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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동래학춤, 선비 풍류와 전통 춤 양식 조화효도와 마을 화합의  유교민속춤

김우철 기자
2014.08.05·4분 읽기·조회 60

 

강기화 동래학춤 전수조교가 학의 힘찬 날갯짓을 표현하고 있다.

 


 

춤은 문화의 표현이며 춤에 결합된 상징은 지역 문화의 가치와 역사를 보여준다.

 

부산 무형문화재 제3호 동래학춤은 영남 문화교류의 통로인 동래(東萊)에서 발전한 춤으로 유교적 풍모와 정서가 흠뻑 밴 유교민속춤이다. 학(鶴) 동작을 상징하는 동래학춤은 동래 주민들에게 효도를 강조하고 마을공동체 사람들의 화합을 도모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동래학춤의 유래는 두 개의 관점이 있다. 첫째는 1898년 이후 일본, 중국 등과의 무역 교류로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해지고 또 이 지역에 온천이 개발되면서 관광휴양지로서 발전을 하게 되고 이즈음 교방이 많이 생기면서 교방을 드나드는 풍류객들이 흥에 취해 춤판을 벌여 추는 춤과 전통적인 들놀이 춤 양식이 결합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조선 말 동래 지역에 이주해 온 양반 44명이 모여 살면서 잔치 때 노래와 춤을 추었는데 이때 몇 명이 학의 모습에 반해 학의 날갯짓을 흉내 내면서 무아지경에 빠지고 다른 사람의 흥취를 북돋았다는 것에서 유래했다는 얘기가 있다.

 

동래 사람들이 학을 관찰하여 그 움직임을 춤에 반영하게 된 이유는 동래 지형이 학의 형상과 같아서 학과 관련한 이름이 많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마안령(馬鞍嶺)은 학의 동체를 의미하고, 왼쪽 날개는 동장대(東將臺), 오른쪽 날개는 서장대(西將臺)를 의미한다. 그리고 복천동 일대는 학수대(鶴首臺), 철산동 일대는 학소대(鶴巢臺), 연산동은 학암(鶴岩), 거제동 교대암은 학난(鶴卵)과 같이 학의 형상과 행동에서 따온 지명이 많이 있다.

 

전통 시기 일반적으로 동래학춤은 음력 정월 탈놀이 판의 앞부분에서 연행됐고, 줄다리기 놀이 끝에 뒤풀이에서 연행됐다. 그리고 정월 초순경 동래 야유를 놀 때 꽹과리, 북, 장고, 징 등의 풍물을 앞세운 길놀이가 끝나면 곱추춤, 요동춤, 두꺼비 춤 등과 함께 연행됐다.

 

동래학춤이 본격적으로 양식적인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은 19세기 중반 동래기영계(東來耆英契) 봄 회합 때 계원 자제들이 어른에게 칠첩반상과 술을 올려 효심을 나타내는 ‘밥상놀음’부터이다.

 

청초하고 우아하고 때로는 힘찬 동작들로 구성된 동래학춤은 양반 복장을 한 주무용수 1인과 조무용수 4인 구성을 원칙으로 하며 때로는 군무를 출 때도 있다. 특히 춤을 위한 장식이나 소도구가 없다. 검정 갓은 학의 머리, 흰 도포는 학의 몸과 날개를 나타낸다.

 

춤사위는 동래지방의 고유한 춤사위인 덧배기 동작을 기본으로 하고, 즉흥성이 강하기 때문에 발디딤새에 따라 팔 동작이 자연스럽게 따라 움직인다.

 

대체로 춤사위의 짜임새와 장단의 수가 일정하게 처리되어 있지 않고 원칙적인 형식을 바탕으로 시간과 무용수의 숫자에 따라 변화가 많고 춤추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춤사위를 만들어내는 자유분방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인위적으로 학의 몸짓 모방이 아니라 몸 전체로 자연스럽게 학을 나타낸다.

 

동래학춤은 멋과 풍류를 아는 유교 사회 선비와 한량들의 감수성이 흠뻑 밴 놀이 예술이다.

 

(사진 및 자료제공 강기화 동래학춤 전수조교)