고 뛰어난 행적)을 현각비(顯刻碑)로 세워서 후세 만인에 양명(揚名)되고, 부식강상(扶植綱常)이 천명(闡明)되어야 할 것이다.
* 제목에 사용된 ‘유감(有感)’은 ‘느끼는 바가 있다’는 긍정적인 의미이므로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을 뜻하는 ‘유감(遺憾)’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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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에 작성된 원문이다.
孝婦徐氏褒彰文(원문-1955년 작성)
夫人之大倫莫大於善事父母以故爲人子爲人婦者事父母事舅姑之節卓卓有可稱必爲之闡揚傳播使人人知非情篤於其人而用私阿從欲使千秋爲人子爲人婦者效而則之勤勉之道也今於吾鄕有孝婦徐氏卽延安車致秉之妻達城徐永坤之女也.十九歲歸于車門家勢甚貧無以爲心卽日箸短布裳以紡績爲職田園爲業提甕出汲之役不得全美於古兩家道稍潤奉養舅姑極盡其誠十餘載如一日所以鄕人咸稱至孝村人辨需共賀及姑以疾終天年舅老且病十餘載證漸危毒百藥無效乃析指血於口而延命又百日祈山請命得生雉入抱作膏飮之取汗效速完復多士聯狀于官前有金侯華埴氏嘉尙題音後有金侯承杓氏又施特賞然當庚寅亂家屋與所存物盡入兵火孝婦前後文蹟亦燒失其孤鳳鉉判鉉兄弟憂其先妣行蹟之無徵泣訴于今秋聖廟大祭之日鄙等熟知孝婦之行不可置題道外書此以他日芳名不朽之資焉爾
乙未八月初八日
玄風鄕校會中 嚴邦燮 郭芝坤 金建永 朴斗永 車致鴻 郭振泳 金正淑 郭 濚 李 允 朴祥慶 金永修 孫智秀 金濚埴 裵秉基 具興會 裵在容 曺廷東 金振永 朴周陽 朴孝鎭 成 鋌 李周煥 李鍾桂 嚴翼觀 崔夏植 李相弼 嚴方燮 金在琪 等
효부서씨포창문(번역-현풍향교 전교 파평윤씨 윤홍석(尹洪錫))
무릇 사람에게는 마땅히 지켜야 할 윤리가 있고 부모를 잘 섬기는 일은 막중하고 크다. 그러므로 아들과 며느리로서 부모를 시부모를 섬기는 것은 사람이 꼭 해야 할 일이다. 뛰어난 효행과 절의(節義)를 기리고 밝혀서 널리 전파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그 독실(篤實)함을 알리는 것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자부의 효행이 전해지는 즉 힘써 도리를 다함이라. 지금에 우리 고을에 효부 서씨(徐氏)가 있으니 연안차씨 차치병(車致秉)의 처(妻)요, 달성서씨 서영곤(徐永坤)의 여(女, 딸)이다.
19세에 차씨 문중에 시집와 가세가 심히 기울어져 가난을 없애려 마음을 다짐하고 바로 그날부터 짧고 낡은 베 치마를 입고 길쌈과 밭일을 생업으로 하고 항아리에 물 길으러 나오는 것은 정숙한 양반집 부인으로서 부득이한 일이었다.
집안 살림은 점점 윤택하여져 시부모를 극진히 봉양하면서 십여 년이 지난 어느 날 그러한 까닭으로 고을 백성들이 모두 지극한 효부라고 칭송하였고 동네 사람들도 모두 기뻐하며 축하 하였는데 급기야 시어머니가 병환으로 별세(別世)했다.
그해 또 나이 많은 시아버지가 병을 얻어 십여 년에 걸쳐 점점 위독하여 백약이 무효라 이에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입에 넣어 목숨만 겨우 연명하여 또 산에 들어가 시부의 목숨을 살려 달라고 백일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꿩이 품에 들어와 잡아서 그 꿩을 고아서 마시고 땀을 내게 하니 효험이 빨라 완치되었다.
이 말을 듣고 많은 선비가 모여 관가(官家)에 연명으로 장계를 올리니 김화식 현감이 착하고 가상하다 하고 제사(題辭)를 내렸다. 후에 김승표 현감이 또 특별히 큰상을 시상하였다. 그 후 6.25 전쟁(庚寅亂)을 당하여 가옥과 그곳에 있든 모든 물건이 전쟁으로 불타면서 효부의 두 상장과 행적 문서가 같이 소실되었다. 어머니의 행적인 증서가 없어져 아들 봉현과 판현 두 형제가 근심하다가 향교에 들어와 눈물을 흘리면서 호소했다.
마침 올해 현풍향교 문묘에 추기석전대제를 마치고 향교 유림이 모여 식견이 좁지만 효부의 포창(褒彰)을 익히 알고 있는지라 행적을 그대로 둘 수 없다 하고 표제(表題)를 하여 어긋남이 없게 글로 적어 지난날 그 효부가 행한 효행이 훌륭하여 오래도록 변함이 없이 잊지 않고 근본으로 삼을 것이다.
을미년 팔월 초파일
현풍향교회중 엄방섭 곽지곤 김건영 박두영 차치홍 곽진영 김정숙 곽 영 이 윤 박상경 김영수 손지수 김영식 배병기 구흥회 배재용 조정동 김진영 박주양 박효진 성 정 이주환 이종계 엄익관 최하식 이상필 엄방섭 김재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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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부터) 윤홍석 전교, 차영권 달성서씨할머니 장손, 곽기욱 유도회 달성지부 전 회장이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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