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의료자문, 소비자는 왜 믿지 못하나? [유교경영리포트]
보험금 지급 심사 과정에서 활용되는 의료자문을 둘러싼 소비자 불신이 커지고 있다. 보험사는 객관적 판단을 위한 절차라고 설명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돈을 내는 쪽도 보험사, 자문의를 고르는 쪽도 보험사, 자문 결과를 지급 거절 근거로 삼는 쪽도 보험사라는 점에서 공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료자문은 주치의 진단이나 치료의 적정성을 제3의 전문의에게 묻는 절차다. 과잉진료나 보험사기 의심 사례를 걸러내고, 의학적 판단이 필요한 분쟁을 줄이기 위한 장치라는 것이 보험업계의 설명이다.
문제는 실제 운영 구조다. 소비자가 제출한 주치의 진단서와 치료 기록이 있음에도 보험사가 별도 의료자문을 요구하고, 그 결과를 보험금 지급 거절이나 삭감의 근거로 삼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환자를 직접 진료하지 않은 의사의 서류상 판단이, 환자를 진료한 주치의 판단보다 우위에 놓이는 셈이다.
A씨 사례는 이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A씨는 2024년 9월 대학병원에서 자기공명혈관조영술(MRA) 검사를 받은 뒤 주치의로부터 경동맥 폐쇄 및 협착 진단을 받았다. 이후 보험사에 뇌졸중 진단보험금을 청구했다.
그러나 보험사는 유의미한 혈관 협착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A씨가 의료자문 시행에 동의할 때까지 보험금 심사 절차를 중단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대학병원 주치의 진단보다 보험사가 요구하는 자문 절차가 더 강한 힘을 갖는 것처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는 대등한 당사자가 되기 어렵다. 자문의가 누구인지, 어떤 전문과목의 의사인지, 어떤 자료를 보고 판단했는지, 보험사와 반복 거래 관계가 있는지 확인하기 쉽지 않다. 보험사는 의료자문을 근거로 판단을 미루거나 거절할 수 있지만, 소비자는 그 판단의 근거와 주체를 검증하기 어렵다.
D씨 사례도 같은 맥락이다. D씨는 2016년 뇌출혈로 편마비가 된 뒤 2022년 8월부터 2025년 7월까지 모두 57회의 도수치료를 받았다. 이 기간 청구한 실손의료비 보험금은 전액 지급됐다.
그런데 2025년 7월 이후 추가로 받은 도수치료 9회분에 대해 보험금을 청구하자 보험사는 지급을 거절했다. 도수치료가 불필요하다는 의료자문 결과가 이유였다. 같은 환자, 같은 질환, 같은 치료 흐름에서 앞선 치료는 인정하고 뒤의 치료는 부정한 것이다. 소비자에게는 심사 기준이 일관된 것인지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약관 해석을 앞세운 지급 거절도 있다. B씨는 2022년 5월 유방암 진단을 받은 뒤 항암제 투여를 위한 케모포트삽입술을 받았다. 케모포트삽입술은 항암제를 반복 투여하기 위해 피부 아래에 포트와 카테터를 이식하는 수술이다.
B씨는 암수술비 보험금을 청구했다. 그러나 보험사는 케모포트삽입술이 항암제 투여를 위한 처치일 뿐 암을 직접 치료하는 수술이 아니며, 약관에서 정한 수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항암제를 투여하기 위해 필요한 의료행위를 암 치료와 분리해 단순 처치로 보는 해석은 지나치게 좁다. 약관은 보험사의 지급 책임을 줄이기 위한 문구가 아니라, 가입자와 보험사가 함께 지켜야 할 약속의 기준이다. 약관 해석이 모호할수록 보험사는 소비자에게 불리하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
C씨는 2025년 7월 요추 추간판탈출증과 신경관협착증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해 풍선확장 신경성형술을 받았다. 이 시술은 척추 신경관에 풍선도관을 넣어 좁아진 신경관을 넓히는 방식이다.
C씨는 이후 입원 실손의료비 보험금을 청구했지만, 보험사는 입원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의료자문 결과를 이유로 지급을 거절했다. 실제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은 소비자는 사후적으로 “입원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판단을 받은 것이다.
이 같은 사례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소비자는 의사의 판단에 따라 검사와 치료를 받았고, 보험사는 사후 의료자문이나 약관 해석을 근거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소비자에게 보험은 위기 때 작동해야 하는 제도지만, 정작 보험금을 청구하는 순간 입증 책임과 절차 부담은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한국소비자원 분석에서도 보험금 지급 거절 문제는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지난해 접수된 보험 관련 피해구제 신청 930건 가운데 보험금 지급 거절은 798건으로 85.8%를 차지했다. 지급 거절 사유 중 가장 많은 것은 ‘주치의 진단·치료 불인정’으로 538건, 67.4%에 달했다.
주치의 진단이나 치료를 인정하지 않은 사례 가운데 상당수는 보험사의 의료자문 요구와 연결돼 있었다. 소비자가 의료자문에 동의하지 않거나 그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 과정에서 분쟁이 발생한 것이다.
보험업계는 의료자문이 전체 보험금 청구 건수 중 극히 일부에 대해서만 시행되며, 과잉진료와 부당 청구를 걸러내기 위한 합리적 절차라고 설명한다. 선량한 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을 막기 위해 필요한 장치라는 주장도 있다.
그 반론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다. 보험사도 부당 청구를 걸러낼 책임이 있다. 문제는 의료자문이 필요한가가 아니라, 그 절차가 소비자에게 공정하게 보이는가다. 지금처럼 자문 비용과 선정 권한, 결과 활용 권한이 보험사에 집중된 구조에서는 소비자가 신뢰하기 어렵다.
의료자문이 공정한 절차가 되려면 최소한 세 가지가 보장돼야 한다. 자문의 선정 과정이 투명해야 한다. 자문의의 전문과목과 판단 근거가 소비자에게 충분히 설명돼야 한다. 소비자가 동의하지 않을 경우 중립적 제3기관의 재감정 절차가 실질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자문 의사가 익명으로 남는 경우가 많고, 보험사는 자문 결과를 지급 거절의 핵심 근거로 삼는다. 소비자는 그 결과를 뒤집기 위해 다시 시간과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힘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
보험사의 책임은 여기서 더 무거워진다. 보험은 소비자가 질병과 사고로 가장 약해진 순간 작동해야 하는 제도다. 보험사는 계약의 문구만 좁게 들여다볼 것이 아니라, 그 약속이 왜 존재하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보험은 신의에 기대어 유지되는 업이다. 가입자는 미래의 위험에 대비해 보험료를 내고, 보험사는 그 위험이 현실이 됐을 때 약속한 보장을 이행해야 한다. 소비자의 고통 앞에서 약관과 의료자문을 방패로 삼는다면, 이는 이익보다 의로움을 먼저 살피라는 경영의 기본 도리를 거스르는 일이다.
《논어》 위정편에는 “人而無信 不知其可也(인이무신 부지기가야)”, 곧 “사람이 신의가 없으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신의가 없으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는 뜻이다. 보험업은 이 말이 엄격하게 적용돼야 할 분야다. 보험은 눈에 보이는 물건을 사고파는 거래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신뢰를 기반으로 유지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맹자》 이루상편에는 “徒法不能以自行(도법불능이자행)”, 곧 “법만으로는 저절로 행해지지 않는다”는 말도 되새길 대목이다. 법과 기준은 저절로 행해지지 않는다. 의료자문 내부통제 기준과 표준약관이 있어도 보험사가 이를 소비자 보호의 기준으로 삼지 않으면 제도는 형식에 그친다.
보험사는 의료자문 뒤에 숨지 말아야 한다. 주치의 진단을 부정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명확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자문 결과를 보험금 지급 거절의 근거로 삼으려면 소비자가 검증할 수 있는 절차도 함께 보장해야 한다.
의료자문 제도의 핵심은 투명성이다. 누가 판단했는가. 어떤 자료를 봤는가. 보험사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소비자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통로가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의료자문은 공정한 심사가 아니라 기울어진 절차로 보일 수밖에 없다.
보험은 장사이기 전에 약속이다. 보험료를 받을 때의 약속과 보험금을 지급할 때의 태도가 달라져서는 안 된다. 소비자가 요구하는 것은 특혜가 아니다. 자신이 낸 보험료에 상응하는 정당한 보장과 납득 가능한 절차다.
보험사가 신뢰를 회복하려면 의료자문 제도를 보험금 절감의 수단이 아니라 분쟁을 줄이고 소비자를 설득하는 절차로 바꿔야 한다. 자문의 선정과 결과 공개, 제3기관 재감정, 삭감 통계 공시까지 소비자 중심으로 다시 세워야 한다. 그것이 보험업의 신의를 회복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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