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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시론

<李玄崗의 泮中雜詠> 人治와 法治, 뜻 제대로 알고 얘기해야

편집부
2014.07.09·6분 읽기·조회 22

유교의 가르침을 미래 시각에서 다시 읽어 소통과 융합을 도모하자며 지방에서는 국제적 포럼을 열고 세계 석학들이 모여 선언까지 하고 있는데, 정작 한국유교의 총본산인 중앙의 성균관에서는 오히려 유교의 가르침을 훼손하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일이다.

세월호 희생자를 추도한다며 엉뚱하게도 <맹자> 離婁下篇 ‘自侮人侮章’에 실린 <서경> 太甲의 말을 인용해 망신을 당하더니, 이제는 세월호 참사가 人治의 산물이란다. 심지어는 유교에서 말하는 패도정치가 인치와 법치라고도 했다. 모두 서정기 성균관장의 말이다.

서 관장은 모 언론과 인터뷰에서 ‘세월호 참사가 인치의 산물’이라고 하면서, “인치와 덕치는 천양지차죠. 인치의 요체는 교만, 인색 같은 것으로 술수, 독재의 냄새가 납니다. 덕치는 겸손과 양보 같은 덕목을 생명으로 삼습니다”라고 했다. 부적으로 팔고 있는 일명 ‘五靈書’를 책장에 잔뜩 걸어놓은 인터뷰 사진도 곁들였다.

그러나, 유교에서 인치는 德治와 같은 말이다. 중국어 사전에서조차 인치의 첫 번째 뜻으로 “선진 시기 유가의 정치사상으로서, 군주가 賢才에 의거하여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것을 말함”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가 인치의 산물이라니? 유교를 모르면서 하는 말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성균관장이라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말이다.

공자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논어>는 ‘배움(學)’에서 시작해 ‘사람을 아는 것(知人)’으로 끝난다. 혹자는 <논어>의 이 두 글자만 읽어도 <논어>를 다 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논어> 전 편의 주제는 ‘사람’이고, 바로 이것이 ‘焚書坑儒’로도 ‘批林批孔’으로도 없애지 못한 수천년 유교의 가치이고 생명이다.

<논어>의 ‘사람을 아는 것’은 <중용>의 ‘하늘을 아는 것(知天)’으로 이어진다. <중용>에서 공자는 “사람을 알 것을 생각한다면 하늘의 이치를 알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이 두 가지를 이어주는 것이 바로 성실함(誠)이고, ‘남이 한 번에 능하거든 나는 백 번을 하며, 남이 열 번에 능하거든 나는 천 번을 하는 것(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이 바로 공부다.

朱子가 15~6세 때 읽다가 전율을 느꼈다고 회고한 이 <중용> 제20장은 유교 정치사상의 백미를 담고 있다. 공자는 哀公이 정치에 대해 묻자, “문왕과 무왕의 정사가 방책에 펼쳐져 있으니, 그러한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러한 정사가 거행되고, 그러한 사람이 없으면 정사가 종식된다”고 하면서, 정치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爲政在人)고 했다.

공자는 “법으로 이끌고 형벌로 다스리면 백성들이 형벌은 면하지만 부끄러워함이 없게 된다(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논어> 爲政篇)”고도 했다. 예를 들어 총장으로 있으면서 대필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게 드러나도, 공사 비리를 저지르면서 친구에게 누명을 씌워 죽음에 이르게 해놓고도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오히려 큰 소리를 치는 것은 모두 부끄러움이 없어 생기는 일이다. 실제 지방 사립대에서 벌어진 일이다.

법이나 제도는 정치의 수단이지 본질은 아니며, 그 법과 제도를 만들고 운용하는 것은 사람이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 몸을 仁하게 하면 훌륭한 군주가 있고 훌륭한 신하가 있어서 정사가 거행되지 않음이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중용> 제20장에 담긴 유교 정치사상의 요지이고 인치이다.

그런데 중국어 사전을 보면, 인치의 두 번째 뜻이 있다. ‘사회생활이 법에 의지되는 것이 아니고 지도자 의지에 의해 움직이는 정치’라고 한다. 유교의 인치를 왜곡시킨 것이 중국에서 또 다른 의미로 정착된 것이다.

1970년대 중국의 ‘10년 겁난(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四人幇’의 비호를 받은 역사가들은 ‘批林批孔’운동의 이론적 기초로서 ‘儒法鬪爭史觀’이라는 새로운 역사 해석을 제기했다.

이들은 주은래를 비롯한 정적 제거와 강청의 옹립을 목적으로, 역사연구란 자료가 아닌 투쟁의 필요에 의한 것이며, 실용을 위해서는 ‘眞七假三’도 가능하고, ‘합리적 이상’과 ‘허구’에서 ‘진리’가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극단적 실용주의 역사인식 아래 제기된 유법투쟁사관은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을 변형시킨 것으로, 춘추전국시대 인치의 유가와 법치의 법가를 각각 몰락노예주계급과 신흥지주계급, 보수반동과 진보를 대표한다고 규정하고, 이들의 대립과 투쟁이 중국사는 물론 세계사에까지 관철되는 역사발전의 일반법칙이라고 했다.

이 유법투쟁사관은 ‘10년 겁난’ 이후 그 몰역사성으로 인해 비판받고 폐기되었지만, 그것이 끼친 유폐는 적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이 유법투쟁사관이 무분별하게 수용돼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기도 했다.

공자는 “정직한 사람을 기용하여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 위에 놓으면 백성이 따르고, 정직하지 못한 사람을 기용하여 정직한 사람들 위에 놓으면 백성이 따르지 않는다(擧直錯諸枉 則民服 擧枉錯諸直 則民不服, <논어> 爲政篇)”고 했다.

맹자는 “그냥 선한 마음만 가지고는 정치를 할 수 없고, 그냥 법만 가지고는 스스로 행할 수 없다(徒善不足以爲政 徒法不能以自行, <맹자> 離婁上篇)”고 했다.

마음이 아무리 착해도 그 착함만으로는 정치를 행하는 데 부족하고, 법을 만들었다 해도 그것만으로 운용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선한 마음에 어울리는 실천이 있어야 하고, 법에 어울리는 선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 우리 정치 현실에서 깊이 새겨들어야 할 말씀이고, 이게 바로 유교의 인치이다. 그런데 서 관장은 이것이 세월호 참사를 낳았다고 했던 것이다. 이 같은 서 관장의 언행으로 유교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가 더 깊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자기가 만든 부적 전시회까지 한다고 하니, 이런 식으로 시간이 더 지나면 한국유교와 성균관은 정말 회복불능의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