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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易으로 보는 세상52작은 허물을 감싸줘야 모여든다

편집부
2014.07.31·4분 읽기·조회 21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구오는 모이는 데 임금의 지위가 있고 허물이 없다. 만약 믿지 않으면, 크게 착하고 영원히 하며 바르게 하는 모범을 보이면 후회가 없어질 것이다. [萃卦 九五]

 

 

 

세종은 조선시대를 빛낸 성군 중의 성군이다. 그런 세종도 4년 동안에 며느리를 둘씩이나 내쫓게 된다. 첫째 며느리는 투기로 쫓겨났다. 세자가 좋아하는 여인의 신발 코를 태운 가루를 술에 타서 세자에게 마시게 하려 했고, 뱀이 교접할 때 흘린 정액을 모아서 몸에 지니는 등, 남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입에 담기 어려운 해괴한 짓을 하다가 쫓겨났다.

 

그런 일이 벌어진 지 몇 해 되지도 않아서 이번에는 넷째 며느리를 내쫓게 되었다. 며느리를 둘씩이나 내쫓는다는 사실에 부담을 느꼈는지 원로대신 권진과 황희·맹사성·최윤덕 등 삼정승을 불러서 의논을 하며 구구한 사연을 다 말하였다. “3년 전에 동궁빈의 행실이 박해서 폐했다. 공자가 아내를 내쫓았고, 백어가 아내를 내쫓았으며, 자사가 아내를 내쫓으며 가도(家道)를 세운 전례를 따른 것이다. 임영대군의 아내 남씨는 나이가 열두 살이 넘었는데 아직도 오줌을 싼다. 눈의 정기가 바르지 못하며 혀 짧은 소리를 내며, 행동거지에 미친 듯한 증상이 있다. 그래서 자세히 보니 인중과 백회에 뜸을 뜬 흔적이 남아있다. 의원에게 알아보라고 했더니 ‘어릴 때에 미친병이 생겨 뜸과 침으로 치료하고, 무당이 굿을 해서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고 한다. 예로부터 ‘악한 병이 있으면 쫓아내고, 부모에게 불순하면 쫓아낸다’고 하였다. 다만 동궁이 아내를 내쫓았는데 그 동생이 또 아내를 내쫓는 것은 대단히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니 대신들이 의견을 모아보라”고 전교하였다. 세종으로서는 며느리를 내쫓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감히 임금을 속이며 미친 병 있는 딸을 왕궁으로 들인 남씨의 부모를 벌주고 싶었을 것 이다.

 

그런데 대신들의 대답이 뜻밖이었다. “임금은 백성의 위에서 표준이 되니, 그 말과 행동을 백성이 본받습니다. 그래서 신하 중에 아내를 내쫓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엄하게 다스려서 방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아랫사람을 책하기에는 밝고, 자기의 잘못에는 어두우면 사람들이 반드시 비웃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내쫓는 것에 반대한 것이다. 세종이 다시 한 번 의논하라고 하자, 그제서야 “부부는 일생을 같이 하는 사람인데, 이런 몹쓸 병이 있는 사람을 어찌 대군의 배필로 삼겠습니까? 애초에 그 아비 남지(南智)가 속인 것이라 죄가 크지만, 그 죄를 물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 조부나 장인집안에도 이 병이 있었으니, 속히 궁에서 내보내는 것이 옳을까 합니다.” 임금을 속여 임금과 사돈을 맺은 자에게 죄를 묻지 말고, 그저 그 딸만 내치라고 한 것이다.

 

남지 집안의 권세가 당당한 것도 한 이유이겠지만, 왕조를 건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민심이 이반될 것을 염려한 것이다. 남지가 임금을 속인 큰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승진해서 정승의 반열에 오른 것을 보고, 재야에 숨었던 현인들이 몰려들어서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易에서는 임금이 먼저 모범을 보이면 신하들이 모여들어 국가를 반석 위에 올려놓는다고 가르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