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문화예술의 향기]농요, 서민의 고단한 육체를 달래는 노동민요일제 문화 말살정책으로 유교공동체 정신도 위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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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무형문화재 제84호 경남 고성농요(固城農謠) 재현 장면(자료 문화재청)
농요(農謠)는 농부들이 논이나 밭에서 일을 하면서 피로를 잊고 능률을 올리기 위해 부르는 노동요이다.
들노래라고도 하는 농요는 모내기, 도리깨타작, 삼삼기, 논매기, 물레질 등 농사 동작을 놀이와 이야기 형식으로 입체화한 것으로서 산, 들, 집안에서 고단한 노동 속에 사는 서민 애환과 전통적 마을 공동체 특성이 녹아있는 농사음악이다.
노래의 주 내용은 보통 조상숭배, 가정 화목, 이웃 간 협동, 풍작 기원, 마을공동체 안녕 기원이며 때로는 시집살이의 고달픔, 멀리 떠난 임을 향한 그리움, 고향을 떠나 겪는 설움을 애절한 가락에 실어서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가락의 장단과 고저는 일이 지루할 때, 일 속도를 내야할 때, 점심을 기다릴 때, 해가 뉘엿뉘엿 기울 때 등 여러 상황에 따라 변화를 주었다.
우리나라의 농요는 수경(水耕) 기술이 발달하기 시작한 고대부터 시작됐다.
전통사회 두레, 품앗이 등과 같은 노동 공동체 내에서 오랫동안 전승되다가,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에 의해서 1930년대에 거의 사라졌고, 이후 농기계의 발달과 농촌 사회의 변화로 인하여 거의 소멸되고 지금은 지역 행사 공연이나 몇몇 민속학자 및 국악 전승자들에 의해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문제가 되는 것은 농요와 함께 전승되던 전통적 공동체 의식과 예능적 감수성 등 우리의 소중한 정신문화도 함께 소멸됐다는 것이다.
이는 세계 여러 나라 노동요들이 나름 국가적·민족적 특색을 갖는 예술로 승화 발전한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아울러 그동안 유교문화가 이룩한 공동체 정신과 짧은 시기에 유교민속예능이 설 땅이 없어진 것은 매우 유감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농요는 지역별 풍토와 기질, 해당 언어와 생활습관, 취향 등이 다름에 따라서 각각 특성이 있다. 지역 사회의 경제적 상황과 작물 특성에 따라 농요의 길이와 운율이 다르게 구성되고 개인 또는 집단적으로 부르는 것에 따라서 다르다.
예컨대 충북지역 농요에서 음을 길게 뻗는 것과 선율의 굴곡이 완만한 표현은 나름 여유와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충북지역 사투리 어법과 유사하다.
이는 지역 사투리를 만들고 사용하는 감정과 지역의 음악을 만들 때 가지는 감정이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말해준다.
또한 일정한 악곡 형식을 갖추거나 음악적인 아름다움을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느끼는 감정과 정서를 여과 없이 나타내므로 매우 거칠고 즉흥적이며 해학적 감수성을 갖고 있다.
현재 재현되는 농요를 보면 전통사회의 모습을 나름 해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 중에 경남지역 고성 농요 내용을 보면, 모심기 과장에서 모꾼과 지주영감의 기싸움이 있은 후에 지루하게 긴 가락이 나오다가 불현 듯 멀리서 지주의 본처와 첩이 점심을 이고 등장하는데, 그 뒤에는 바보스럽고 우스꽝스럽게 생긴 병신 지주 아들이 전신을 흔들면서 들어온다.
이윽고 지주는 늦게 가져온다고 본처를 나무라며 괭이자루로 때린다. 이어서 첩이 애교를 떨며 주인에게 술을 따라주면, 지주는 기분 좋게 술잔을 받으며 “금년 농사 잘 되게 해 주이소”라고 하며 고수레를 한 다음 마시고는 너털웃음을 웃으며 “맛좋다”라고 한다.
이때 아들이 “아부지, 내 장가 안보내 주끼요?” 하며 바보처럼 투덜대자, 지주 아비는 “이놈아, 또 시작이냐”라고 하면서 또 괭이자루를 휘두른다. 이런 장면을 보는 논 안의 일꾼들은 쑥덕거리면서 낄낄거린다.
농경사회 소박한 일상이 향토색과 함께 풍경화처럼 그려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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